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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의 늪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식의 심리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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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과 싸움은 개인의 의지의 문제, 자아의 힘의 문제로만 보기보다 소비주의라는 우리를 둘러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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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overeating)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한 번에 더 많이 먹는 행위를 말한다. 오래 굶주리다가 먹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한다. 이 때만큼은 포만감을 느낄 것이다. 이 때는 “아, 이제 살겠다”는 안도감도 든다. 그 외는 과식은 불쾌해지고 죄책감도 든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지금 과식과 전쟁 중이다. 매번 ‘더 먹지 말아야지’하고 마음을 먹지만 실제 먹을 때에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먹는다. 몸이 사실은 더 필요로 하는데도 적게 먹고서 그걸 과식이라고 여기는 ‘거식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지구촌 대부분에서 영양 상태의 극적인 향상이 이루어졌고, 신체 이미지의 매력이 일종의 자본재가 된 사회에서는 몸매를 잘 관리하는 것이 능력이 되었다. 한 쪽에서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수많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일수록 칼로리 폭탄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쉽게 유혹에 빠지고 잠시 의지의 끈을 놓는 순간 수 천 칼로리의 음식이 내 몸 안으로 투하되기 일쑤다. 차근차근 쌓인 칼로리는 살로 전환된다. 그 결과 체질적으로 살이 잘 찌는 체질이건 아니건 살이 찐 사람은 의지가 약한 사람, 날씬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번엔 충분히 먹어도 살이  안찌는 음식을 찾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오가닉, 건강 식품 열풍은 과식의 동전의 앞 뒷면이다. 

 

“아프리카의 기아들을 생각하고 참아라” 솔직히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 헛헛하면 더 먹게 된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과식을 부추기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강하게 갖지 않는가. 칼로리를 중심으로 한 영양학적 관점으로만 볼 수 없다는 증거다. 이런 나의 의심에 답을 주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키마 카길의 『과식의 심리학』이다. 저자는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다전공인문학 프로그램 교수로 심리학자면서 음식문화를 함께 전공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저자는 과식현상을 현대사회가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발생한 특이한 일의 하나로 정의하면서 이를 개인의 의지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과식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개인, 사회, 산업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농경사회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나를 규정했다. 예를 들어 스미스(Smith)는 대장장이, 쿠퍼(Cooper)는 통제조업자, 대처(Thatcher)는 지붕수리공과 같은 직업을 뜻하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姓)이 되었다. 그에 반해 현대사회는 반대로 소비사회다.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가로 나를 규정하게 된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행복의 주요수단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소비가 자아발전, 자아충족의 주요한 수단이 된다. 패스트 패션이 일반화되면서 너무 많은 양의 옷이 생산된다. 미국인이 한 해 구입하는 의복이 200억 점이나 된다. 이렇듯이 과잉 생산, 과잉 소비의 패턴이 생기듯이 먹는 것도 마찬가지가 일반화되었다. 그 원인을 저자는 공동체와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해체되고 개인이 점점 중요하게 되면서 전통과 공동체가 주던 가치가 결핍된 채 자라나게 되는데, 그것을 개인의 자아의 성장으로만 풀려고 하니 ‘텅빈 자아’라는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풀이한다.

 

소비중심주의적 개념에 익숙하다 보니 그것을 메우는 것을 소비하는 것으로 풀어내려는 욕구가 우선한다. 소비하던지 과식을 하게 되면서 일시적 만족을 얻지만 오래 가지 않고 바로 또다시 공허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다른 소비에 비해서 먹는 것만은 더욱 손쉽고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과식의 위험요소 중 하나다.

 

이런 소비문화시대의 희생자는 누구일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먹을 것을 먹다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빈곤층이 소비문화 시스템의 희생자로 등장한다. 소비주의 문화는 금융규제와 영양규제의 실패다. 크레딧 카드는 돈을 얻기 전에 미리 물건을 사게 해서, 문턱을 낮춰서 소비를 조장하는데 빈곤층일수록 이런 유혹에 약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비만인 사람이 정상체중인 사람보다 파산을 선언할 확률이 22% 높다는 연구가 있다. 음식산업체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사람을 유혹한다. 다양한 메뉴를 등장시키고 ‘자연’, ‘유기농’이라는 상표를 붙여 왠지 몸에 좋을 것 같다는 착각을 갖게 하지만 미국의 FDA는 거대 식품회사의 로비에 밀려 법개정으로 인해 제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세칭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통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대형 식품회사와 제약 회사의 엄청난 마케팅에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수 밖에 없다. 병 주고 약주고의 순환고리까지 생겼다. 한 쪽에서는 먹기 좋은 살찔 만한 음식을 만들어 팔고, 과식으로 비만이 생기면 이를 체중감량이나 더 건강한 삶을 약속하는 듯한 새로운 프리미엄 식품군을 만들어 광고하는 짝패가 등장한다. 그러나 둘은 한통속일 뿐이다. 대형식품회사들은 앞다퉈 저칼로리, 저지방 브랜드를 내세우는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체중감량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식의 위험으로 둘러싸인 현대 소비주의 문화사회에서 개인은 나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저자는 칼로리의 기계적 조절보다 먼저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살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주의와 쾌락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쉽지 않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바닐라 라떼를 먹던 사람이 바닐라를 빼고 라떼만 마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아메리카노로 넘어가는 것보다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식과 싸움은 개인의 의지의 문제, 자아의 힘의 문제로만 보기보다 소비주의라는 우리를 둘러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개인의 삶이 환경과의 상호 작용 안에 있고, 변화 또한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원칙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면이다. 그런 이해 없이는 변화에 실패할 때마다 개인은 의지박약이란 절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자포자기의 마음에 다시 과식을 비롯한 무절제한 삶에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과식의 심리학키마 카길 저/강경이 역 | 루아크
이 책은 식품과학, 브랜딩, 마케팅의 발달이 현대인의 식단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식품 제조업자들이 심리학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사람들을 속이는지,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이 어떤 수법으로 소비자들의 욕망을 제조하고 각종 규제에 저항하는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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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과식의 심리학

<키마 카길> 저/<강경이> 역13,500원(10% + 5%)

‘먹방’ ‘쿡방’의 전성시대, 우리는 왜 먹고 또 먹는가! 이 책은 식품과학, 브랜딩, 마케팅의 발달이 현대인의 식단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식품 제조업자들이 심리학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사람들을 속이는지, 식품산업과 제약산업이 어떤 수법으로 소비자들의 욕망을 제조하고 각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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