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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20년 연상연하 커플 인생
<아버지와 이토 씨>
나는 원작을 읽고, 또 영화를 보면서도 아버지보다 20년 연상연하 커플인 아야-이토 씨의 동거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 너무 깨소금 맛이다.
지금은 나아졌다지만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의 질문을 아무에게서나 받았다. 진짜 ‘아무 질문 대잔치’. 결혼을 해보라지, 애는 언제 낳느냐고, 또 첫 애를 낳아보라지, 둘째는 언제,라고 묻는 것이 마치 ‘밥 먹었냐’는 질문처럼 무람하지 않게 던질 수 있는 곳이 내가 사는 이 땅의 현실이다. 결혼과 가족제도에 관한 한 어떤 틀에 사람을 가두고, 적정한 연애, 적정한 결혼, 적정한 노후 등 훈수 두고 그 틀 바깥의 삶에 대해선 말도 참 많다.
20년 연상연하 커플의 삶, 비정규직 서점 직원 여성과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 남성의 동거. 영화 <아버지와 이토 씨>, 이거 재미지겠네. 일단 이 땅의 적정선이란 가족 틀을 훌쩍 넘는 모양새가 흥미를 돋우었다.
34세 여성, 54세 동거남, 갑자기 들이닥친 74세 아버지가 한집에서 볶아대는 일상의 기록인 줄 알았다. 우에노 주리가 주인공 역이라니 마음이 두근거렸고, 릴리 프랭키가 20년 연상 동거남이라고 해서 살살 웃음이 나왔고, 후지 타츠야가 74세 아버지 역이라니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캐스팅이 어마어마하구나 하는 첫 소감.
영화 원작 나카자와 히나코의 『아버지와 이토 씨』의 첫 문장은 직접 화법으로 시작한다.
“감 따위 돈 주고 사먹는 거 아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는 계속해서 달린다. 아버지의 등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아버지의 고집이 느껴지는 첫 문장과 아버지의 등을 향해 달리는 딸을 묘사한 마지막 문장으로 짐작하듯이 원작은 이 이야기의 핵심을 ‘아버지’로 풀어냈다. 교사직 은퇴하고 아내와 사별한 노후의 아버지는 여전히 꼿꼿하고 자존심 세다. 아들 네에서 머물다 쫓겨나다시피 딸의 집에 얹혀살게 되지만 희미해지지 않는 절대적 존재감. 놀랍게도 값싼 숟가락 같은 것들을 훔쳐 소중하게 보관하는 절도범이기도 하지만, 그 정서적 결핍에 대해선 영화나 원작에서도 노코멘트다. 자식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기에 그런 것일까. 절도 행위로 잡혀도 경찰에선 그저 치매 노인이려니 하는 분위기. 결국 아버지 자신이 자신의 돈으로 유료 양로원을 계약하고 딸과 이토 씨의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문장은 홀로 가방 들고 떠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딸의 모습을 그린 것.
나는 원작을 읽고, 또 영화를 보면서도 아버지보다 20년 연상연하 커플인 아야-이토 씨의 동거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 너무 깨소금 맛이다. 이토 씨는 나이 차 많은 아야를 존중하고 가사일을 스스럼없이 해내며, 일층 길모퉁이 집의 한 이 미터 남짓 ‘남은 땅’에 채소밭을 가꾸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볼링 게임과 맥주 데이트를 정기적으로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지혜롭고 연륜 있는 답을 내놓지만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너무 마르고 연약해 보이는 이토 씨. 원작에서는 상당히 섹스를 잘하는 육체 튼실한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오호!
아버지가 늙어 보이는 이토 씨를 처음에 맞닥뜨리고 황당해할 때도, 또 은근히 신상 명세를 캐물으며 비웃을 때도, 아야는 당당하다. 당당할 수밖에. 같이 살며 멋있다고 느끼는 남자인걸. 알량한 현실적 조건과 과거 따윈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을.
가족들 사이에서는 고집 불통의 존재로 모두 버거워하는 아버지를 가장 편안하게 대하는 것도 이토 씨다. 편견 없고 따뜻한 마음 그대로 대하니 아버지 역시 점차 이토 씨의 매력에 빠진다. 이토 씨에게 시골 집에서 둘이 살자고 제안까지 한다. 이때 이토 씨의 답이 걸작. “싫습니다. 왜 제가 당신과 살아야 합니까. 저는 당신의 아들도 뭐도 아닙니다. 보살필 의무도 책임도 전혀 없습니다. 타인에게 응석 부리는 것도 적당히 하십시오.” 이런 태도, 이런 말투를 처음 본 아야가 놀랄 지경이지만,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정확한 이야기에는 우리 모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게 사이다!
가족은 어떤 행복 이데올로기 틀에 넣을 수 없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개성껏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살기 쉽지만. 또 부양-피부양의 상호 부담을 안고 있는 어려운 관계이기도 하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해도 속내를 다 알 수 없다. 단언컨대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이토 씨가 특유의 느긋함으로 항상 하는 말이 “000는 도망가지 않아”다. 볼링장에선 좀 천천히 게임을 하라면서 “볼링은 도망가지 않아”라고 하는 식이다. 아야에게도 “나는 도망가지 않아”란 말을 남기는데, 정말이지 이 커플이, 이 평화롭고 건강한 커플이 서로에게서 도망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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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나카자와 히나코> 저/<최윤영> 역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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