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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의 맛 - <끝까지 간다>

‘어어. 이거, 이거!’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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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미 인생이 꼬일대로 꼬인지라, 영화 또한 스토리가 꼬이고 꼬인 것을 좋아한다

그간 칼럼이 너무 가벼운 게 아니냐는 항간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래서 오늘은 폼을 잡고 시작한다, 에헴. 
 

일생의 서사를 소설에 비유하자면, 그 일생을 직접 써내려가는 인간은 작가와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일생의 서사가 반드시 작가의 집필 의도대로 완성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대충 소설을 써버리는 나 같은 작가에게도 집필 의도라는 게 있다. 물론, 애초에 설계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장편 소설을 막상 쓰다보면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물론, 제 경우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어어, 이거, 이거!’ 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쓰고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부디 어째서 자신이 한 생각을, 자신의 손으로 쓰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지지 말아주시길. 이 질문이야 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렴풋이 감을 잡자면, 글이라는 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독립적인 생명력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어떤 대목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글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바로 그 증거다. 지금 대체 무얼 쓰고 있는지, 나조차 헷갈린다.

 

하려고 했던 말은 짧은 소설 한 편도 이러할진대, 과연 인생이라는 거대한 서사는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때로는 우연이라 불리는 사건을 만나고, 그 우연적 사건의 매력에 빠져 다른 길로 선회하고, 그 길에서 또 다른 우연의 불가항력에 빠져버리면, 어느 순간 우연은 필연이 되고, 생이라는 서사를 모두 완성한 후에 회고해보면 결국 자신의 거대한 서사는 우연이 중첩된 결과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과 생의 이야기는 이렇게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꼬이고 꼬인채로 흘러갈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미 인생이 꼬일대로 꼬인지라, 영화 또한 스토리가 꼬이고 꼬인 것을 좋아한다. ‘하아, 이 놈 때문에 요렇게 돼버렸구나’ 하다가, 조금 지나면 ‘어어, 저 개 때문에!’ 하면서 보는 걸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오늘 이야기는 서론만 펼치다보니 원고의 절반이 차버렸다. 이쯤에서 주목할 부분은, 내가 평소의 필력과 논리력을 감추면서까지, 한 편의 짧은 글도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살깎기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독자 여러분, 떠나지 마세요. 엉엉).

 

여하튼, ‘으으, 이 놈 때문에!’ 하다가, ‘어어, 저 개 때문에!’ 하는 영화가 진짜 있으니, 그건 바로 <끝까지 간다>이다. 주인공인 이선균은 비리 형사. 
 

모친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상주로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울린다. 감찰반이 경찰서에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이선균은 ‘으으, 감찰반, 이 놈들 때문에!’ 하면서(물론 속으로. 표정이 그랬어요, 아니면 말고), 상주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비우고 경찰서로 간다. 그런데 운전해서 가는 와중에 ‘음주 단속’을 만난다. 물론, 상주이니 소주 한 두 잔쯤은 한 상태. 음주단속을 하는 ‘으으. 요 놈들 때문에’(물론, 극중 이선균의 생각. 표정이 정말 그랬다고요), 좌충우돌 소동을 겪다가, 결국은 한국의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식으로 자신의 형사 신분을 이용해, 의경들을 윽박지르고, 남을 윽박지른 자신은 심리적 압박을 느끼며, 흥분한 옹박에 버금가는 표정으로 ‘씨익씨익’하며 씩씩하게도 운전을 하며 ‘그 놈들’이 있는 경찰서로 달려가는데,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개 때문에 ‘어어, 저 개 자식 때문에!’ 하는 표정으로 핸들을 급격히 꺾다가 그만 사람을 치고야 만다. 결과는 즉사. 자, 나머지는 상영관에서 확인하시길. 암튼, 이 짧은 소개만 읽어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꼬이고 꼬여서 흡사 스스로 꽈배기가 되어버리고 싶다는 정신으로 달려간다.

 

끝까지간다.jpg

 

말했다시피 나는 이미 인생이 꼬일대로 꼬인지라, 동질감을 느끼며 ‘그래 더 꼬여서 아예 꽈배기가 되어버려!’하며 영화를 응원하게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이하 풀색은 스포일러) 자신이 차로 친 사람이 알고보니 범죄자고, 그 범죄자는 이미 다른 사람의 총을 맞은 상태였고, 기타 등등 이런 식으로 마음껏 꼬아주니 나는 ‘그래, 이거야!’하는 심정으로 영화의 ‘꽈배기 맛’을 즐기게 되었다. 화면을 보는 눈과, 사운드를 듣는 귀와, 스토리를 따라가는 뇌에 설탕이 잔뜩 묻는 기분이었다. 단 맛을 본 뇌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한껏 분출시켰고, 이로 인해 몸은 극장 의자에 고정된 채 앉아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흥분하여 주인공들과 함께 화면 속 배경을 뛰어다녔다. 폴짝폴짝. 

 

그런데, 초반에 잔뜩 꼬다가 아이디어가 고갈돼버렸는지,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나버리자 영화는 갑자기 막대 과자가 돼버렸다. 나는 막대과자를 먹으며, 계속 꽈배기의 맛을 그리워하게 되었지만, 뭐, 어떠한가. 한 시간 동안이라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꽈배기가 있었으니 다행이다. 제목처럼 한 시간 동안 뜨거웠던 열(熱)이 ‘끝까지 간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기운이 완전히 냉각되진 않았다. 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인지라, 한 작품의 열(熱)을 ‘끝까지 가게’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응원할 생각이다. 김성훈 감독의 작품 역시 끝까지 볼 생각이다. 그럼, 이번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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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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