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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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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첫 문장이 암시하고 있듯이 모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갖고 있다. 그 선택이라는 것은 아주 상반되는 것이다. 디킨스가 다른 소설에서도 늘 쓴 것처럼 거의 양극단에 있는 선택지를 향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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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지음, 문학동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에서 정확하게 이 소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선언한다.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두움’. 상반되는 것들을 대치시키는 이 첫 시작은 곧장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나아가 디킨스가 위대한 것은 시작만 거창한 그저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소설의 첫 문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고, 때론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래된 경구들을 넣어 그 책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기도 했다.

 

전작소설이 아니라 한 달 단위로 연재했던 『두 도시 이야기』 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긴장감과 일관성이 있다. 당신은 앞에 놓인 삶의 두 갈래 길 앞에서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소설은 독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진다. 물론 누구라도 좋고 편한 길을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장차 이 세상의 거대한 역사를 만들어낼 선택이라면 어떨까?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은 없다. 용을 물리치는 용감한 왕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내용이었다면 독자들의 반응은 확실히 달라졌을 것이다. 디킨스가 설정한 역사 속 주인공은 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디킨스는 바로 그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작품에 동참하도록 심정을 이끄는 묘한 재주를 타고났다.

 

소설 속에 나오는 ‘두 도시’인 런던과 파리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파리는 고통 받는 도시다. 관리들은 부패했고 시민은 가난에 찌들어 있다. 1부 5장에 그런 파리의 길거리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다. 포도주를 실어 나르던 수레에서 통이 하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깨지더니 술이 온통 길바닥에 쏟아졌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나와 바닥에 있는 포도주를 거둬 마신다.

 

“어떤 남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오므려 포도주를 떠서 홀짝거렸고 어떤 사람은 술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전에 등 뒤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들에게 한 모금 맛보게 해주었다. 깨진 사금파리로 바닥에 고인 포도주를 떠 마시는가 하면, 심지어 머릿수건을 풀어 포도주에 담갔다 아기 입안에 짜 넣어주는 아기 엄마도 있었다.”(48쪽)

 

사람들은 바닥에 있는 포도주가 흘러가지 못하도록 흙으로 둑을 쌓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흙이 섞인 술을 손가락으로 훑어 마셨다.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바닥에 있는 술을 먹지 못한 사람은 술이 배어있는 깨진 포도주 통 조각을 주워서 질겅질겅 씹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후 그곳은 마치 청소부가 지나간 것처럼 깨끗했다고 디킨스는 쓰고 있다. 파리는 이런 곳이다. 여기서 끝맺으면 진정한 디킨스라고 하기 어렵겠다. 이 포도주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다음 어떤 남자가 오더니 남아 있던 붉은 포도주를 손가락에 찍어 벽에 ‘피’라는 낙서를 쓴다. 혁명의 시기가 가까웠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소설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루시와 다네이, 그리고 카턴의 사랑 이야기도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첫 문장이 암시하고 있듯이 모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을 갖고 있다. 그 선택이라는 것은 아주 상반되는 것이다. 디킨스가 다른 소설에서도 늘 쓴 것처럼 거의 양극단에 있는 선택지를 향해 가야 한다. 한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운명 같은 길이다. 어느 시대에 살더라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선택의 문제는 늘 괴로운 법이다. 물론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그만이다. 사회가 정한 규율에서 벗어나지 않고 산다면 한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왕이나 귀족, 혹은 기사단 같은 일부 단체가 권력을 갖는 대신 용기와 신념을 가진 개인들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람들 각각의 미미하지만 소중한 힘을 모으고 엮을수록 강한 목소리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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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성근

서울 정릉. 작가 박경리가 살던 집 근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 태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시 정릉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대학에선 컴퓨터를 전공했고 오랫동안 IT회사에서 일했다.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2007년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활자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책 읽기 기준은 까다롭지 않아서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첫 문장과 깔끔한 마지막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라 믿는다. 헌책방 일을 하는 틈틈이 여러 곳에 글을 쓰고 강연도 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심야책방》,《침대 밑의 책》,《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책이 좀 많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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