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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세욱, 섬세한 번역으로 독자와 작가의 틈을 좁혀주다

프랑스 국민작가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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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살아있는 오늘날은 ‘소통’하면서 번역할 수 있어요. 이제는 살아있는 작가가 쓴 작품을 번역가와 작가가 소통함으로써 어떻게 글에 생기를 넣었는가가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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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1월 24일 저녁, 서교동에 위치한 살롱 드 팩토리 카페에서 번역가 이세욱이 ‘번역과 소통’ 이라는 따뜻한 주제로 독자들을 만났다. 21세기 유럽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 작가 안나 가발다의 소설을 한국 독자들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섬세하게 번역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가 지난 12월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안나 가발다의 유일한 ‘남자 번역가’가 되다


이세욱 역자는 그간 병상에 누워있던 시간이 꽤 길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쉬지 않고 바쁘게 번역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번역할 것을, 그리고 여러 독자를 위한 문화 공간을 설립할 것을 계획했다.

 

"25살에 처음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잘해주지 못했어요. 프랑스어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읽을만한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즐겁게 만들어서 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도 그때 잘못한 것에 대한 또 다른 반성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화공간’을 만들어서 책, 문화 등을 이야기하고,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요즘 4차산업, 인공지능이 개발된다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그것들로 대체 할 수 없는 게 ‘인문, 문학, 책 읽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좋은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내가 얻은 즐거움을 친구를 통해 확인하면서 서로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 어려움에 부닥치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작지만 알찬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어 그는 병상에서 지냈던 날들에 대해 스스럼 없이 말하며, 어떻게 안나 가발다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번역하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안나 가발다를 읽으면서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있었는데 인간이 참 미천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조금만 나에게 잘못이 가해지면 내가 세상 사람들과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악몽도 많이 꿨죠.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그간 착실하게 작업해왔던 작가들과 많이 이별했어요. 지금은 옛날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 있게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나오고 나서 북로그컴퍼니에서 안나 가발다 책을 다시 출간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책을 처음 번역한 게 2002년도거든요. 그때 잘 팔리는 책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좋은 작가와 우정을 쌓고 있었는데도 안나 가발다 작품 3번째부터 못 하겠다 말하고 헤어졌어요. 그게 9년전 일인데, 이번에 병상에서 이 책을 새로 읽고 안나 가발다와 만났던 일, 그분과 교환했던 메일을 돌이켜 보면서 ‘아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였고 이걸 잘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던 분이었는데, 다른 작가 작품이 너무 많이 팔린다는 이유로 안나 가발다 작품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후회스러웠어요."

 

안나 가발다는 이세욱 역자를 처음 만난 날, 그에게 ‘유일한 남자로군요’ 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세욱 역자와 안나 가발다의 일본에서의 첫 만남 이야기가 전해지자 독자들의 관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안나 가발다를 처음 만난 건 일본에서예요. 일불 문화원에 지인이 있었는데 안나 가발다가 그곳에서 강연한다고 알려줬어요. 강연을 듣고 사인회에 가서 한국에서 온 당신의 번역가라고 말했더니 ‘유일한 남자로군요’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유일한 남자 번역가라는 말인가요?’ 라고 되물었더니 그렇대요. 그때 그 말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섬세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남자 번역가가 번역하는 게 저 스스로 특이하다 느꼈어요. 그래서 작품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다음 날 인터뷰할 때도 작품에 대해 많이 물어보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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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으로 안나 가발다의 섬세함에 한층 더 가까워지다

 

이세욱 역자는 한국 독자가 주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있는 표현을 마주할 때 겪는 어려움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떤 것엔 주석을 달고, 어떤 것은 자연스러운 설명으로 문맥 속에서 이해 가능토록 하고, 어떤 것은 생략하기도 한 역자의 서술 방식을 안나 가발다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신을 역자는 유창한 불어로 읽어주며 ‘감수성’에 대해 강조했다.

 

‘당신 같은 번역가는 희귀합니다. 저는 당신의 직업적인 양심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당신의 sensibility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섬세한 작업방식과 감수성에 안나 가발다가 감동했다고 전해왔어요. 처음 만났을 때 ‘유일한 남자군요’ 라고 들은 것을 저도 모르게 염두에 두고 있었나 봐요. 영어,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한국 번역자 중에 저 빼고 다 여성이에요. 그래서 섬세한 여성 작가를 번역할 때는 그걸 따라갈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흔히 남성으로써 무게를 잡으면서 번역 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며 작가의 마음이 흐르는 것을 섬세하게 포착하려 했어요."

 

안나 가발다의 섬세한 문체에 대한 칭찬을 시작으로 그녀와의 일화를 공개하며 끊임없는 칭찬을 이어갔다.

 

"프랑스 작가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녀만큼 속이 깊고 섬세하며 진심으로 같이 협력해서 작업하려는 분이 없어요. 사인회에서도 유명한 작가들은 똑같은 말을 써주는데, 안나 가발다는 절대 똑같이 써주는 법이 없어요. 독자마다 특징을 포착해 아주 재치 있게 써줘요. 저도 그녀에게 사인을 받으며, 감성이 있기에 그런 것을 이용해 소설도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실제로 메일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친구가 되자. 내가 한국에 가면 가이드 해줘, 당신이 프랑스에 오면 내가 가이드를 해줄게’ 라고 메일을 보낸 적도 있어요. 그만큼 자상한 성격이죠."

 

그래서인지 역자는 병상에서 죽음에 가까이 간 듯 악몽을 숱하게 꾸는 와중에도 안나 가발다의 작품을 붙잡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안나 가발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담긴 반응을 덧붙였다.

 

"집중 치료실에서 저를 간병하던 분이 어느 날 제가 번역한 책을 재미있게 읽으며 더 재미있는 책 없는지 묻더군요. 그래서 안나 가발다의 책을 추천했지만, 그 책이 병원 도서관에 없었어요. 이번에 안나 가발다의 책이 새로 나오게 되면서 간병인에게 연락해 책을 권해줬더니 아주 좋아했어요. 또 예전에 노희경 작가가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를 읽고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 봤다 했대요. 그녀의 책은 읽는 사람이 모두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하는 소설이에요. 저 또한 제가 번역했다는 것도 잊은 채 아주 빠져서 읽었어요."

 

안나 가발다의 작품에서 단순한 재미만을 엿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녀만의 문체에서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역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안나 가발다의 소설을 보면 세상 사람들을 관찰할 때의 예리함, 감수성이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느껴 져요. 그리고 그것을 문체로 표현하는 방법에서, 일상을 말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주죠. 일상적이지만 반전 있는 그 문체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저도 노력했어요. 작가가 운을 맞추려 애썼다면 저도 뜻뿐만 아니라 운까지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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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소신

 

이세욱 역자는 원문에 충실히 번역하느냐와 독자들이 잘 읽을 수 있도록 의역하느냐에 대한 이항 대립적인 이론은 너무 낡은 이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부정한 미녀들’ 이라는 번역 이론을 설명했다.

 

"‘부정한 미녀들’이라고 번역한 게 17세기이니, 2500년 전의 일이에요. 그 당시 문장을 두고  ‘있는 그대로 번역하자’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의역하자’ 라는 상충이 있었어요. 그러자 ‘아름다운 번역’을 ‘충실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죠. 우리나라 번역가들의 문제는 ‘부정한 미녀들’ 이론을 그대로 가져와서 번역이 너무 아름다우면 번역가가 개입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는 건데, 그건 엄청난 오류를 범하는 거예요. 2500년 전의 개념을 현대에 적용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는 작가와 번역가가 동시대 사람이에요. 얼마든지 원작자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죠."

 

"독일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어요.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는 원작에 충실한 번역을 엄청나게 선호했어요. 그 당시 번역의 대상이 된 원작은 그리스 로마 고전이에요.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선호했던 것은 작가가 죽은 지 너무 오래된, 어쩔 수 없는 고전을 번역하기에 그랬던 거지 작가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의역인지 번역인지 묻는 자에게 ‘부정한 미녀들’이 어떤 작품으로 논쟁하게 된 건지 설명해줘요."

 

역자는 이어서 ‘오늘날’ 번역에 있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을 말했다.

 

"작가가 살아있는 오늘날은 ‘소통’하면서 번역할 수 있어요. 이제는 살아있는 작가가 쓴 작품을 번역가와 작가가 소통함으로써 어떻게 글에 생기를 넣었는가가 중요해요. 그래서 번역을 오래 하지 않는 대신, 생각을 오래 해요.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요. 의역이니 직역이니 하는 논쟁은 너무 비생산적이에요.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독자들이 묻다

 

나라간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이시는지 궁금합니다.


번역했던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릴게요. 남녀 주인공이 있는데, 여자는 지적이고 섬세하지만 남자는 거칠어요. ‘2004년에 나는 쓰러지는 구나’ 라는 말을 할 때, 여자의 지적임을 따라가기 위해 남자는 ‘까트’라는 표현으로 운율을 맞추죠. 이런 표현은 프랑스 언어가 지닌 운율의 고유성인데, 이를 한국어로도 운율을 맞추기 위해 ‘때는 정초, 나는 녹초’ 라고 번역했어요. 프랑스 언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율을 주석에서 설명해주면 독자들이 이해는 하지만 웃을 기회를 놓쳐요. 그래서 작가와 합의를 통해 운율을 지키며 문화적 차이도 반영했어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에서 주의 깊게 읽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소설 마지막에 부모님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아는 아이가 ‘엄마 아빠는 언젠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거야?’라고 물어요. 부모가 아니라고 답하자, ‘정말 그런 거야?’라고 한 번 더 묻죠. 그렇다는 부모의 대답에 ‘하긴 난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었어’라고 아이가 답해요. 이런 부분은 부모의 관계가 안 좋다는 어두운 상황을 문체의 묘미로 재미있게 살려낸 것이죠. 또한 안나 가발다 소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읽는 것을 가능케 하는 문체의 매력을 갖고 있어요. 독자들도 이런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안나 가발다 저/이세욱 역 | 북로그컴퍼니
소박하지만 섬세한 문체, 찰나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사유, 더없이 솔직한, 그래서 거짓말이길 바라는 대화들, 말과 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녹아 있는 농밀한 여운과 여백 등으로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그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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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수인(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좋은 글을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좋은 글을 쓰는 필자가 되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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