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여름밤 "약한 모습을 이야기해도 괜찮구나"
서늘한 여름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출간 처음보다 못해도 괜찮아!
사람이 1시간 30분짜리 영화도 아니고, 갑자기 성장하거나 변할 수 없잖아요. 내 모습이 매일 똑같아 보이더라도 그 자체로 ‘나’이고, 아주 주의 깊게 바라봐주는 사람은 나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봐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2018. 06. 07)
지난 5월 31일, 합정동 빨간책방 카페에서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 2주년 공개방송이 열렸다. 청취자들과 함께한 첫 공개방송이었던 이번 시간은 <서늘한 마음썰>의 진행자 서밤(서늘한 여름밤)의 두 번째 책 『나에게 다정한 하루』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늘한 마음썰>은 라디오 PD로 재직 중인 봄봄의 제안으로 2016년 여름부터 시작된 팟캐스트 방송으로, 그림일기를 그리는 서밤, 라디오 PD 봄봄, <브런치>에 글을 쓰는 블블이 함께 진행하며 인생에서 겪는 고민과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있다. 공개방송을 통해 서밤, 봄봄, 블블은 팟캐스트 진행 2주년을 맞은 소회와 그로 인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이야기는 서밤의 두 번째 책 『나에게 다정한 하루』 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그녀의 첫 번째 책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가 사회에 처음 발 디딘 초년생 작가가 상처 받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했던 이야기라면, 『나에게 다정한 하루』 는 떠나왔다고 생각한 꿈을 이루고, 원하는 삶을 살게 된 이후의 이야기다. 막막했던 출발선을 지나 한참을 달려왔음에도 여전히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조일 때, 세 사람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처음과 비교하기 보다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두 번째라고 해서 더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 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에서 들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변해야 할까?
서밤 : 항상 처음일 수는 없으니 처음과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미흡한 채로 팟캐스트 2주년을 맞았고, 제가 이번에 낸 책 『나에게 다정한 하루』 도 두 번째 책이에요. 저는 첫 책을 낼 때와 두 번째 책을 낼 때의 마음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두렵고, 불안하고, 책이 잘 안 되면 내 인생도 망할 것 같았는데 두 번째 책은 긴장이 덜 되더라고요. ‘책이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나한테 가혹하게 굴지 말자’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게 되는 동시에 첫 책의 기준과 나를 자꾸 비교하게 되곤 해요. 팟캐스트도 2년을 하는 동안, 지금보다 더 잘할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해 어떤 것들이 변했을까요?
블블 : 처음 시작할 때 저희 되게 안 친했잖아요. (웃음) 봄봄은 학교에서 만났지만, 서밤은 처음 보는 사이여서 서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로 방송을 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이제는 내가 어디로 튀어도 이 사람들이 막아줄 거란 생각을 해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방송을 하기보다는, 내가 튕겨 나가더라도 누군가 다시 잡아줄 것이란 든든한 믿음이 생겼어요.
봄봄 : ‘누가 들어주긴 할까?’라는 불안감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청취자가 늘면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었어요. 그런데 회차가 쌓일수록 주제를 선정할 때 망설이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전에 했던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어서요. 그런 생각이 들면 저희끼리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주제가 같더라도 상황과 시간이 달라졌으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면서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것 같아요. (웃음)
서밤 : 맞아요. <서늘한 마음썰>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지만, 팟캐스트의 소재 자체는 변하지 않았잖아요. ‘항상 비슷한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봄봄 : 시즌1에서 시즌2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었지만, 상황상 옮기게 된 거지 개편은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하필 그때 정말 바빠서 변화를 줄 수가 없었는데 청취자 분들이 시그널까지 똑같다고 해서 좀 뜨끔했어요. (웃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형식이 같고, 주제가 비슷할 수 있지만 그때 했던 이야기와 지금 했던 이야기는 다를 테니까 형식이 같다고 해서 나아가고 있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밤 : 그림일기 그릴 때 ‘늘 똑같은 형태로 비슷한 이야기만 그리는 건 아닌가. 저번에도 했던 이야기 같은데’라는 느낌을 받곤 해요. 그런데 사람이 1시간 30분짜리 영화도 아니고, 갑자기 성장하거나 변할 수 없잖아요. 내 모습이 매일 똑같아 보이더라도 그 자체로 ‘나’이고, 아주 주의 깊게 바라봐주는 사람은 나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봐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의의를 두었으면 해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때
서밤 : 전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늘한 마음썰>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첫 책이 나오기 전에 너무 긴장되었던 일,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던 일 등 그때그때 느끼는 마음의 앙금을 처음으로 현실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원래 한 번 삭혀서 감정이 정리되고, 그림일기로 그려도 괜찮아졌을 때 작업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저는 나약한 제 모습을 너무 싫어해서 항상 스스로를 검열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방송을 시작한 뒤로 ‘약한 모습을 이야기해도 괜찮구나. 어쩌면 인간적이고 당연한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블블 : ‘꿈이랑 이별하는 법’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걸 느꼈어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이야기잖아요. 성공하지 못한 제 이야기를 풀어놓은 건데 많은 분들이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걸 보면서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지 않더라고요.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봄봄 : 최근에 방송에서 외롭다고 했었잖아요. 말하고 나서 되게 없어 보이고 민망했는데 전에 게스트로 나오셨던 분에게 기프티콘을 받았어요. ‘봄봄님 힘내세요!’하면서 메시지를 주셨더라고요. ‘어? 나 그렇게까지 힘든 건 아닌데?’싶으면서(웃음) 동시에 너무 고맙더라고요. 제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아무 피드백도 없었을 텐데,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 자체가 참 힘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서밤 : 사실 ‘처음’에는 부담이 없잖아요. 시도가 있는 거지. 사회초년생일 때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살아남아야겠다, 버텨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점점 연차가 쌓이면서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지고, 그러면서 점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구독자 수가 늘면서 부담감이 생겼어요. <서늘한 마음썰>도 시작은 미미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청취자가 인산인해를 이루는데(웃음) 시간이 지나며 쌓이는 부담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봄봄 : 저희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닉네임을 쓰잖아요. 그런데도 혹시 회사 사람들이 듣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던 건, 돌아보면 솔직해서 후회했던 일보다 솔직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일이 더 많더라고요. 서밤, 블블이 진짜 솔직하게 마음을 내보이는 걸 보면서 저도 더 솔직해지려고 용기 내고 있어요.
블블 : 저는 소속이 없어서 그 부담이 조금 덜한 것 같아요. 어떤 조직에 속해 있고, 어디를 대표해야 한다고 하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텐데 그렇지 않아서 비교적 마음이 가벼운 편이에요.
서밤 : 저는 가지고 있는 두려움 중 하나가 ‘내가 재수 없게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데, 그걸 남에게 숨기는 건 상관이 없지만 나 스스로에게까지 숨기고 있었을 때 마음이 힘들었어요. 누구에게나 적절하지 못하고, 공격적이고,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걸 되게 미성숙하고 유치한 거라고 생각해서 저 자신에게 숨기고 싶었어요. 그렇게 자기혐오가 싹트는 거죠. 그런데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나니,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게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 맞아. 나 그런 사람이야. 나도 알아’ 이런 마음이 드니까 솔직한 이야기를 해도 두려움이 덜해요.
봄봄 : 저는 제 고민이나 힘든 일을 이야기할 때, 그게 일부분인데 다른 사람들은 저를 힘든 사람으로만 볼 것 같아 걱정돼요. 그 힘든 일은 제게 있어서 1인데 10인 것처럼 볼까봐. 아니면 팟캐스트로만 나를 판단하고 ‘봄봄은 저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할까봐 두려울 때가 있어요.
블블 :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두려울 때가 있죠. 나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는데 방송에서는 어떠한 한 가지 면만 크게 부각되잖아요. 모르는 분들이 방송을 듣고 좋아해 주시면 기쁘기도 하지만, 친밀하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갈 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방송에서 이야기한 내가 전부는 아닌데’ 싶기도 해요. 이미지가 확정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요.
서밤 : 그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 때문에 힘들었어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있거든요. 자신만만하고 여유롭고 차분한 사람이요. 저와 반대되는 모습인데 항상 바랐고,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들킬까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가끔 제가 무리하는 것 같을 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지금은 ‘긴장하고 있지만 그걸 티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잘 진행하고 있겠지? 실수한 건 없겠지?라고 생각한다’ 등등 내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돌이켜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스러운 우리
서밤 : 반대로 솔직한 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즐거움도 있잖아요.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내가 말을 안 해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고. 또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에게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느끼는 기쁨도 있어요.
봄봄 : 저는 <서늘한 마음썰>에서 용기를 내 이야기 하고 나면 고민의 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어요. 혼자 끙끙 앓다가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잖아요. 그럼 ‘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하며 마음의 위안이 되어서 예전만큼 힘들지 않아요.
블블 : <서늘한 마음썰>이 하나의 창구잖아요. 내가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저는 조직에 속해있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반대로 혼자 있어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별로 없어요. 글도 혼자 쓰고 과외도 혼자 가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보잘것없는 제 이야기를 꺼내놓고, 마음을 툭 던져놓을 수 있는 연못 같은 공간이 있어서 기뻐요. 제가 돌을 던지면 다 같이 봐주고, 같이 돌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죠.
서밤 : 저는 스스로에게 무척 가혹했어요. 늘 담담하고 유쾌한 사람이 되길 원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 저를 되게 비난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모습을 드러내도 좋게 받아주시는 것 같아요. 또 봄봄과 블블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 속 봄봄과 블블은 제 기준에서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아니에요. 우울하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하고, 비열할 때도 있고, 쪼잔할 때도 있는데 그게 하나도 미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저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지만, 내가 충분히 좋아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면서 반대로 그게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거죠.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더라도, 혹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어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인정받는 것만이 제게 중요했고, 그래야 사회에서 받아들여 진다고 느꼈다면 지금은 부족한 부분을 오픈하면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게 새로운 즐거움이에요.
블블 : 우리의 완벽하지 못함이 서밤 님에게 힘이 되다니! (웃음)
서밤 : 앞으로 <서늘한 여름썰>은 어떻게 될까요?
봄봄 : 제 삶도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서. (웃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잖아요. 지금은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부담이 커진다면 그만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서밤 : 저도 항상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림일기도 그런 마음으로 그리거든요.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저를 살피게 돼요. 지치지 않으려고요. 오늘 이 자리도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나에게 다정한 하루서늘한여름밤 저 | 위즈덤하우스
일상 속 매일 파도처럼 밀려드는 감정과 불안 앞에서 내 마음을 돌보는 법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만큼만!”을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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