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

편집자 임윤정
나이 든 제제와 함께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매일 잠들기 전에 네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달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니? (2018. 05. 09)

강바람을-맞는-털뭉치-제제.jpg

 


첫째가 떠난 지 4년. 지금도 매일 보고 싶은 첫째 알롱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다 할 수가 없다. 그저 남아 있는 둘째를 매일 조금 더 사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건 나의 시간을 강아지에게 나눠주고 싶어지는 것. “제제야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주렴. 나는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오늘도 제제를 안고 헐레벌떡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요 며칠 제제가 또 밥을 먹지 않아 눈에 띄게 말라가는 게 걱정이 돼서다. 비슷한 병을 갖고 있는 다른 강아지들이 다 그렇겠지만 벌써 몇 년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제제는 폐나 신장 등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식단 관리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지난 3월에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이상이 없어 한시름 놓았던 것도 잠시, 불과 2개월 후 신장 수치가 올라가 하루 이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상태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기도 하고,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제제의 나이는 이제 열네 살. 1,2년 전까지만 해도 ‘노견’이라는 말은 아직 먼 얘기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나의 작고 복슬복슬한 아이도 노견 대열에 합류한 나이가 된 것이다.

 

 

무슨-생각을-하며-창밖을-보고-있니.jpg

 

 

2004년 6월 12일, 첫째 알롱이가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 중 유일한 남자아이에 체구가 가장 작았던 제제를 함께 키우기로 한 후 제제는 한 순간도 우리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2014년에 첫째 알롱이가 강아지별로 돌아가기 전까지 혼자 있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알롱이가 보고 싶은 만큼 홀로 남은 제제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고 각별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알롱이가 떠난 후 제제는 전과 비교해 확실히 활동량도 줄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눈에 띄게 활력이 사라져갔다. 알롱이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제제도 어느 덧 열 살을 넘긴 나이가 된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TV 리모콘보다 작았던 제제. 문 모서리는 물론이고, 구두굽, 두루마리 휴지, 안경까지 씹어놓는 통에 제제가 접근 가능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은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던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이제는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자는 걸로 보내는 게 전부인 일상을 산다. 알롱이가 살아 있을 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후회가 남아, 주말이면 제제와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요즘, 가끔은 한강으로, 가끔은 새로운 가게로 동네 산책을 나가지만, 최근에는 오래 걷는 것 자체가 힘에 겨운지 잘 걸으려고도 하지 않는 제제를 볼 때면 측은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안고 걸리면서 근처 단골 카페에 가서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들 모습도 보고, 새로운 이들과 인사도 하고, 한두 시간 쉬다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제제와 나 사이에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하나 쌓였다고 믿고 싶다.

 

 

한강-산책1.jpg

 

 

제제야, 우리는 과연 몇 번의 주말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꽃이 핀 길을 걷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고, 강변 운동장에서 공을 튕기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강아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창밖을 구경하거나 세상 편한 자세로 잠을 자는 그 시간을 아직은 더 많이 함께하고 싶은데…… 매일 잠들기 전에 네게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달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해진 삶의 길이가 없다고는 해도, 주변에 보면 열여덟, 열아홉에도 건강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볼 수 있잖아. 너는 아직 열네 살이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살아줘. 아직은 내가 너까지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임윤정(아트북스 편집자)

책이란 그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쓰게 됐고, 우연히 서점을 해본 적도 있고,지금은 읽고 쓰고 엮는 일을 하고 있다. 본업은 멍집사.

오늘의 책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나부터 바꿔라

변화에 대한 열망이 경제적 자유의 길을 연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최고의 투자자가 되기까지. 저자가 실제 분석하고 체득한 실전 투자 전략을 통해 돈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부를 지배하는 승자가 되기 위한 균형 잡힌 관점과 실질적인 투자의 법칙을 소개한다.

좀비가 포위한 펜션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등 미스터리 랭킹을 모조리 휩쓴 화제작. 동아리 합숙 중에 좀비의 출현으로 펜션에 갇히고 만 대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그렸다. 밀실살인과 좀비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

지금 북한 사람의 삶

북한은 외국 기자가 찍은 사진과 글로 알려져왔다. 언어라는 벽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삶으로 깊게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진천규 기자는 한국인으로 드물게 단독으로 방북하여 북한을 취재했다. 2017년과 2018년에 촬영한 사진은 지금 북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내 마음의 방향', 취향에 관한 이야기. 하루하루의 취향이 모여 결국 그 사람의 색깔이 되고,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선택한 가치들이 삶의 중심이 된다. 이런 취향 덕분에, 오늘 하루도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