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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화를 좀 꾸꾸루꾸꾸 비둘기 cucurrucucu paloma

박상의 턴테이블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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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대체 인류가 얼마나 더 망해봐야 가질 수 있는 가치일까. 아 쫌 상대를 시원하게 인정하고, 배려하면 안 되나. 나와 다르다고, 힘 좀 세다고, 말 안 듣는다고, 때려서 굴복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서로 인정해 줘야 이 좁은 지구에 다 같이 살 것 아닌가.


비둘기야 어딜 가니 나랑 같이 춤을 추자
비둘기야 어딜 가니 나랑 같이 술 마시자
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비둘기

 - 크라잉 넛 <비둘기>

 

혼이 비정상인(?) 테러 소식들로 쓸쓸한 요즘, 이 노랠 자주 듣게 된다. 평화를 잃은 불안한 심정을 비둘기에 비유한 것처럼 들려서다. 좌절감을 호소하는 절규에 가까운 샤우팅의 전율과, 연발로 애타게 비둘기를 호명하는 목소리가 딱 내 심정이다. 평화 따위 엿 바꿔먹은 시대의 영가(靈歌)로 들릴 지경이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는 어디 갔을까? 닭둘기, 똥둘기로 불리며 도심의 민폐 캐릭터가 된 지 꽤 되었다. 자기 발밑은 다 변소라고 생각하는 새대가리 괄약근을 가진 놈들인 데다, 몸에 변기의 1.5배에 달하는 세균을 지녔다니까 거 참 곱게 보기 힘들다. 그래도 비둘기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기도 한 쌍팔년도 올림픽 때 개막식 이벤트로 흰 비둘기 천 마리를 한꺼번에 날리는 쇼를 했었다. 그때 잠실에서 날아오르던 건 분명 똥둘기가 아니라 냉전시대가 끝나는 분위기를 대변하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나는 궁둥이에 힘을 주며 감탄했었고 성화대에서 바비큐가 된 놈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개체수 조절에 실패하고 지금의 민폐 캐릭터로 급성장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뭐든 명성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참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caetano-veloso.jpg

 

비둘기 하면 오우삼 감독의 액숀 영화도 떠오른다. 총탄이 난무하고 피가 튀기는 장면 속에 꼭 비둘기 날아오르는 장면을 섞는 게 오우삼 감독의 ‘야마’ 혹은 ‘트레이드마크’였다. 폭력의 상징인 총과, 평화의 상징인 하얀 비둘기의 대비가 주는 선뜩한 강렬함이 예술적이었다. 


그 시절 시인과 촌장의 <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 <비둘기에게>라는 ‘비둘기 송’ 클린업 트리오도 정말 좋은 노래들이었다. 그 노랫말들 속의 비둘기는 착하고 순수하고 희망적인 존재였다. 비둘기는 그렇게 우리들과 참 가까웠으나 오우삼 감독이고 시인과 촌장이고 다 옛날 얘기인 거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의 완행열차도 이미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비둘기를 선량하고 평화롭고 정다운 친구로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포스터.jpg

 

오늘의 주제곡 <꾸꾸루꾸꾸 비둘기>는 제목이 좀 웃기지만 웃긴 것과는 거리가 먼 노랫말을 가졌다. 오리지널은 토마스 멘데즈 소사의 곡이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도 불렀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 라는 영화에 최근에 다시 나왔다. 거기 브라질산 실크 목도리 같은 카에타노 벨로주가 미니 콘서트를 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벨로주 아저씨는 처음 봤을 때 노래 참 못 부르게 생겼다고 오해했는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말 녹는다 녹아. 무슨 강동원 앞의 여심처럼 말이다.

 

 

 

이 음악은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밥도 안 먹고 죽도록 술만 마시다 결국 죽었고, 산비둘기가 되어 그 사랑하는 이의 창가에 날아가 구슬피 우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후렴구에 이렇게 위로한다.

 

Cucurrucucu paloma, cucurrucucu no llores. 구구구 비둘기야 울지 마
Las piedras jamas, paloma, 비둘기야, 절대 돌덩어리들은
?que van a saber de amores? 사랑 따윈 모를 걸?
(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면 죄송)

 

요즘 사랑보다는 평화가 더 문제라 난 여기에 평화를 잃은 슬픔과 그 상징을 막 대입했다. 지구에서 전쟁이 끝날 날은 정녕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인간은 돌대가리들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평화를 가차 없이 박살내 온 게 인간의 한계였고, 그 중에 가장 어이없는 건 역시나 종교의 극단성이었다. 나는 인간에게 종교의 자유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게 필요 없다고 누군가 믿는 순간 평화가 엿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만 옳다고 믿으면서 이교도 놈들은 죽여야 정신을 차린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평화는 엎어진 라면냄비처럼 되고 마는 거다. 근데 예나 지금이나 이게 참 대책이 안 선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난제다. 아 왜 정치와 종교는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상관없이 절대 발전을 안 하는 거야.

 

난 음악을 만들거나 듣는 이들이 평화로운 존재라고 본다. 평화롭지 않으면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헤비메탈 광팬이든 힙합 광팬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이 옳다고 믿지만 않는다면 평화를 해칠 수가 없다.


그런데 IS의 병영에 과연 감미로운 음악이 흐를까? 상상되지 않는다. 한국 군대에서도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음악만 틀지 않았던가. 심지어 군인 출신의 독재자들은 좋은 음악을 제 맘대로 듣지도 못하게 했다. 음악이 해롭다면서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몹시 해로운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듯 테러리스트가 점령한 땅에, 가엾은 난민들의 행렬에, <꾸꾸루꾸꾸 비둘기>같은 노래가 흐르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영화
<레옹>에서 감독의 가장 섬뜩했던 연출력은 게리 올드만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샷건을 쏴 대는 장면에 드러났었다. 베토벤을 들으며 총질을 하는 모습으로 이 스탠이란 형사가 미친 개 또라이 악역임을 너무나도 잘 보여 준 것이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폭력성은 그렇게 서로 섞이지 않는 물질인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채널예스를 구독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 음악 좀 들으라고 쫌!

 

<꾸꾸루꾸꾸 팔로마>는 평화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창가에,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날아와 울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 아이야이야~ 꾸꾸루꾸꾸 하고 말이다. 그 목소리 오늘따라 참 구슬프게 들린다.

 

평화는 대체 인류가 얼마나 더 망해봐야 가질 수 있는 가치일까. 아 쫌 상대를 시원하게 인정하고, 배려하면 안 되나. 나와 다르다고, 힘 좀 세다고, 말 안 듣는다고, 때려서 굴복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서로 인정해 줘야 이 좁은 지구에 다 같이 살 것 아닌가.


에잉 속상하니까 배에서 꾸룩꾸룩 소리가 나네. 비둘기가 들어앉았나.

 

 

[관련 기사]

- 지하에서 우주로,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 가을 타다 봉변, 마릴린 맨슨 〈Sweet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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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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