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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냄비 근성이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권수영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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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오랜 세월 겸양의 미덕을 품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래서 남 앞에서는 나를 숨기고 나를 낮추는 일을 덕으로 여겼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에 대한 나 자신의 관심은 점점 적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한 관심만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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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아카데미의 대중강연은 지난 2013년부터 개인의 삶과 죽음에 관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고자 했다. 그 중 하나였던 강연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역사, 사회, 종교, 미학, 사상 등 각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다각적인 시선으로 ‘우리’에 대한 물음에 답해갔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는 2015년 진행한 강연을 다시 옮긴 책이다. 제1부에서는 진중권, 권수영, 이기동, 유동식 교수가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그 속에 감춰진 힘이 무엇인지를, 제2부에서는 조한혜정, 한명기, 신용하, 김동길 교수가 세계 속 한국의 역사를 통해 세계 권력의 교체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이 취해야할 모습을 고민한다.

 

공저자 중 한 명인 권수영 저자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보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석사,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공감육아』, 『한국인의 관계심리학』 등이 있다.

 

 

한국인이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인은 오랜 세월 겸양의 미덕을 품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래서 남 앞에서는 나를 숨기고 나를 낮추는 일을 덕으로 여겼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에 대한 나 자신의 관심은 점점 적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한 관심만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러다 지쳐서 나를 돌아보려고 하면, 그때는 정작 내가 나를 너무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우리 각자의 내면을 진지하게 관조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민족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외부적인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여전히 내면의 행복 수준은 후진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한국인의 특성과 이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우리 아내’ 혹은 ‘우리 남편’이란 말을 외국인들 앞에서 쓴다면 큰 오해를 받을 수 있어요.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겠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문화적으로 나 자신의 독립성보다 집단 안에서의 자신의 소속감이 더 중요하고 집단 내 관계 형성을 우선시해 온 집단주의 문화의 언어 습관이지요. 수업시간에 한국 학생들이 자신이 궁금한 게 있어도 질문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이나 선생님은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항상 먼저 고려하느라 시간을 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욕구를 도외시하면 집단에게 쉽게 휩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집단의 이기주의가 발동하면, 개인의 욕구는 무시되고 나라 전체가 분파와 갈등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교수님 글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한국인은 왜 자주 뚜껑이 열릴까요?

 

분명 한국인들이 뚜껑이 자주 열리는 데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뚜껑이 잘 열리는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체면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입장 때문에 분노 감정을 꾹꾹 눌러온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심하게 억누르면, 언젠가는 튀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고 봅니다. 민주화 시대에는 폭넓은 정치인들이나 다양한 지도층 인사들의 분노가 당연시되고,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었습니다. 심지어 분노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욱하는 성질을 가진 방송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약자에게 분노 감정을 표출하는 강자의 ‘갑질’은 큰 문제처럼 자주 언급됩니다. 꼭 갑질이 특정 인물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한국인 누구나 ‘갑질’은 가능합니다. 때로는 화풀이할 ‘을’이 보이지 않으면, 나이 어린 자녀나 애꿎은 반려동물에게 ‘갑질’을 할 수도 있어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우리 모두가 한국인들의 분노 심리 내면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분노 감정은 원심력을 가진 감정이라 설명합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원심력은 실재하는 힘이 아니고, 동일한 구심력이 우선한다고 합니다. 분노 감정을 만들어내는 구심력이 있습니다. 바로 관계에 대한 욕구입니다. 우리 민족은 타인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배려받지 못하면 부적절감과 수치심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구심력의 느낌이란 스스로 수용하기에 너무 아픈 감정입니다. 그래서 구심력 감정을 방어하는 원심력 감정인 분노를 대신 상대에게 표출하는 원리입니다. 부부나 자녀와 같이 상대방에 특별한 관계를 원하는 욕구가 크면 클수록 더욱 분노 감정을 느끼기 쉽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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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감정을 악한 감정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분노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분노 감정을 나쁘게 여기면, 바로 분노 감정을 일으킨 자신에 대한 또 다른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분노는 자신 안에 있는 구심력을 찾도록 돕는 신호 감정입니다. 마치 주전자 뚜껑이 열리면, 뚜껑은 주전자 안에 뭔가 끓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순기능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구심력을 살피려면 분노를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관계 욕구(바람)를 찾아야 합니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서 생긴 구심력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승진에 실패한 남편은 집 안에서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아내에게 어느 날 벼락같이 화를 냅니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남편에게 아내는 오히려 내가 눈치를 보고 있구만 누가 누구를 무시하냐며 따집니다. 안타깝게도 뚜껑끼리 부딪히는 순간입니다. 남편은 먼저 자신의 관계 욕구를 찾아야겠지요. 남편은 아내와 눈을 마주하고 괜찮다는 위로를 받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었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자 남편으로서의 부적절감을 더 많이 느꼈던 것입니다. 오히려 남편은 분노를 멈추고 자신의 간절한 바람과 자신의 부적절감을 나눌 수 있다면 부부 사이는 공감을 통해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이미 생겨버린 화병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화병을 치유하기 위해 결국 그 화풀이 대상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화를 풀도록 했어요. 예컨대 빈 의자에 시어머니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화풀이를 해보라고요. 참았던 분노를 표출하면 그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풀어내야 할 감정은 사랑받고 싶었던 욕구가 무너지면서 생긴 자신에 대한 비참함과 슬픔이지요. 이러한 구심력 감정을 나눌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에게 직접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상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대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따라해볼 수 있는 감정 조절법이 있을까요?

 

자주 소개하는 감정 조절법이 있어요. 특히 뚜껑이 열릴 때 사용할 수 있는 <구나-바람-느껴> 3단계 대화법이에요. 1단계는 상대방과 자신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이구나” 라고 이야기하는 단계입니다. 이때 뚜껑이 열린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왜 사람을 무시하고 그래, 기분 나쁘게!”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집에 들어와서 밥 먹는 동안 내내 나를 쳐다보지를 않았’~구나’”라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다음 단계는 나의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이 내 눈을 마주치면서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마지막 단계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 내 느낌을 전달합니다.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내가 더욱 더 창피하게 ‘느껴’”라고 말한다면 분노의 원심력 대신 자신의 구심력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는 방식이 됩니다.

 

신학과 교수와 상담ㆍ코칭지원센터 소장이라는 직분을 함께 맡고 계신데요. 종교와 심리 사이에 어떤 연계성이 있나요?

 

미국에서 상담(counseling)이란 말을 처음 만든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신학 공부를 했던 심리학자였어요.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이 의사의 역할이었다면, 마음의 치유는 성직자의 역할이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쾌락을 행복으로 여기는 향락적 생활이나 명예로운 삶을 행복으로 여기는 정치적 생활뿐 아니라, 명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삶을 행복으로 여기는 관조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신의 활동과 가장 많이 닮은 삶이라고 토를 달지요. 특히 21세기에는 종교와 신에 대한 탐구야말로 알파고나 슈퍼 컴퓨터는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들만의 궁극적 행복을 이루는 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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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권수영,김동길,신용하,유동식,이기동,조한혜정,진중권,한명기 공저 | 21세기북스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강연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역사, 사회, 종교, 미학, 사상 등 각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은 다각적인 시선으로 나를 넘어 ‘우리’에 대한 물음에 답해갔다. 그리고 2016년, 그 화제의 강연이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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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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