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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피드백은 듣고 어떤 피드백은 흘리란 말인가?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 (3)
뚝심 있게 일을 밀어 붙이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당신에게 일의 본질에 대해 묻는 피드백이 당도한다면 잠시 멈춰 서서 되돌아 보자. 지금 나의 일은 누구를 겨냥한 일인지, 무엇을 하려는 일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공정한 일인지.
(‘‘런닝맨’은 했고 <나는 남자다>는 하지 못한 것 ? 피드백을 빠르게 받아들일 것 (2)’ 에서 이어집니다)
앞서 우리는 피드백에 빠르게 대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명운이 갈렸던 순간들을 살펴보았다. 바릴라 사(社)나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tvN <더 지니어스> 시리즈처럼 빠르게 피드백을 반영한 케이스들은 살아남았고, JTBC <잘 먹는 소녀들>이나 KBS <나는 남자다>처럼 피드백에 제 때 응답하지 못한 케이스들은 결국 실패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밖에서 바라볼 때는 내리기 쉬웠던 진단이, 안에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때에는 막상 내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의 입장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보기에 전체 그림을 조망하기 어렵고, 외부의 피드백으로 자신이 직접 내린 선택과 판단을 수정할 만큼 객관적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보단 내가 더 이 프로젝트를 잘 알고 있다는 주인의식은 종종 피드백에 귀를 닫는 실수를 범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수많은 피드백을 죄다 수용해버리면 기획은 점점 산으로 올라가 원래 의도나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질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피드백을 수용하고 어떤 것들은 밀어 붙여야 한다는 것일까?
지금 하는 일은 공정한 일인가
놓쳐서는 안 되는 피드백의 첫째는 공정성에 대한 피드백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즐기는 문화 콘텐츠나 소비하는 상품, 서비스 등이 공정한 기준에 의해 작동하길 바란다. 그래야 콘텐츠 제공자가 제시하는 방향성을 납득할 수 있지, 이렇다 할 기준이 없다거나 납득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앞서 살펴본 사례 중 서바이벌 게임을 선정하고 운용하는 데 최소한의 공정함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자 다음 시즌에 바로 수정에 들어간 tvN <더 지니어스> 시리즈나, 쇼의 원칙을 깬 재도전을 강행했다가 시청자들의 비판 끝에 쇼를 재정비해야 했던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에 잔인하기 그지 없는 룰을 설계하고서는, 그 룰대로 경연을 한 뒤
너무 잔인하다며 임의로 재도전 기회를 줬다.
시청자들이 분노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 MBC. 2011
중요한 건 이 공정성이라는 가치가 포괄하는 범위가, 시대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넓어진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기준이었다면 소위 ‘정상가족’ 모델에 집착했던 바릴라 사의 선택에 대해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 소수자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권리와 다양한 가족 모델을 긍정하라는 요구가 높아진 오늘,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면서 특정 형태의 가족은 캠페인에서 배제하겠다는 바릴라 사의 선택은 전 사회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여자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접근에서 세심함을 잃었던 JTBC <잘 먹는 소녀들>에서도 지적됐던 바다.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동 시대에 어떤 가치가 꾸준히 언급되는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하는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
놓쳐서는 안 되는 피드백 두 번째는 타겟팅 오류에 대한 피드백이다. 내가 준비해 선보인 기획이 과연 노려야 할 타겟에 정확하게 전달이 되는가의 여부는 일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KBS <나는 남자다>는 남성 시청자들끼리 모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 클럽 내지는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공기를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정작 이에 공감해야 할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이나 남성 시청자 층이 보기엔 다소 애매한 쇼였다.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채널이라는 특성 상 실제 남초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수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으니, 남초 커뮤니티 유저의 입장에선 굳이 이 프로그램을 꼭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방송의 표준 타겟 시청자층이라 할 만한 2049 여성층이 보기엔 배타적인 쇼였다. <나는 남자다>는 방송 앞머리 경고문으로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방송을 원칙으로 합니다. 하지만 몰래 시청하는 여자들을 더 환영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남자들끼리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 하는 여성 시청자 층의 유입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여성 시청자의 입장에선, 이미 한국 예능 프로그램 중 남자들끼리만 모여 이야기 하는 걸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넘치게 많은데 굳이 아예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방송’을 표방한 프로그램까지 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남자다>는 그 어떤 타겟층도 매료시키지 못했다.
말을 걸고자 하는 타겟층이 어디인지 정확히 하지 못하면,
아무리 유머를 담아 관심을 부탁해도 대답을 얻기 어렵다.
<나는 남자다> ⓒ KBS. 2014
지금 하는 일의 정체가 무엇인가
놓쳐서는 안 되는 피드백 세 번째는 정체성에 대한 피드백이다. 어떠한 종류의 일이든 그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거두게 된다. 앞서 언급한 KBS <나는 남자다>는 1시즌 중반이 되도록 자신들이 생각하는 남자의 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보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건네야 좋을지도 파악하지 못했고, 그 탓에 끝내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또한 초반에 “걷지 말고 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면서도 방울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까진 그 정체성을 명확하게 가시화할 방안을 찾지 못해 잠시 주춤거렸다.
정체성이 확립되기도 전에 소소한 세부 포맷이 터지자 거기에만 몰두했다.
그랬으니 그 포맷이 시들해 진 이후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뜨거운 형제들’ ⓒ MBC. 2010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뜨거운 형제들’을 잠시 살펴보자. ‘뜨거운 형제들’은 자신들이 어떤 종류의 쇼인가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터져버린 아바타 소개팅 포맷의 성공에 고무되어 계속 아바타 소개팅과 상황극을 밀었다. 그러나 ‘웃기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예능이 공유하는 바였고, 아바타 소개팅의 경우 한정된 조종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다 보니 점점 애드리브나 대화 패턴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굳어졌다.
쇼 자체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면 그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른 코너를 시도해 볼 수 있었을 것이나, 정체성이 제대로 서기 전에 개인기 먼저 발굴해 버린 쇼에게 딱히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지 않았다. ‘뜨거운 형제들’은 갑자기 시골 분교를 찾아가 일일교사가 된다거나, 아이들의 일일 아빠가 되는 등 과거 MBC가 강세를 보였던 공익 예능을 연상케 하는 아이템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동일한 쇼라고 보기엔 앞서 선보여 온 근본 없는 코미디와의 온도차이가 너무 컸다. ‘뜨거운 형제들’은 결국은 제대로 된 두 번째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폐지되고 말았다.
피드백은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도 오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온다. 때로는 그 수많은 피드백 중 어떤 것이 일의 명운을 가를지 판단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초기에 일을 계획하는 단계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다. 뚝심 있게 일을 밀어 붙이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당신에게 일의 본질에 대해 묻는 피드백이 당도한다면 잠시 멈춰 서서 되돌아 보자. 지금 나의 일은 누구를 겨냥한 일인지, 무엇을 하려는 일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공정한 일인지.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