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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어디로 가세요?

비일상적 여행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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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속초여행 당일치기 패키지를 보고 생전 처음 충동적으로 여행 상품을 구매할 뻔 했는데, 관계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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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부흥의 시대를 맞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쓰면 좋겠다는 망상을 한 적이 있다. ‘생활밀착형 젊은 한국어’라든지 ‘한국인처럼 이야기하는 한국어’ 같은, 문법과는 상관없이 실생활에 쓰이는 말로만 이루어진 교재 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결혼했을 때를 가정해 이런 대화문이 나오는 책.

 

혜진 : (청첩장을 건네며) 저 드디어 갑니다.
일동 : 어머 축하해요. 어디로 ⓑ가요?
혜진 : 하와이요.
일동 : 좋겠다. 부럽다.

 

문제 : 다음 중 밑줄 친 단어의 뜻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1. ⓐ - 퇴근하다 ⓑ - 퇴근하다
2. ⓐ - 결혼하다 ⓑ - 옮겨지다
3. ⓐ - 혼미한 상태가 되다 ⓑ - 결혼하다
4. ⓐ - 결혼하다 ⓑ - 여행을 떠나다
5. ⓐ - 여행을 떠나다 ⓑ - 옮겨지다

 

한국어 고급 구사자를 위해 ‘집은 구했어요?’, ‘월세에요 전세에요?’ 등의 대화를 추가해도 좋겠다. 물론, 망상일 뿐이다. 하여튼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혼보다 신혼여행을 더 부러워한다.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지 나중에 외국인 친구가 생기면, 그리고 그 친구가 결혼이든 재혼이든 하면 주변 반응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저 질문이 얼마나 무해하고 의미 없는 잡담인지 안다. 날씨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휴가철이 되고 누군가 결혼을 하면 여행을 소재로 대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다만 이 현상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행을 항상 좋고 부럽고 기회만 닿으면 떠나야 하는 경험으로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다.

 

여름 대목이 다가오면 대형서점의 여행서 매대는 전쟁터가 된다. 매대의 여행서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것은 죄악이라고. 어떤 위험과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여름휴가를 멋진 여행지들에서 보내라고. 인도양의 산호초, 뉴욕의 5번가,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미얀마의 석불이 당신을 기다린다고.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비슷한 것이 되어서 누구도 대놓고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혹시 신입사원 모집 공고마다 나오는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없을 것"이라는 문구의 영향일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나약하고 게으른 겁쟁이처럼 보인다. 폰 쇤부르크처럼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더라면 '우리 귀족들은 원래 여행을 안 좋아해'라고 우아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 같은 평민들이 쓸 수 있는 레토릭이 아니다.

- 김영하, 『보다』

 

책의 힘을 빌려 고백하자면 여름 휴가 기간에 그냥 집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내가 이상한 걸까 봐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물 좋고 공기 좋고 귀여운 동물들이 있는 지역에 가는 것 매우 좋아한다. 다만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먹고 뭘 하는지 SNS에 남기는 일이, 남들 다 가는 곳이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든, 쉬는 여행이든 모험을 떠나는 여행이든 다른 지역에 가는 행위가 찬양받는 게 어색할 뿐이다.

 

여행을 다니는 행위는 가장 효과적인 소비 방법이라는 생각도 했다. 빚을 내 물건을 사면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소비라고 욕을 먹지만 빚을 내 세계 여행을 다녀오면 용기 있고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 추대받는다. 남들이 가지 않은 여행, 누구보다 길게 간 여행은 특별한 스펙이 된다. 책은 책장을 넘어 침대를 침범하는 순간 소비를 멈춰야 하지만 여행은 그저 갔다 오면 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서를 사는 건 덤이다.

 

그렇기에 저 역시 그간 45개국 이상을 다니며 인생의 10분의 1 이상 방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낀 것은 그들이 여행지에서 ‘비일상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중략) 다시 말하자면, 여행을 싫어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비일상성’은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합니다.

- <대학내일>, 최민석 칼럼 '여행을 싫어하면 이상한 건가요?' 

 

칼럼의 힘을 빌려 나는 그저 일상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점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의미를 부여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원하는 이유는 단지 이곳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만 다녀오면 일상이 원하는 상태로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번 휴가 때 읽을 책은 『내 방 여행하는 법』으로 정했다. 청소할 시기를 놓친 지 한참 되어 엉망인 내 방도 낯설게 보면 혹시 깨끗해질지 모른다. 

 

그나저나 속초여행 당일치기 패키지를 보고 생전 처음 충동적으로 여행 상품을 구매할 뻔 했는데, 관계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이렇게 여행에 흥미없는 사람도 지금 속초에 갈 정도인데 웬만하면 규제를 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앱은 다 깔아놓고 기다리고 있단 말입니다. 여행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주머니괴물잡아라 게임을 하는 것도 역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집에 있어도 내수 진작은 확실하게 해드릴 테니 어떻게 좀,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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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하는 법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저/장석훈 역 | 유유
여행은 구경이 아닌 발견, 여행 개념을 재정의한 여행 문학의 고전 . 18세기 서양 문학사에서 여러모로 선구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주제가 분방하고, 경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체를 지녀 훗날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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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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