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어린이날, 인형을 선물한다면…
아이들은 인형과 함께 자란다
인형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한번쯤 겪었을 법한 데이브의 사연은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다.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림책 작가인 셜리 휴즈는 아이들이 자라며 겪는 다양한 일들을 글과 그림으로 멋지게 형상화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림책을 읽다가 재미있거나 주인공의 처지가 딱해 조마조마하면 참을 수가 없다. 아이에게 달려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해준다. “있잖아, 큰일 났어, 데이브가 인형을 잃어버렸거든.”하며 감정을 듬뿍 담아 말을 꺼낸다. 그러면 “다른 아줌마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는데, 엄마는 매번 그림책 보면서 감정이입하더라.”라고 핀잔을 받는다. 그렇긴 하지만 셜리 휴즈의 그림책 『내 인형이야』 속의 데이브와 인형 몽이를 보고 있자면 걱정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장을 넘기면 손때가 자글자글 묻은 몽이가 등장한다.
"몽이는 보드라운 갈색 강아지 인형이에요. 몽이의 한쪽 귀는 위로 쫑긋 솟았고 다른 쪽 귀는 아래로 축 처졌어요. 꽤 오래된 거라서 듬성듬성 털도 빠졌지요. 몽이는 데이브의 인형이에요“
몽이를 보는 순간, 우리 집을 거쳐 간 온갖 인형들이 떠올랐다. 어딘가 여행을 가면 늘 새로운 인형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제주도 테디 베어 박물관에서는 윤기 흐르는 옥색 털을 지닌 곰 인형을 샀고, 홍콩 장난감 가게에서는 서너 살 어린애만큼 커다란 티거 인형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출장 가는 남편에게 꼭 피터 래빗 인형을 구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막상 가방 속에서 나온 건 벤자민 버니여서 실망했던 적도 있다. 멋스런 모자를 쓰고 있는 벤자민 버니가 더 그럴듯해 보여 샀다는 건데, 아이와 나는 “어떻게 피너 래빗과 벤자민 버니를 구별도 못하냐?”며 투덜거렸다. 지금도 내 노트북 가방에는 이안 팔코너의 그림책 속 주인공인 올리비아가 달려있다. 피가 차가운 나는 아마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이 수많은 인형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몽이도 이런 비슷한 사연으로 데이브에게 왔을 거다. 몽이를 얼마나 물고 빨고 안고 데리고 다녔는지 털도 빠지고 심지어 귀도 짝짝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은 늘 상태가 이렇게 불량하다. 그럼 어떤가. 제 아무리 예쁘고 멋진 인형과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인 것을. 마치 오래 쓴 가구나 가죽 제품이 길이 들면 윤이 나고 멋스러워지듯, 인형 또한 손때가 묻으면 털은 더 보들보들 부드러워지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특유의 포근한 냄새도 나고, 안았을 때 품에 착 감기는 감촉까지 더해진다. 이런 건 내 인형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다. 데이브에게 몽이가 그랬다.
어느 날 오후 엄마는 데이브와 함께 벨라 누나를 데리러 초등학교에 갔다. 데이브는 바자회준비가 한창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학교 울타리 틈으로 몽이를 들이 밀었다. 그때 학교에서 벨라 누나가 뛰어나왔고, 모두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갔다. 집에 돌아와 간식도 먹고 저녁밥도 먹고 목욕도 했는데 뭔가 이상하게 잠잠했다. 침대에 누운 데이브는 그제야 알았다. 몽이가 안 보인다는 걸. 온 집안에 소동이 벌어졌고 아빠는 손전등을 들고 창고랑 뒤뜰까지 살펴봤지만 몽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데이브는 여러 번 잠에서 깨어 몽이를 찾았다. 언제나 품에 안고 자던 몽이가 없어 몹시도 슬프고 서러운 밤이었다. 이튿날, 바자회에 갔다가 데이브는 가격표까지 붙여져 물건 파는 곳에 있는 몽이를 발견했다. 돈이 부족한 데이브는 몽이를 살 수 없었고, 벨라 누나랑 다시 가보니 그 사이 어떤 여자아이가 몽이를 사 버렸다. 게다 그 여자 아이는 몽이를 데이브에게 다시 팔 생각이 없다고 버틴다. 어떡할 것인가. 속이 상한 데이브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인형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한번쯤 겪었을 법한 데이브의 사연은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다. 진짜 아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림책 작가인 셜리 휴즈는 아이들이 자라며 겪는 다양한 일들을 글과 그림으로 멋지게 형상화하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앨피와 그의 여동생 애니 로즈를 주인공으로 삼은 앨피 시리즈가 유명하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아이가 어떻게 뛰어노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심지어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절망에 빠졌다가 용기를 내고 위기를 돌파하는 순간까지도 멋지게 담아낸다. 펜, 수채 물감, 불투명 수채물감이 조화를 이룬 그림에는 평범한 중산층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빅토리아 시대 그림 속에 담긴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런 고전적인 평화로움 때문에 셜리 휴즈의 그림책이 오랜 동안 사랑받는 건 아닌가 싶다.
1977년 출간된 『내 인형이야』는 시간이 흘러 모 윌렘스의 『내 토끼 어딨어?』 같은 책 속에서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지만 모 윌렘스는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한 만화적인 느낌의 그림으로 인형이 바뀐 이야기를 활달하면서도 코믹하게 전달한다. 아끼는 인형에 관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변주되며 재탄생할 것이고 이런 그림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은 또 쑥쑥 자랄 것이다.
모 윌렘스 글,그림/정회성 역 | 살림어린이
토끼 인형을 애지중지하는 트릭시가 인형이 바뀌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 이 책으로 모 웰렘스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했다.
모 윌렘스 글,그림/ 정회성 옮김 | 살림어린이
또 인형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트릭시가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위해 의젓하게 인형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자라고 언젠가 인형과 헤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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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셜리 휴즈, 내인형이야, 내 토끼 어딨어?,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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