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자유롭게 해도 좋아
“두 시간 동안 뭐하냐?” 가이드가 준 자유 시간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조차 눈치를 봐야 했던 나에게 가이드 투어 중에 얻은 보석 같은 두 시간의 자유란. “뭐든 자유롭게 해도 좋아” 이 말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은 자유를 바라지만 막상 자유의 몸이 되면 엄청난 불안을 안게 된다. 친구와 가이드를 붙여 세부 여행을 갔다. 나와 친구를 포함한 세부 여행객 여덟 명은 3박 4일 동안 싸구려 봉고차 안에 몸을 우겨 넣고, 라프라프 디스커버리 투어를 돌았다.
여행 일정에서 가장 답답했던 기억은 가이드 투어 중에는 커피 한 잔 내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처에 세부에서 유명하다는 커피 전문점이 보이길래 들어가보자 권했더니, 가이드는 모두가 찬성해야 한다며 엄포를 놨다. 친구가 나름의 언변을 펼쳐 여덟 명의 만장일치를 얻어냈고, 기적적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겟했던 일화도 있다. “이제부터 자유시간 입니다” 하루쯤 지났을까 가이드는 우리에게 두 시간의 자유시간을 선포했다. 그는 우리의 목줄을 풀어주고 홀연히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남은 여덟 명의 관광객은 어미 잃은 아기새 심정이 되었다. 그토록 원한 자유 시간이었건만 나와 친구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 망설였다. 근처 익숙한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를 찾아 들어가 시간을 때우며 결국 두 시간 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은 자유를 바라지만 막상 자유의 몸이 되면 엄청난 불안을 안게 된다. 그곳이 사회든, 학교든, 가이드 투어 버스 안이든 어디든 마찬가지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유가 된 개인은 엄청난 불안을 안게 된다. “모든 자유롭게 해도 좋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한다. 누구라도 좋으니 리더를 찾아 따라붙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 누구인가?'하는 '자아 찾기'가 요즘 젊은 사람들의 테마처럼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돌팔이 점쟁이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너는 00이다"라는 정의를 듣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42쪽)
옛날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테를 두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사, 집에서는 부모의 말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도 참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테를 두르고 푸는 법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이들의 테를 풀어놓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도 한다. 걸핏하면 열심히 할 것이 강요한다. ‘넘버원’이 무리라면 ‘온리원’을 지향하라든가, 뭐든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패러독스다.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들,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더 많이 않은가. 자유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테두리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하는 세계, 즉 테두리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돈이다. (77쪽)
인간의 지혜와 상상력은 장애물이 있을 때 더욱 풍성하게 발휘된다. 지혜와 상상력으로 벽을 넘은 곳에 자유의 기쁨이 있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허락된 세계에서는 지혜도 상상력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먹고 싶은 거나 먹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이 고작이다. (79쪽)
테를 두른다는 것, 제대로 된 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기타노 다케시와 의견을 같이 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두꺼운 벽이 있으면 아이들은 내버려두어도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유스러워지려고 발버둥친다”고 말했다. 벽을 부수거나, 구멍을 파거나, 그 안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나름의 자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조금 더 친절한 가이드였다면, 초짜 여행객에게 자유 시간에 앞서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테를 둘러주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선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테를 두르는 것과 푸는 것이다. 너무 조여도 오래가지 못하고 풀어줘도 틀이 흐틀어져 버린다. "뭐든 자유롭게 해도 좋아"라는 말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기타노 다케시 저/권남희 역 | 북스코프
이 책은 젊은 시절 택시기사부터 엘리베이터 보이까지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스트립 극장에서 만담을 시작해 희극배우로서 실력을 쌓아 마침내 최고의 위치에 올랐으며, 오토바이 사고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던 기타노 다케시의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과 독특한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는 책이다.
감상의 폭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고 믿는다.
감동한다는 건 곧,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스타일24 웹진 <스냅> 기자.
<기타노 다케시> 저/<권남희> 역10,800원(10% + 5%)
「하나비」 「자토이치」 「기쿠지로의 여름」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거장의 유쾌하고 진지하며 독창적인 세상 읽기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다케시 군단’을 거느린 일본 최고의 방송인 기타노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