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 요조 이영진 김도훈, 개를 그리다
『개를 그리다』로 모인 4인, 반려동물을 이야기하다
『개를 그리다』는 올드독으로 알려진 만화가 정우열이 쓴 에세이다. 풋코, 소리와 함께한 그의 일상이 글과 그림, 사진으로 표현되었다. 책 출간을 기념하여 가수 요조, 배우 이영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이 모였다.
4월의 어느 날, RHK가 주관하고 예스24와 KT&G 상상유니브가 후원한 상상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상상북토크는 매달 문화계 인사를 초대해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번 주인공은 최근에 『개를 그리다』를 낸 정우열 만화가. 정우열 만화가 외에도 가수 요조, 배우 이영진이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이 사회를 맡았다.
다양한 초대 손님이 참석하여 화기애애한 북토크를 펼치리라 기대했지만 이번 행사는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국가적인 비극인 세월호 침몰 사건도 있었고, 정우열 만화가의 반려견이자 이 책의 주역 중 한 마리인 소리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개를 그리다』는 ‘올드독’으로 사랑받은 만화가 정우열의 첫 번째 에세이다. 단순히 글로만 이루어진 에세이는 아니다. 글과 함께 만화, 사진이 어우러진 책이다. 글과 그림이야 창작자의 의도대로 나올 여지가 많지만, 사진은 피사체의 의지가 중요하다. 인간이 아닌 개가 피사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책에 실린 강아지들의 다양한 사진을 담은 저자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자리를 빛낸 초대손님도 정우열 만화가만큼 반려동물을 사랑했다. <팻토리얼리스트>에 반려견 크림이와 함께 출연한 배우 이영진. 고양이와 7년째 지내고 있는 김도훈 편집장. 지금은 아니나 예전에 강아지도 키워보고 고양이와도 지내본 가수 요조. 자연스레 대화의 소재도 반려동물로 수렴되었다. 먼저 반려동물을 키운 이력을 공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와 반려동물
이영진 : 크림이를 오늘도 데리고 오려 했었다.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큰 개다. 23kg 정도 나간다. 차우차우라는 종이 원래 큰데, 크림이가 차우차우보다는 작다. 어렸을 때 죽을 뻔한 고비가 있었다. 병을 오래 앓다 보니, 자라야 할 때 못 자랐다.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요조: 어렸을 때 개를 키웠고 20대 후반에는 고양이를 길렀다. 개는 똥개라 말하는 믹스견, 이름은 검모였다. 검은 털이 있어서. 지금도 어디가 아팠는지 모르겠지만, 참 아팠다. 가족들이 신경을 안 쓰는 개라 내가 혼자 병원에 데려가다 결국 보는 앞에서 죽었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이후로 강아지 키울 생각을 전혀 못 했다. 그러다 고양이를 얼결에 키웠다. 그 고양이도 코리안숏헤어라 부르는 흔한 고양이었다. 이름은 고구마. 1년 넘게 지내다,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사하는 집에서 키우기 힘든 환경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던 찰나에 기적적으로 어떤 남자 분이 예전 키우던 고양이처럼 생겼다고 데려가셨다. 그 이후로도 이렇게 살고 있다며 사진을 보내 주셨는데 최근에는 연락이 뜸하다.
김도훈 : 7.5kg 나가는 고양이와 산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인생이 확 바뀐다. 7년 전 즈음이, 한국이 재미가 없으니 영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정리하려는 순간이었다. 홍대 동천홍이라는 중국집 뒷골목에서 고양이를 발견하고 데려왔다. 마흔 나이에 혼자 살면서 언제든 떠날 생각으로 살았는데, 고양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한국에 남았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름은 솔로인데, <스타워즈>에 나오는 솔로를 좋아해서이지, 내가 솔로라서는 아니다.
정우열 : 지인이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부인이 임신했다. 그렇게 소리를 만났다. 키우기 전에 소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발랄하고 귀여웠다. 그 뒤로 집에 데려오니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한동안은 개를 준 그분을 원망했다. 나중에는 개를 잘 돌보게 되면서 감사하게 됐다. 그러다, 소리가 죽고 나니 다시 그분을 향한 복수심이 생긴다. 왜 나에게 개를 줘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우열, 이영진, 김도훈, 요조
반려동물이 삶에 끼친 영향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이력을 고백한 뒤 사회자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물었다.
이영진 : 풋코도 예쁘고 소리도 예쁘고, 에피소드, 바라보는 시선도 예쁘다. 그런데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개는 내가 키우니까 예쁜 거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예쁘지 않을 수 있다. 내 개만 최고라는 걸 보면 불편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담담하게 그려서 공감할 수 있었다.
요조 :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게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그런 심드렁한 모습이 주는 감동이 있다. 반려동물이 없는 처지에서 보면 그런 게 좋아 보인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소리와 풋코, 정우열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등장했다. 현재 정우열 작가는 제주에 살고 있다. 원래부터 제주에 산 건 아니고, 제주로 이사했다. 소리와 풋코를 키우기 위해 제주로 간 걸까. 저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제주에서 개와 살면 좋을 것 같아 제주로 왔다고 정우열은 답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경우다. 배우 이영진도 개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고백했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개를 키워왔다. 원래는 없었는데 개를 키우면서 알레르기가 생겼다. 병원에 가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라고 했다. 개가 죽는 날까지 한 집에는 살았지만, 개가 방을 넘어오지 못했다. 가족 중에서는 개와 정이 가장 많이 들었던 그녀였으니 개가 아침에 문을 긁었다. 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말이다. 눈이라도 마주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개가 오래 살긴 했지만 죽을 때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알레르기 약을 먹더라도 개와 부대끼며 살았다. 그랬더니 알레르기에 면역이 생겼다. 완벽하게 면역이 생긴 건 아니나, 하루에도 알약 3개를 먹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정도면 된다고 한다.
이영진의 경험에서 보듯, 반려동물이 죽는 경험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반려동물을 먼저 보내는 경험에 관해 대화가 이어졌다.
반려동물의 죽음이 남긴 것
정우열 : 누구나 겪는데 혼자 유난 떠는 느낌도 있다. 개를 키우면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수명이 짧으니까. 아쉬움은 있다. 아픈 걸 일찍 알았다면, 치료할 수 있었다면 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경험이 세상 일부구나 하는 걸 느낀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힘들어도 견디게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다. 다만 많은 분들이 밥을 챙겨 먹으라고 하셨는데 소리가 아프고 하는 동안 단 음식을 엄청나게 먹었다. 마카롱 70개가 없어서 그랬지, 있으면 먹었을 거다. 다들 핼쑥해졌을 거로 생각하는데, 정반대로 좀 더 쪘다.
김도훈 : 부산에 살 때 11살 강아지가 죽었다. 부산 출신인 아버지는 굉장히 군인 같은, 감정을 아끼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지금까지 40년 살면서 아버지가 우는 걸 딱 한 번 봤다. 강아지가 죽었을 때였다. 기장에 있는 애완동물 화장터로 갔다. 잔인하다. 화장터에 가면, 진열장을 보고 어떤 단지를 살 건지 정해야 한다. 얼마, 얼마, 등급이 매겨져 있고 가격이 다르다. 처참한 기분이 든다. 이런 걸 애완동물 화장터 가서 처음 느꼈다. 이후에 친척을 보낼 때도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돈을 주고 얼마짜리 관을 할지 화장을 할지 정해야 하니까, 굉장히 슬프다.
죽음은 죽은 당사자와 남겨진 이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다. 정우열 만화가도 슬프지만, 홀로 남겨진 개 풋코도 잘 지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소리는 전주인이 맞벌이라 독립적인 개였지만, 풋코는 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그런 풋코를 놔두고 잠시 외출한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만화가는 난장판이 된 집을 확인해야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
초대손님과 대화가 끝나고, 요조가 준비한 미니콘서트가 이어졌다. 준비한 노래가 끝나자 독자들이 준비한 질문에 저자가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독자가 묻고 정우열이 답하다
반려견, 반려인을 맞을 계획이 있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겪어 보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다 쓸모없다는 생각도 드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도, 풋코를 위해서도 다른 개가 있으면 좋겠지만 풋코나 나에게 중요한 존재가 사라진 거니까 그 자리를 그대로 두려고 한다. 반려인은… 이미 좋은 친구가 많이 있다. 충분하다.
개도 분리불안이 있다. 어떻게 하나?
아까 잠시 말했듯, 극장에 못 가고 있다. 혼자 남게 된 풋코가 분리불안을 겪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치는지는 어느 정도 안다. 들락날락하라. 혼자 있는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라. 너무 넓은 공간을 혼자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덜도록 케이지 마련해라. 그렇게 해도 잘 안 된다. 그런데 내가 극장은 꼭 가고 싶다. 좀 더 노력하려고 한다. 풋코에게도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감은 솔직히 없다.
제주에 살고 싶은 사람이다. 제주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없나?
제주가 좋다. 나는 옛날 도심에 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바닷가,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도 있고. 사람에 따라 불편하다 느끼는 건 다를 테다. 더 시골에 산다면 느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3개가 있다. 이마트 인터넷 장보기로 음식을 산다. 오일장에도 가지만, 갈 시간이 없거나 무거운 단호박이나 수박은 인터넷 장으로 본다.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가끔 도시적인 무언가에 갈증을 느낄 때가 있긴 하다.
개 사진 잘 찍는 법은?
집이 예쁘지 않으면 안 찍는다. 사진에 맞춰 집을 바꿔 나간다. 많이 찍는다. 그중에서 우연히 잘 찍은 사진을 고른다. 산책하면서 사진 찍기는 힘들다. 이럴 때는 같이 찍는 사진사 친구를 섭외해서 친하게 지내면 좋다.
이 나라에서 싱글로 살아가는 느낌이란?
그냥 싱글일 때와 돌아온 싱글은 다르다. 한 번 겪고 나면 주변에서 조심한다. 나도 그냥 싱글일 때는 집에서 많이 닦달했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었고. 지금은 주변에서도 원하지 않고, 나도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항상 말한다. 빨리 가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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