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녀의 속사정 <님포매니악 볼륨 1>
과감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야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액자 밖 샤를롯 갱스부르와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깡마르고 매혹적인 어린 조 역할의 스테이시 마틴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 과감한 연기를 위해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진’다.
솔직히 조금만 노력(?)하면 스트리밍으로도 포르노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여전히 ‘실제 정사’ 혹은 ‘수위 높은 베드신’ 등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색다른 ‘무엇’에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제한상영가등급 판정 이후 블러 처리(특정 부분을 뿌옇게 지우는)로 심의를 통과, 무삭제 개봉되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여성 색정광을 의미하는 제목처럼 도발적인 작품이다. 검열 때문에 적나라한 노출과 실제 정사 장면은 가려졌지만, 오히려 충분히 추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려진 부분 때문에 조금 더 자극적이라고 느낄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조차 블러 처리 후 개봉에 동의한 것처럼 <님포매니악>의 노출 장면은 사실 가려져도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출 수위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더욱 도발적이기 때문에 전체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의 무삭제 개봉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섹스와 그 노출 자체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쉬운 범람의 시대에, 여성의 섹스, 그리고 오르가즘이라는 생리학적 문제를 철학적 논의로 끌어올리고 집요하게 그 속을 파고든다는 점에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가 담긴다. 제목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색녀’이지만 영화가 말하는 것은 ‘여자’의 ‘색’이다. 말장난 같지만 ‘색녀’와 ‘색, 녀’는 이미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야기하는 이 ‘쉼표’에 집중해서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각각 볼륨 1, 볼륨 2로 나누어 개봉되는 <님포매니악>의 볼륨 1은 전체 8장의 이야기 중 5개의 장을 담고 있다. 영화는 눈 내리는 거리에 쓰러진 조(샬롯 갱스부르)를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구해주면서 시작된다. 지치고 외로운 표정으로 조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샐리그먼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겪지 않았을 다양한 성적 경험을 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현재의 조와 과거의 조가 겹쳐진다. 박학다식하고 선입견 없는 샐리그먼은 조의 남성 편력과 성적 체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적, 수학적, 음악적 지식을 총동원해 조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해석해 낸다. 일찍 섹스에 눈 뜨고, 갖은 성적 체험을 한 조에게 샐리그먼은 말한다.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
샐리그먼의 해석이 주석처럼 달리면서, 과도한 조의 경험은 어느 순간 낚시, 수학, 음악에 비유되어 재치 있게 환치된다. 15세에 가졌던 첫 경험은 피보나치수열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많은 수의 남자와 섹스를 하기 위해 벌인 게임은 플라잉 낚시에, 여러 명과 섹스를 나눴던 관계는 음악의 선율에 비유한다. 이를 통해 라스 폰 트리에는 섹스, 혹은 중독된 섹스조차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그저 하나의 일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조가 과거를 되짚어가는 회상 속에 중년의 남성을 배치하여, 여성의 섹스를 남성의 해석으로 풀어가는 방법은 훌륭한 서사 구조가 되어 영화를 단순한 색정녀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섹스를 과하게 즐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삶의 이야기로 끌어 올린다.
조는 평범하게 태어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색을 밝히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조(스테이시 마틴)은 두 살 때 이미 성기의 감각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여자 친구와 함께 욕실바닥에 성기를 비비며 노는 것이 황홀했다는 그녀는 평범한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섹스에 집착하는 색정광이다. 섹스에 사랑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조를 보면, 섹스에 대해 이미 어마어마한 호기심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위선처럼 보인다. 조는 섹스를 너희보다 좀 더 좋아하는 게 나쁜 거냐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영화 <님포매니악> 스틸컷
색정광으로 지내온 조가 갑자기 외로움을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 대상 제롬(샤이아 라보프)의 등장으로 조의 감정이 변하는 순간 볼륨1은 끝난다. 조와 제롬의 관계가 기다려지는 순간 볼륨2의 이야기들을 예고처럼 풀어낸다. 색정증을 일종의 힘처럼 과시하는 조는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쾌감을 느끼는 방법에서도 남성의 우위에 선다. 색정증이란 조에게 성기를 통해 느끼는 오르가즘에 앞서 자신 앞에서 벌벌 대는 남자들을 정복하면서 느끼는 쾌락이었는지도 모른다.
샤이아 라보프의 실제정사와 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영화는 결코 에로틱한 정서를 담아내지는 않는다. 과감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야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의 취향 혹은 정서에 따라 영화는 ‘밝히는 여자 이야기’이거나 ‘여자가 밝히는 이야기’이거나, 해석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액자 밖 샤를롯 갱스부르와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깡마르고 매혹적인 어린 조 역할의 스테이시 마틴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 과감한 연기를 위해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진’다. 우마 서먼, 크리스찬 슬레이터, 윌렘 대포, 제이미 벨 등 화려한 조연들이 언제쯤 등장하는지 기대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님포매니악 볼륨2>는 심의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7월초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물론 이변이 없는 한 볼륨1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개봉될 것이다. <님포매니악 볼륨1>의 포스터는 인물의 표정을 알 수 없게 블러 처리되어 공개되었다.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조금만 구글링을 하면 우리는 원본 포스터와 역시 가려지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님포매니악>의 포스터는 가려졌기에 더욱 솔직한 일종의 풍자가 되었다.
<님포매니악> 시리즈가 이미 풍자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위선, 혹은 가면의 측면에서 보자면 심의되고 가려진 <님포매니악>의 개봉은 어쩌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비웃어주고 싶었던 도덕과 그 위선에 대한 풍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국 개봉을 기념한다며 공개적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웃어대던 그의 모습이 왠지 우리의 문화를 조롱하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근데,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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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