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겁 많은 ‘어른아이’였으니까
여전히 두렵고 모르는 것이 많은 우리인데
우리의 두려움은 생명이나 상황에 대한 부정보다는 놀라움과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나이만 많았지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 많고 이기적인 ‘어른아이’였으니까.
임신 소식을 전한 건 자정이 지나서였다.
옆 사람은 자전거 타는 게 취미라 가끔 꽤 먼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그날이 바로 오랜만에 멀리 가는 날이었다.
임신 얘기를 하고 나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결혼 연차나 우리의 나이, 오랫동안 피임을 했던 걸 고려했을 때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임신을 간절히 기다리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의외의 결과 앞에서 우리는 좀 황망했다.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건강해서 좋네, 뭐.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주고받은 뒤 자리에 누웠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은 것처럼 둘 다 오래 뒤척였다. 그 두려움은 생명이나 상황에 대한 부정보다는 놀라움과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나이만 많았지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 많고 이기적인 ‘어른아이’였으니까.
* 9월 10일은 한 주 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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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서유미,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임신, 육아, 태교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