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노명우의 니은서점 이야기
까탈스러워 보이는 이웃
여긴 어떤 서점인가요?
들어오세요. 제발. 왜 구경만 하고 안 들어오시는 거예요. (2018. 09. 14)
서점을 준비하는 동안 먼저 동네서점을 시작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청취했다. 이러저러한 점이 좋더라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말 끝 무렵에 ‘그런데요’라는 ‘접속부사’가 등장하면 긍정적인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분들이 들려주는 리얼 스토리는 ‘그런데요’ 이전이 아니라 ‘그런데요’ 이후에 시작된다.
‘그런데요’라고 운을 뗀 후엔 이런 말이 따라온다. “서점을 하다보면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회의감이 들 때가 오거든요”. 재빨리 물었다. “언제 그런 생각이 드세요?” “그러니까, 그게요. 처음에는 손님이 제법 있어요. 아는 분들이 개업 축하한다고 찾아오시거든요. 그런데요” 또 다시 ‘그런데요’다. “시간이 지나면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이 아니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기 힘들거든요. 그러다보면....” “네 그러다가요?”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날이 오기도 해요.” “파리 날린다”라는 관용어가 괜히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요.....” 아니 ‘그런데요’가 아직도 남아 있다니! “책이 한권도 안 팔린 날보다 더 심각한 날은 서점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에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으니 정말 각오하셔야 해요.” 그 이후 “각오하셔야 해요”는 머리 속에서 늘 맴돌았다.
서점 문을 열고 오픈 준비를 한다. 오픈 준비에 분주할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입간판을 내놓고 책도 가지런히 정리하고 그 날의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까지 선곡해서 틀어놓으면 오픈 준비 끝이다. 매일 평정심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평정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문을 연지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면 머리 속에서 ‘그런데요’와 ‘각오하셔야 해요’가 태풍처럼 휘몰아 친다. 오늘이 ‘그런데요’의 날인가. 오늘이 마침내 ‘각오하셔야 해요’의 날인가 조바심이 든다.
서점의 창은 매우 넓다. 정말 많은 사람이 서점 앞을 지나친다. 어떤 사람은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가끔 곁눈질로 서점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다. 이 때 마음은 이미 외치고 있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어떤 사람은 좀더 적극적으로 서점 창문까지 와서 서점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창문에 붙어 있는 서점 행사를 알리는 전단지를 꽤 열심히 읽기도 한다. 이 때쯤이면 마음엔 확성기가 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들어오세요. 제발. 왜 구경만 하고 안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마침내 누군가가 서점 안에 들어오면 마음은 춤을 추고 있다. 그 마음을 그 분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분은 서점인에겐 은인이다. 오늘을 ‘그런데요’의 날로 만들어주지 않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이 책까지 사시면 마음은 이미 그 분을 와락 안고 있다. 그 분이 오늘을 ‘각오하셔요 해요’의 날로 만들어주지 않으셨다!
동네 분이 서점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대뜸 물으셨다. “여긴 어떤 서점인가요?” 최선을 다해 설명드렸다. “저희 니은서점은 인문사회과학과 예술분야의 책을 전문 북텐더가 엄선하여.....” 주절이 주절이 떠들고 있는 동안 그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알아챘다. 내가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분이 나가신 후 한참의 생각 끝에야 그 분 질문의 정확한 의도가 생각났다. 내 대답은 “중고서점이 아닙니다” “도서 대여점이 아닙니다” “참고서와 학습서는 없습니다” “문방구도 없습니다” 동네의 언어로는 이렇게 설명해야 했다.
책에 익숙한 사람에게 서점은 편안한 곳이지만, 사실 서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만큼이나 서점을 낯설고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네 분들에게 서점은 까탈스러운 이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한달 간의 임시 오픈 기간을 끝내고 니은서점은 정식 개업식을 했다. 특별한 의례는 없었다. 그럼에도 개업식을 한 이유는 이웃에게 떡을 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떡을 들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이웃인 서점인이 옆집 부동산, 그 옆의 편의점, 건너편 핫도그 가게와 반찬가게에 인사를 드렸다. 떡을 드리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까탈스러워 보이지만요 그런데요 새로운 이웃입니다”라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