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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독자] 가장 많은 인세를 받는 중국 작가, 장자자

장자자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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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각국의 저자와 출판사들이 각자의 언어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서점에 놓인 책들은 아직 한국 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번역자일 것이다. 그리고, 번역자야말로 한 줄 한 줄 가장 꼼꼼하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맨 처음 독자, 번역자가 먼저 만난 낯선 책과 저자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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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너!


무려 중국 소설이라니. 우리나라 독자들이 아는 중국 소설이라야 기본적으로는 『삼국지』『서유기』, 멀게는 『영웅문』, 교양 있게는 위화(余華)의 소설 정도가 전부 아니던가.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의 젊은 삼십대 작가와 그의 대표작을 소개하게 됐다. 장자자(張嘉佳), 그의 단편소설집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이었다. 중국에서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판매량 200만 권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중국 인구가 13억 명이 넘는다지만 그 짧은 기간 안에 그토록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뭐니 뭐니 해도 번역을 할 때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내가 그 책을 맨 처음 읽는 독자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표지에 처음 보는 목차, 처음 보는 첫 문장, 처음 보는 끝 문장까지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전해줄 수 있을지 짜릿한 기대감과 묵직한 책임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나 소설은 장르의 특성상 작가의 주제의식은 물론이고 사소한 표현까지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때문에 좋은 문학 번역을 위해서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솔직히 내게도 작가 장자자는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를 접하기 전까지 매우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국 내에서는 꽤나 의미 있는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괴짜였다. 소설에서 언급했다시피 알파벳도 잘 모르는 중학생이었던 그는 난징대학(南京大學)에 들어간 뒤 2학년 때부터 다양한 학생극을 집필하는 한편 방송국에서 글을 쓰고 연출하는 일을 하며 난징대학 최고의 재주꾼으로 유명세를 탔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난징 방송국을 비롯한 몇몇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러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2005년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 『거의 영웅이 됐어(幾乎成了英雄)』를 내놓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 뒤로 두 편의 소설을 더 집필한 그는 2011년 영화 〈푸주한, 요리사, 그리고 검객(刀見笑)〉으로 타이완 영화제인 금마장 최우수각색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013년에는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마이크로 블로그 웨이보(微博)에 ‘잠자리에 들기 전 읽는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무려 4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그의 이야기들은 같은 해에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란 제목의 단편소설집으로 출간됐다. SNS상의 인기만큼이나 큰 호응을 받은 이 작품은 출간 6개월 만에 200만 부, 1년 만에 400만 부를 판매하는 놀랄 만한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장자자는 이 작품으로 2014년과 2015년에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이자 중국 출판업 올해의 작가, 올해의 좋은 중국 도서 등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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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베스트셀러라기에는 무슨 스펙터클한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들이었기에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목차의 첫째 날 밤부터 여덟째 날 밤까지 장자자 작가는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조명하듯 짧지만 곱씹어볼 만한 47편의 이야기를 하나의 책 속에 담아냈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인 그는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글을 풀어가지만 다소 거칠다 해도 솔직한 진심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의 작품의 문학성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과 우정, 가족애는 독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굳이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어떤 교훈도 남기지 않는다. 다만 작품 속 그의 말처럼 눈물범벅이 되더라도, 꼭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낼 아름답고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속살거리듯 건네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약한 존재지만 스스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하기에.

 

특히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는 다양한 모양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 스스로 각 이야기의 주연이 되고 조연이 되며 그의 주변 사람들 역시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소설이 아닌 수필을 읽고 있는 듯한 감정적 친근함과 형식적 파격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어느 한 구절 버릴 것 없는 세심하고 서정적인 글귀들은 중국에서도 ‘장자자 어록’이란 말을 탄생시킬 만큼 아름답고 공감이 간다. 또한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의 글들은 대부분 길이가 짧은 편이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한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어 이 한 권의 책에서만 10편의 영화가 제작됐거나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장자자 작가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세를 벌어들이는 작가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2015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왕가위 감독이 제작하고 양조위, 금성무 등의 배우를 앞세운 영화 <파도인(擺渡人, 소설 속 〈뱃사공〉 편에 해당)>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고 감독하기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2016년 12월 23일에 개봉했으며,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도 꾸준한 사랑을 받아 출간된 지 3년 만에 700만 권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게 됐다.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는 거리감 없는 인물들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사랑과 인생, 유머러스한 문체와 섬세한 감성으로 완성한 글귀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를 번역하며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차이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히트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어, 일어 소설들과 달리 중국어 소설은 존재 자체가 낯설다. 메이드인차이나의 제품은 많이 쓰지만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은 전혀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SNS로 연재되던 젊고 감각적인 작품이 아닌가. 나는 이 간극을 좁히고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작가의 친근한 문체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번역에 반영했다. 또한 소설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주석을 달아줬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정서나 문화적 차이가 분명히 있겠지만 사랑을 바탕으로 희망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장자자 작가의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눈물을 닦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리라 생각한다.

 

장자자 작가는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의 출간으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고 여러 영화 작업에 참여하면서도 2014년 새로운 소설 『네 곁에 머물게 해줘』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에 등장하는 장자자 작가의 반려견 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개가 화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웃기고 울리는 37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자자 작가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가 많은 독자들의 세계를 지나친다면 중국 최초 개 작가의 작품도 조만간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14년, 장자자 작가는 갑작스러운 심장병 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2016년에도 심장병이 재발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작품 속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처럼 꾸준한 창작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장자자 저/정세경 역 | 은행나무
대륙 700만 독자들의 마음을 녹이고 심금을 울린 단편집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철들기 전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궈징밍의 『소시대』이고, 철든 후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 있다면 바로 장자자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출판계에서는 화제가 된 밀리언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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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세경(번역가)

중국 북경영화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싸이더스 픽쳐스에서 근무했다. 현재 중국어 출판전문 기획 및 번역가로 활동 중. 옮긴 책으로 『내게 남은 날이 백일이라면』 『그림으로 읽는 매일 아침 1분 철학』 『너와, 그리고 잠 못 이루던 밤들』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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