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가기 전에, 세계를 읽다] 궁금했던 그 문화 이야기 - 호주 편
호주인이 생각하는 호주인
<세계를 읽다> 시리즈는 장소보다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세계문화 안내서다. 그곳에서 직접 살아보며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기쁨과 위험을 몸소 겪었던 저자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지인의 생활문화, 관습과 예법들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칼럼에서는 매주 한 나라의 책에서 한두 가지 주제를 선정해 여행자들이 궁금해할 법한 그 문화 이야기를 속 깊게 들려주려 한다. (2018. 05. 10)
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일군 이민자의 땅, 호주는 아직도 사람이 살지 않는 미지의 영토가 많다. 사진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끝자락에 있는 일명 ‘벙글벙글 산맥’. ⓒ Shutterstock
’이민자의 나라’ 호주에서 호주인이란?
호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내가 1980년대에 호주, 그것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로 이민을 가겠다는 결심을 밝혔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니, 왜 하필이면 거기야?”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지는 반응에 따라 나는 그들이 호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호주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나라이다.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구분이 흑과 백처럼 선명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지리적?정신적?문화적 뿌리에 따라 호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품고 있다.
유럽인의 오해
유럽이 고향인 사람들은 호주인이 대체로 야만적이고 입이 걸걸하며 무식하고 교양 없을뿐더러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몸집은 크지만 정신이 미숙하고 때때로 순진하며 형편없는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 와인을 잘 마시지 못하고 밑도 끝도 없이 우기기에 능하며 프랑스어로 적힌 메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유럽인의 눈에 비친 호주인은 한마디로 무식한 농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럽인 대부분은 호주나 호주인에 대해 별다른 관심 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바쁘다.
영국인의 오해
영국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호주 사촌들을 묘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갖고 바라본다.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고 영국의 혈통다운 예의를 갖추지 못한 무식하고 음란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격식이나 교양과는 담을 쌓은 숙맥들이라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는 두려움과 감탄을 동시에 느끼며, 만나자마자 이름을 부르면서 허물없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 기준에서 호주인의 영어 억양은 끔찍한 수준인데, 영국 빈민가에서 쓰는 억양과 많이 닮아 자연스레 가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시아인의 오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예의를 갖추고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아시아 사람들은 직설적인 호주인을 두렵고 피하고 싶은 존재로 생각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통을 벗어 던지는 행동에 당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시아인의 눈에 비친 전형적인 호주인은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에 게으르고 뚜렷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무능력자들이다. 열심히 일해서 목돈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삼는 아시아인과 달리 호주 사람들은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호주에 막 정착한 아시아인은 집에 갑자기 전기가 끊기고 사람들은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며 경찰과 관공서는 무능력한 데다 번거로운 형식주의를 고집하는 등, 가난한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들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사는 호주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느긋하고 여유가 넘치는 호주 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imagetoday
오래된 고정관념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일명 ‘크로커다일 던디’(1980년대에 제작된 영화의 제목)의 모습은 호주인에 대한 대표적 편견이다. 사실 많은 호주인은 이런 개척자 이미지를 자랑스럽게 여겨 해외여행을 갈 때는 꼭 카우보이모자나 사파리 모자를 써서 호주 출신임을 온몸으로 알리려고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거친 자연을 질주하는 터프가이 이미지에 매력을 느낀다.
외부인들도 모든 호주인이 다부진 근육질 몸매에 구릿빛으로 잘 그을린 피부를 가진 마초이며 매일 만나는 혹독한 자연에도 굴복하지 않고 용감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주민의 영향을 받아 신비한 자연의 속삭임에 민감하고 저녁식사로는 큰도마뱀을 구워먹으며 대부분 시간을 악어나 독이 있는 뱀과 씨름하거나 활활 타오르는 들불을 잡으면서 보낸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사실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실제로 90퍼센트에 달하는 호주인은 해안가 주변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으며 거친 자연에 맞서는 오지의 삶보다 도시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한다.
호주인에 대한 다양한 고정관념 가운데 분명 어느 정도는 사실이 섞여 있다. 하지만 하나의 단어나 표현으로 호주인의 특성을 단정 짓기에는 오늘날 호주가 너무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국적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마다 호주로 건너오는 이민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아시아 이민자의 비율이 높다. 호주는 이제 백인의 나라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고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최초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호주 대사 스티븐 피츠제럴드는 머지않아 호주인의 피부색은 ‘벌꿀색’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아시아계 이민자 수가 많을뿐더러 국제결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호주의 대표적인 명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하버브리지를 바라본 풍경.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소다. ⓒ Shutterstock
호주인이 생각하는 호주인
그렇다면 호주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호주인을 마음속까지 이해하려면 호주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788년 호주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이들의 조상은 영국에서 강제이주를 당한 죄수들이었다. 호주는 처음부터 이들에 의해 영국 식민지로 개척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국적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고는 있지만, 호주인의 뿌리는 변함없이 런던 또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노동자 출신 영국인 이주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숫자와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지만 지금도 영국을 고향이라 여기고 영국 억양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식적인 여왕의 지위 역시 아직도 영국 여왕이 맡고 있다.
다행히도 이들은 영국인 조상에게서 자기 존재조차 조롱거리로 삼을 줄 아는 여유를 물려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농담도 서슴없이 던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 깊은 곳에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 옳고 최선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스스로를 평등하고 솔직하며 숨김이 없고 삶의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는 거친 파이터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 또한 모두에게 공정하고 위험에 처한 타인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가 외부인의 눈에는 조금 거만하고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그런 기질을 타고난 호주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긍심을 느낀다. 예컨대 국경일인 ‘호주의 날’이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호주 국기를 펄럭거린다. 이런 행동을 맹목적 애국주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들이 국가에 대해 보여주는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애정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이 글을 쓴 일사 샤프(Ilsa Sharp)는 호주에 관한 안내서를 쓰기에 안성맞춤인 인물이다. 그녀는 다양한 장소를 거쳐 호주에 정착했는데 영국에서 태어나 1968년부터 동남아시아, 특히 싱가포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타밀계 싱가포르인인 남편과 결혼했으며, 1989년에 이들 부부는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와 그때부터 호주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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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읽다> 시리즈는 장소보다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세계문화 안내서다. 그곳에서 직접 살아보며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기쁨과 위험을 몸소 겪었던 저자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지인의 생활문화, 관습과 예법들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