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가까워지면서 가장 무서운 말은 애 낳을 때 많이 아프다는 얘기가 아니라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말이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모두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고 누워 있을 때가 편하고 기어 다닐 때가 편하지, 라고 입을 모았다. 머릿속에 대충 그림은 그려졌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대체 아이를 낳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출산을 앞두고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어떤 날은 부른 배가 가슴 밑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차 오른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런 때면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잠도 설쳐서 얼른 아이를 낳으러 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보다 몸이 좀 가벼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내 몸과 배가 원래 이렇게 비대했던 것처럼 이물감도 없고 편한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얼른 낳고 싶다는 맘 같은 건 까맣게 잊은 채 뱃속에 넣고 돌아다니는 자유를 좀 더 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변심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앉아도 서 있어도 누워도 힘든 순간이 늘어났다. 출산 관련 책은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자기 전에 물을 적게 마시라고 권했는데, 자다가 깨는 일도 곤혹스럽지만 그보다는 일어났다가 다시 눕는 일 자체가 워낙 벅차기 때문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다만 저녁이 되면 위산이 역류해서 목이 따끔거려 자꾸 물을 마시게 된다는 게 문제였다. 새벽에 깨서 화장실에 갈까 말까 망설일 때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똑바로 누워 자는 일과 엎드려서 책 읽기, 다리 꼬고 앉는 일을 눈물 나게 그리워했다.
출산 관련 책에서는 또 하나, 임신 후기에는 음식물을 흘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도 쓰여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웃긴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 심각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배가 많이 나와서 식탁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예전처럼 거리 조절을 했다가는 실수하기 십상이었다. 나는 다리만 좀 더 길 뿐 펭귄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뒤뚱거리며 출산을 향해 걸어갔다.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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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