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진 “시와 그림은 슬픔을 퍼내는 도구”
그림과 시와 마음을 읽는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이 글은 저에게 말을 거는 시도였어요. ‘잘 지나왔어’ 라든지, ‘이만하면 됐어’ 같은 말을 스스로 계속하면서 내가 지나온 감정에 의미를 주는 거예요. 의미를 주고 해석하면 슬픔이 쌓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갈 것 같았어요.
시나 그림을 읽어주는 책은 많다. 시와 그림은 어렵고 누군가 대신 읽어주면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시와 그림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지식과 작가가 숨겨놓은 뜻을 밝히는 작업일까? 보고 느낀 첫인상을 유려하게 긴 글로 풀어내는 일일까? 평론가처럼 선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작품을 설명하는 일일까?
시와 그림이 만났다. 카미유 피사로의 <빨래 너는 여인>과 강은교의 「빨래 너는 여자」가, 윤두서의 <자화상>과 서정주의 「자화상」이 서로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에서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편지를 쓰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다. 시보다는, 그림보다는 마음을 더 잘 읽고 싶다면,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는 썩 괜찮은 입문서가 될 수 있다.
책을 쓴 이운진 시인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995년 월간 『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 이후 집안 사정으로 조용히 문단에서는 묻혔지만, “눈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슬픔이 쌓이면서 시를 쓰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책에 담긴 그림과 시는 이운진 시인을 조금 더 성숙하게 했다.
시가 그림이랑 비슷하다는 생각
제목에 ‘고흐’와 ‘시’가 들어갑니다. 그림과 시를 같은 주제로 엮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요?
예술 중에 시, 그림, 음악이 있다면 음악은 제가 익숙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는데, 부모, 고모, 삼촌 다 계시는 대가족 속에서 살다 보니 음악을 들을 만한 기계도 없었고, 그 흔한 카세트테이프 하나 있는 게 없었어요. 책은 조금 더 구하기 쉬웠어요. 책 속에는 그림도 있었고요. 어릴 때 읽었던 세계명작 안에는 삽화랑 명화가 많이 들어가 있었죠. 그때 그게 참 예뻤어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글은 어려웠지만 그림이 좋더라고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많이 보고 읽다 보니 시가 어떤 그림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여러 번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씩 좋은 그림과 시를 공책에 적으면서 짝짓기 시작했죠.
가수 요조와 정여울 작가의 추천사가 들어갔습니다.
책이랑 가장 어울릴 만한 분에게 추천사를 받았어요. 책이 나오고 정여울 선생님하고는 이메일로 인사를 드렸어요. 정여울 선생님 책을 제가 세 권이나 읽었거든요. 독자로서 작가를 만나서 특별히 감사한 일이었죠.
사계절 출판사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나온 책이에요.
이전부터 쓴 글은 있었는데, 공모전을 늦게서야 봤어요. 이미 80% 이상 써 놓은 글을 마무리해서 투고했죠.
처음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신 것 같더라고요.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라는 이전 책을 쓸 당시 둘째 아이가 아파서 돌보느라 큰 아이에게 소홀하게 됐어요. 그것도 공모전에 냈던 글이었는데, 원래는 ‘딸에게 읽어주는 시 편지’라는 제목으로 지었어요. 실은 딸에게 주는 제 편지였던 거죠. 그 무렵 딸이 청소년 대상에 딱 맞는 나이이기도 했고, 못 돌봐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다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아니라서 이렇게라도 남겨놓으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를 쓰고 나서 이후에 쓴 책이라 연결되는 측면은 있지 않을까 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는 딸이 봤나요?
네. 딸도 저랑 닮아서 조용히 읽고 별말은 없었어요. (웃음)
책을 관통하는 어투가 다정해요.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말하는 구어체의 느낌이에요. 이것도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건가요?
꼭 딸이라기보다는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나 친구를 생각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2, 30대가 읽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로서는 그 나이대가 동생 같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그림이랑 시를 봤는데 좋아. 너도 볼래?’ 이런 느낌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적인 지식이나 해설을 쓴 글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구어체가 편해서 선택한 것 같아요.
시를 쓰실때도 주로 구어체를 쓰시나요?
시는 다양하게 써요. ‘다’로 끝나는 어투, 구어체,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달라져요. 이 책은 일반적으로 쓰는 ‘~했다.’ 식의 문장으로 바꿔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러면 느낌이 너무 달라지더라고요. 결국에는 다시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느낌이 됐으면 했죠.
슬픔이 고요하게 깔려 있다
고흐의 <슬픔>을 처음 봤을 때 에피소드가 나와요.
고향이 거창이잖아요. 지금 빨리 달려도 네 시간이 걸리는 덕유산 밑 아주 산골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거기서 보내고 대학을 서울로 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으로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원하던 대학이나 전공은 아니었어요. 원하지 않았던 상황과 생소한 환경 속에 던져진 건데,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당시 제 나이가 열아홉이었어요. 열아홉 살에게 서울이 얼마나 크고 힘들고 화려했겠어요. 반대급부로 저는 초라하고 작고 주눅이 든 거죠. 그래서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았어요. 어느 날 일기장에 ‘서울은 공중변소 같다’는 문장을 써 놨더라고요. 제 느낌에 서울이 그렇게 다가왔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책을 읽는데 고흐의 <슬픔>을 보게 됐어요. 엎드려 읽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울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한참을 울고 나니까 내가 이렇게 깊이 슬펐구나, 속으로 여러 번 나에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로 고흐부터 시작해 화집을 찾아보면서 그림이 점점 저에게 가까이 다가왔어요. 시보다 그림이 더 먼저 온 것 같아요.
빈센트 반 고흐, <슬픔>. 1882년, 석판화, 38.9x29㎝,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고흐의 <슬픔>만이 아니고 책 전반을 관통하는 감정이 슬픔인 것 같아요.
아픈 아이 때문에 오랫동안 겪어야 하는 슬픔도 있었고, 가족들로부터 슬픔이 많이 왔어요. 가족은 제가 껴안아야 하고 도망갈 수 없잖아요. 첫 시집이 나오고 그다음 시집이 나오기까지 9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슬픔이 소나기처럼 지나갔어요. 슬픔이 너무 많이 저장되어 있어서 이런 식으로 퍼낼 수밖에 없었어요.
‘성숙해졌다면 그건 시와 그림과 나눈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적기도 하셨는데요.
이 글은 저에게 말을 거는 시도였어요. ‘잘 지나왔어’ 라든지, ‘이만하면 됐어’ 같은 말을 스스로 계속하면서 내가 지나온 감정에게 의미를 주는 거예요. 의미를 주고 해석하면 슬픔이 쌓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마 저랑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이 읽으면 자기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위로받았다는 느낌일 수도 있어요. 가족의 일이니까 남에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 삭여야 되는데 나를 들여다보는 매개가 시와 그림이 된 거죠. 성숙해졌다는 표현은 그 감정을 바탕으로 나온 것 같아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이라는 게, 요새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 시대가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 그런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칼 융의 자서전에 ‘내 마음의 치유자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와요. 결국에는 내 마음을 내가 치유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깨달음도 있었고요. 따뜻한 눈빛도 있었고, 방황했지만 고요했던 시기가 있었고, 아프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걸 글을 쓰면서 발견해 내더라고요. 그러면서 기저에는 슬픔이 고요하게 깔린 것 같아요. 하지만 슬픔을 슬픔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그 위에 따뜻한 색을 입힐 수 있어요.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여서 이것이 나를 키우는 데 거름이 됐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림과 시를 읽는 방법
그림도 직접 그리시나요?
제 소원이에요(웃음). 스케치는 가끔 해요. 이렇게 책이 나오면 책 표지를 그린다거나, 누군가 꽃다발을 주면 사진도 찍어놓지만 한 장씩 드로잉으로 그려 놔요. 그림은 글쓰기보다 훨씬 어려워요.
그림을 읽는 방법과 시를 읽는 방법이 다를 것 같아요. 작가님은 그 둘을 어떻게 읽나요?
영화를 보면 어떤 장면의 느낌만 가득하지, 줄거리를 전달하지 못해요. 소설을 읽을 때도 너무나 빠져서 읽은 소설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내용인지 말할 수 없어요. 느낌을 가져오는 거지 그 이야기의 서사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림도 그래요. 그림 앞에 섰을 때 받는 느낌이 항상 중요하고 좋아요. 그래서 그 느낌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나에게 느낌을 주는 그림이 저에게는 좋은 그림이에요.
책을 내면서 빠진 원고도 있나요?
보테로가 그린 <모나리자, 열두 살>이 있었어요. ‘뚱뚱하면 어때’ 이런 제목으로 썼는데 비슷한 주제로 묶으면서 안타깝게 빠졌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 주제 안에서 서로 맞는 시와 그림을 찾아내야 하는 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림과 시가 딱 맞아 떨어지는 걸 찾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체로 메모해놨던 아이디어 중에서 제 이야기와 겹치는 걸 글로 썼어요. 너무 소개하고 싶은데 알맞은 시를 못 찾아서 못 쓴 것도 많아요. 윈슬러 호머의 <여름밤>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달빛이 비치는 바다 앞에서 두 여인이 춤을 추는 그림인데, 보면 가슴이 막 두근두근하거든요. 달빛이 비치는 바다의 색이나 배경도 너무 좋아서 꼭 넣고 싶었어요. 제목도 ‘쉘 위 댄스’로 정해놓고요.
윈슬러 호머, <여름밤>. 캔버스에 유채, 76.7cmx107cm, 오르세 미술관
지금 생각해 봐도 비슷한 시가 떠오르지 않네요.
집에 시집이 천 권쯤 있는데, 정말 다 뒤지고 인터넷을 오랫동안 찾아도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았어요. 심지어 제가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림 망칠까 봐 못 썼죠. 물론 다른 사람이 찾으면 맞는 걸 찾았을 텐데, 한국어 시로 한정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엄마가 딸에게
아까 고향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골에서 살다 올라와 시인이자 두 아이 엄마로 사는 경험이 시나 글을 쓰는데 영향을 많이 주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릴 때는 시골이 너무 좁아서 참 싫었어요. 빨리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굳이 서울에 오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쳤는데, 아이를 낳고 이제 조금 뒤돌아볼 나이가 되고 나니까 고향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 제가 빌딩 숲에서 자라지 않고 둥근 산, 작은 개울이 키운 게 정말 다행이구나, 그래서 아마 이만큼이라도 글에 물기가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그때야 고향이 좋아졌어요.
엄마로 사는 건, 저한테 선생님 같은 일이에요. 엄마가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앞의 책도 사실 딸에게 주는 책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쓰지 못했을 거고요.
아이들한테도 시나 책을 보여주는 편이신가요?
어릴 때는 목록을 뽑아놓고 그중에서 동그라미를 치게 했어요. 그럼 재밌는 책도 고르고 재미없는 책도 고르고 하잖아요. 책도 선택하고 고르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두 권 고르고 아이가 세 권 골랐다면, 조금 커서는 다섯 권 고르게 하는 식으로요. 시험 끝난 날은 꼭 서점에 가서 책 사는 날로 정했어요.
친구나 동생,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라고 하셨는데, 딸이 컸으니 지금은 친구 같겠어요.
네, 친구 같아서 좋아요. 열아홉 살 때 서울로 와버리고 엄마랑 그런 걸 못 해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하고는 둘이 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둘 다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와 제 관계같이 하지 않고 조금은 마음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옛날의 나를 보면서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엄마 역할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도 따님에게 보여 주셨어요?
싸인해서 네다섯 권 친구들에게 갖다 주더라고요.
쓰다 보면 기회는 온다
같이 시를 쓰는 ‘시 친구들’이 있나요?
동료 문인들은 있어요. 스물다섯 살에 등단했어요. 일찍 한 거죠. 그러고 나서 십 년 동안 시를 쓰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고 지내서 문단에서 사라진 존재였어요. 결혼하고 애도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그렇게 십 년이 금방 가버리더라고요. 그래도 틈틈이 쓰면서 첫 시집이 나오고 다시 시작해봐야겠다고 했는데, 원래도 없었지만 학연이나 인맥, 배경 없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어요. 심지어 등단시켜 준, 저를 추천해 준 선생님도 가물가물한 상태였어요. 그러다가 공모전을 생각한 거죠. 저같이 아무것도 없고 소외된 사람에게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요새 문인들에게는 항상 ‘문단 내 성폭력’을 물어보게 되는데요. 문인이 모인 자리에서 불평등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문단 행사에 나간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없지만 저같이 집에만 있는 사람들한테도 소문이 들리잖아요. 그 소문이 진짜로 밝혀졌다는 걸 기사로 보니까 부끄럽죠. 같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같은 문단에 있다는 게 부끄러워요. 하지만 용기 있게 말해서 이만큼이라도 밝혀졌으니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돼요. 이번 기회를 통해 꼭 자정이 됐으면 해요.
문인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계속 인내를 가지고 쓰다 보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잖아요? 올해 공모전 당선됐다고 연락 오고, 이렇게 인터뷰도 잡히는 걸 보면서 그래도 조금은 공정함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매우 기뻤어요.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되는 게 공모전이라 계속 그쪽으로 도전했던 것 같아요. 의지를 가지고 한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더라고요. 누군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고 썼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뼈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나면 약 바르잖아요. 마음은 다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럴 때 글 한 줄이라도, 그 마음에 닿는 연고가 되면 제일 좋고 가장 큰 욕심이에요. 여러 가지 다투고 화해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잖아요. 그 일들이 삶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이고, 온기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저는 제가 참 좋아졌거든요. 제가 슬픔을 봤던 20대, 30대가 넘고 나니까 저는 저를 조금 다독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고 글을 쓰고 믿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저도 그런 나이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가 된다면, 이 책이 값진 의미가 될 거로 생각해요.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이운진 저 | 사계절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는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발견한 순간에 출현하는 기쁨과 슬픔, 애도와 성숙의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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