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달콤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의욕과 반성과 계획 속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한숨을 쉬며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겼다. 2월이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달콤한 시간이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서유미한몸의시간

 

2013년 1월의 서울은 추웠다. 일기예보에서는 한파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소설을 많이 써두면 마음이 든든해져서 추위 같은 건 타지 않을 거야.


야식을 먹으며 옆 사람과 나는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다. 우리 주변에는 의욕만 땔감용 장작처럼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와중에 문화센터의 소설 강의가 시작되었고, 나는 출판사의 신년회와 좋아하는 후배의 책 출간 모임에 참석해 웃고 떠들었다. 소설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근황에 대해 주고받고 고민을 나눈 뒤 돌아오면 질투심과 자괴감 때문에 곧잘 뒤척이곤 했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의 이야기에 대해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달콤하면서도 아픈 일이었다. 보고 읽기로 한 영화와 책의 리스트는 터무니없이 길었고 2월에 마감해야 할 단편소설의 초고는 엉망이었다.


1월은 그렇게 눈처럼 녹아내렸다. 1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마주 앉아 또 반성하고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춥진 않았지만 부끄러워서 자주 웃었다.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열두 달 중 한 달이 지나간 것뿐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2월에는 설 연휴와 내 생일과 단편소설 마감이 있었다. 2월 초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옆 사람과 나는 한 차례씩 몸살을 앓았다. 별로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늙었나봐, 우리는 감기약에 취해 중얼거렸고 땀을 흠뻑 흘린 뒤 조금씩 회복되었다.


전 부치고 윷놀이하며 설 연휴를 보낸 뒤 생일 모임을 서너 차례 갖고 나니 2월이 절반이상 지나버렸다. 소설은 고치면 고칠수록 어떤 부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나를 좌절시켰다. 책상 위에는 퇴고한 종이가 수북했지만 졸작을 면하긴 힘들 것 같았다. 미심쩍은 소설이 담긴 메일의 발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창밖이 희부옜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겼다. 2월이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고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달콤한 시간이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관련 기사]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vs 엄마는 날 몰라
-교집합의 세계
-10년이 넘도록 지킨 서약, 그러나
- 한 몸의 시간, 으로 들어가는 글
-완전한 고독을 원했던 시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4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