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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특집] 퇴사 전 꼭 해야 할 한 가지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0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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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퇴사했다면 지금 해도 된다. (2018.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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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론 한 편 써 볼래?”

 

1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슬쩍 말했다. 여기서 ‘슬쩍’이 중요하다. 퇴사론의 의미와 지향점, 퇴사론을 담는 독립잡지 <월간 퇴사>의 비전과 미션을 장황하게 설명하면 안 된다. 경험상 한국 사람 대부분은 글쓰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어려움이라곤 1도 없는 것처럼 설명하는 태도가 좋다.

 

퇴사론이 뭐냐고? 어, 저기 맥도널드 있다,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먹고 가자, 바닐라랑 초코 중에 뭐가 좋아? 이렇게 아이스크림 골라 먹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거야. 퇴사에 대한 너의 생각, 네가 경험한 회사 생활을 글로 정리하면 돼. 쓰다 보면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까지 나아갈 거야. 어떻게 쓰냐고? 지금 나한테 들려준 네가 퇴사한 이유, 그 내용부터 같이 정리해보자.

 

작년 초여름 만났을 땐 제법 큰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팀장으로 일했던 B, 일 년 사이 소속이 바뀌었다. 퇴사 이유는 ‘워라밸’을 갈아 마시는 조직문화. 일찍 퇴근하면 밤 11시, 5일에 한 번 밤샘이 당연한 회사에서 B는 성실하게 근무했다. 왜냐, 구성원은 소진되고 회사는 성장하는 문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곳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

 

노력 끝에 팀장으로 승진했고 사내 정치의 발을 들여놨다. 이제 목표가 조금 가까워졌나, 싶었지만 임직원들의 민낯을 대면한 후 B는 바로 퇴사 준비로 고고~ 조직문화의 전환은 결정권자에게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이미 1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조직, 내가 여기서 버틴다고 뭐가 바뀔까?

 

많이 배우고 나왔다는 친구의 표정은 담담했다. 퇴사와 회사, 일과 조직이라는 대화 소재는 내가 만난, 내 또래 사람들에겐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식사하며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주제였다.

 

아직 회사원 시절이던 작년 봄, 새로 입사한 동료와 단둘이 밥을 먹는데 퇴사 이야기가 나왔다. 전 두 번 퇴사했는데 전 직장이 정말 ~@#$%&&!! 했어요, 전 첫 직장에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퇴사했어요, 하하 호호. 우리의 동지애는 퇴사 유발 상황과 원흉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며 급성장했다. 그리하여 퇴사 이야기로 대동단결!

 

<월간 퇴사> 아이디어는 여기서 탄생했다. 월마다 퇴사자가 쏟아져 나오는 이 사회, 퇴사 이야기를 모아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퇴사하지 못한 퇴사 실패자, 퇴사 꿈나무의 이야기 역시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더구나 퇴사론은 독자 뿐 아니라 저자에게도 도움 되는 작업이다. 퇴사 고민과 회사 생활 중 생긴 내면의 모순과 상처를 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철학이 생긴다. 이 기록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다. 퇴사란 조직에 적응 못한 개인의 탓만이 아님을, 복합적인 사회 문제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리라 기대했다.

 

몇 개월 후 나는 퇴사를 했고, <월간 퇴사> 편집장이자 제작자이자 에디터로 자체 취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퇴사론 한 편 써볼래요?’ 물었다. 모든 사람을 저자로 만들진 못했다. 아무리 가명으로 글을 써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챌까 봐 걱정됐으리라. 퇴사 경험을 직면할 용기나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일단 쓰겠다고 맘먹은 이들에겐 먼저 초고를 받고, ’솔직함’을 강조하며 자세히 써달라고 피드백했다. 퇴사론 외에 다른 콘텐츠도 기획하며 올봄, 3호까지 만들어냈다.

 

퇴사를 말하는 이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턴 열정 페이를 참지 못한 저자도, 안정적인 정규직에 업무량도 적지만 너무너무너무 일이 재미없는 데다 가족기업 상사 갑질에 열 받은 저자도, 상사의 여성 혐오적 회식 강요와 자존감을 헤치는 언어습관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나간 저자도, 퇴사 이유를 명확히 모르지만 이제라도 그 이유를 찾겠다는 저자도, 조직이 망해가는 걸 견디지 못했던 저자도, 상사와 삿대질 끝에 나간 저자도.

 

퇴사론을 쓴 저자를 하나 골라 그의 모든 회사 생활을 깊숙이 파고드는 <퇴사딥톡> 코너도 만들었다. 한 사람의 퇴사 이유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과중한 노동강도에서 비효율적인 업무 체계로, 이후엔 다시 업무와 적성의 불일치로. 처음엔 제때 밥만 먹고 일하면 족했으나, 다른 회사에선 명령 하복식 상사와 부재한 롤모델, 적성에 대한 고민 등이 퇴사의 원인이 됐다. 만족스러운 상황은 없었다.

 

각양각색 퇴사 이유 중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바로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것.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을 바꿀 힘이 나에게 1도 없다고 느낄 때, 혹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사람들은 퇴사를 한다.

 

퇴사 그 순간, 내 삶을 좌지우지할 주도권은 나에게로 온다. 시소 한쪽에 무겁게 엉덩이를 깔고 앉은 회사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튀어 올라 내 삶에서 아웃! 지금 이 순간, 시소 위 존재는 나 혼자다. 내 삶을 바꿀 강력한 힘은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그 순간만큼은 축하 받아도 된다.

 

다만 가능하면 퇴사 전 나만의 퇴사론을 정리하는 게 좋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정말 나에게 주도권이 남아있지 않은지, 상황을 바꾸기 위해 협상을 시도할 여력이 있는지, 아니면 이 상황 자체를 벗어나고 싶은지, 결론과 교훈을 얻을 있다. 그 결과 퇴사를 하면 축하할 일이고, 하지 않으면 그 나름대로 괜찮은 일이다. 

 

이미 퇴사해버렸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월간 퇴사> 저자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퇴사 후 퇴사론을 정리했다. 그러자 깨달았다. 나는 나에게 주도권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헤아리지 못한 채 퇴사했다. 헬조선에서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사회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열심히 따라 달려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죽을 것 같았다. 나에게 맞는 달리기 속도와 동작을 찾기 위해 일단 멈췄다. 하지만 이대로 도태될까 봐 다시 취업했고, 몇 개월 후 다시 퇴사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

 

퇴사 과정을 성찰하지 않은 결과,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간 유형과 어디까지 협상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지 않은 채 계속 퇴사했다. 뒤늦게 내 패턴을 깨달았고, 내가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릴 수 있었다.

 

퇴사론 쓰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우왕좌왕 걸은 줄 알았는데,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 여정을 보니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퇴사는 답정너 가득한 헬조선에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만드는 중요한 첫 발자국이요, 퇴사론은 당신이 걷는 그 여정을 보호하는 튼튼한 신발이 되리라. 좋은 물건은 널리 공유하는 게 공익을 위해서 좋겠지만, <월간 퇴사>에 기고하지 않아도 괜찮다. 1년 만에 만난 내 친구 B도 거절했다. 괜찮다. 글쓰는 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대신 글의 형태가 아니라도 고민하고, 메모하는 시간을 가져라. 당신이 처한 상황과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정리해보라. 퇴사 전 당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실행하라. 그래, 거기 퇴사를 망설이는 당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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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승희(<월간퇴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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