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 ‘내 삶을 바꾼 글쓰기’
『서민적 글쓰기』 출간 기념 강연
지난 11월 6일, 신촌에 위치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책 『서민적 글쓰기』의 출간을 기념해, 서민 교수는 ‘삶을 바꾼 쓰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독자들 앞에 섰다.
낮에는 기생충을 연구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서민 교수는 “작년까지만 해도 못생긴 외모를 비관하며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홍보사진을 찍어야 된다고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이렇게 파마를 하게 되었다”며 독자들과 첫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인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글쓰기 덕분입니다. 세상은 글로 가득 차 있어요. 책, 신문, 심지어 영상매체도 시나리오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메신저를 통해 서로 대화합니다. 그러니까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훈련은 교양인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버드는 신입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글쓰기 수업을 듣게 하고, 첨삭지도를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경우 대학입학시험으로 글쓰기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입시에 글쓰기 능력이 거의 요구되지 않습니다. 2016년 대입에서 논술을 반영하는 학교는 전체의 약 4%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는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글을 잘 못 써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을 못 할 뿐이죠. 글을 잘 쓴다면 써먹을 수 있는 데가 아주 많습니다. 일단 취업을 할 때부터 자기소개서는 필수이고, 회사에 입사하면 보고서, 기획서 등 글쓰기가 일상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애편지도 써야 합니다. 저도 결혼생활을 편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외모가 떨어지기 때문에 살면서 편지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에 강의실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연애편지를 포함해, 그 밖에도 우리 삶 속에서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 순간들은 굉장히 많다. 서민 교수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한 가지 꺼냈다.
“논문은 자신이 해낸 연구 업적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이것 역시 글쓰기의 한 종류죠. 이 논문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논문으로 인해 굉장히 고생했습니다. 보통 교수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세 편 정도 논문을 써야 합니다. 저는 2006년 정도까지 거의 한 편에서 두 편 정도를 간신히 썼습니다. 어떤 해는 너무 적게 써서 경고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심각성을 느끼고 글쓰기 지옥훈련을 한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 다섯 편을 썼고 그 후로 평균적으로 여덟 편 정도씩 썼습니다. 2013년에는 방송을 하고 책을 출간하면서도 논문 아홉 편을 썼어요. 그리고 교수들은 연구비 신청서라는 것도 써야 합니다. 자신이 할 연구에 돈을 지원해달라고 설득하는 거예요. 저는 2008년까지 연구비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글쓰기 훈련을 한 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죠.”
이뿐만 아니라 글은 어떤 사람을 전문가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서민 교수는 “전문가라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된다”고 말했다.
“기생충 분야에서 저는 최고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기생충학 교수를 검색하면 저만 나와요. 마치 제가 유일한 것처럼 말이죠. 저는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송 출연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방송에 나가게 된 것 역시 제 책 때문이었죠. 제가 예전에 네이버에 오십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당연히 오십견 전문가는 정형외과 선생님일 텐데, 그 글로 인해 환자들이 저에게 상담을 하려고 하고 방송국에서 오십견을 다루는 내용으로 초청이 오기도 했어요. 이처럼 글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글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책이나 글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서민 교수는, 이제 자신에게 글쓰기란 사회에 발언하는 통로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사회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활발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좋아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제가 어떤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사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기생충 학자로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글쓰기 덕분이죠.“
좋은 글을 쓰려면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서민 교수는 “단순히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실제로 글쓰기 능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차피 글쓰기 책에서 하나같이 요구하는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독서”라고 언급했다. 독서가 글쓰기에 필수적인 이유는 경험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 일단 글을 쓸 때 해당주제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글을 쓸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경험에서 나오는 힘에 대해 독자들에게 강조했다. 경험만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이 어떤 경험이냐에 따라 독자들을 글 안으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용인 캣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한 글을 쓴다면 다음과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험이 들어가면 글이 생생해지고 좋아집니다. 제가 만약 캣맘 사건에 대한 글을 쓴다면 이 이야기를 쓸 것 같아요.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이 기생충은 쥐를 조종해서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어요.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EBS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왔어요. 보호소에서 데려온 고양이였고 촬영이 끝나면 산에 버린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파서, 제가 데려와서 실험실에서 키우기로 했어요. 고양이 이름은 톡소포자충에서 따와서 톡소라고 지었어요. 글에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면 조금 더 생생한 글이 나오겠죠. 하지만 이런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주제에 대해 전부 경험할 수는 없어요. 대신 책에서 읽은 간접경험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글에 녹이면 그 글에는 독창성이 더해진다. 서민 교수는 독창성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며, 그 독창성은 역시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을 읽어야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이 있어야 자신만의 고유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책을 거의 안 읽고 살았어요. 그렇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책을 읽을 때마다 혼내셨거든요. 저는 아버지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아버지 말을 들었죠. 그렇게 책과 멀어졌다가 글쓰기 지옥훈련을 결심하게 되면서 매 달 책을 열 권씩 읽고 블로그에 하루에 두 편씩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당시 드림위즈에 블로그를 만들고, 댓글도 조회수도 거의 없는 사막 같은 곳에서 글을 열심히 썼죠. 저는 글쓰기를 연습하려고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만약 제 블로그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면 솔직하지 못한 글을 썼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더 솔직하게 쓸 수 있었어요. 이렇게 저는 글쓰기에 있어서,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노력을 통해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읽고, 쓰는 일
그렇다면 서민 교수가 생각하는 글쓰기 비법은 무엇일까. 일단 그가 처음으로 꼽은 일은 글쓰기 노트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항상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니면서 글감이 떠올랐을 때 바로 적는 것이다. 글에 대한 영감은 순간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던 그의 칼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도 테니스를 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떠오른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블로그를 만드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블로그를 연습장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매일 쓰라고 이야기했다. 주제는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으니, 쓸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사소한 소재일지라도 일단 글로 적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솔직하게 글을 쓰면 독자에게도 전달이 잘 될 것이고 공감을 얻기도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은 쉽게 쓸수록 좋다. 서민 교수의 글들은 대체로 쉽고 편안하게 읽힌다. 그는 “사람들은 글을 쉽게 쓰면 자신의 무식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쉽게 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고수”라고 말했다.
그는 글을 잘 써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매일같이 글을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손에 항상 책을 지니고 있다가 자투리 시간에만 읽어도 한 달에 최소 세 권은 읽을 수 있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늘 생활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자. 서민 교수가 강연 내내 거듭 강조한 이야기이다. 글쓰기를 통해 그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3년만 노력하면 누구나 저만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10년 안에 내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가지세요. 그렇게 하면 지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저마다 전문 분야가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널리 알리고 다양하게 글을 써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서민적 글쓰기서민 저 | 생각정원
‘재료 모으기의 허술함’ ‘매끄럽지 않은 인과관계’ ‘논리적 비약’ 등. 그는 자신이 쓴 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쓰면 망한다’는 뼈아픈 고백을 풀어놓기도 한다. 더불어 경향신문에서 인기를 모은 칼럼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기생충 연구와 4대강] 등을 분석하면서 서민 교수 글쓰기의 특징인 ‘비유하기’ ‘반어법’ ‘쉽게 쓰기’ ‘솔직하게 쓰기’ 등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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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는 그가 글을 쓰면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를 진솔하게 담은 자전적 글쓰기 분투기다. 서민 교수가 10여 년에 걸친 혹독한 글쓰기 훈련 과정에서 얻은 것은 책을 바라보는 관점과 글쓰기의 기초, 자기만의 글쓰기 방법의 발견 등이었다. 이 책은 이 내용들을 진실하고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저술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