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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혼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어르신께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는 노년의 어르신께 잔잔한 응원이 되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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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간결한 문장 뒤에 숨은 의미의 여백은 삶의 여백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어린이가 그림책을 읽을 때 책 안의 역동성에 집중한다면 어르신들은 그림책에 스며들어 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읽어낸다.

‘백발이나 주름살로 갑자기 권위를 앗아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실이기 때문이라네.’

키케로는 ‘노년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겉모습의 연륜으로는 참다운 어른의 권위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황혼기를 맞이한 사람에게 지난 세월의 명예란 무엇일까. 부유함은 분란만 가져올 것이고 권력은 곧 파장을 잃을 것이다. 거쳐 온 시간동안 무엇을 움켜쥐었든 그것은 곧 삶의 종료와 함께 놓아야 할 것이 된다. 키케로가 말하는 지난날의 명예는 세속의 언어로 환산되는 화려한 결산 목록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직한 삶의 흔적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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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과 겨울은 언젠가 우리를 찾아온다. 때가 되면 몸이 기울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마음이 주저앉는 것은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르신들을 만나면 “갈수록 뭘 하든 자신이 없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면서 빠르게 용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격려와 칭찬을 구하기에는 쑥스러운 나이다. 젊은이에게 이런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해봤자 ‘자신이 없거든 이제 그만 쉬시라’거나 ‘그 연세에 뭘 또 하시려고 그러느냐’는 맥없는 반응만 날아온다.


나이 때문인 건지, 어디에 가든 선뜻 환영받지 못한다는 쓸쓸한 기분이 든다면 몇 권의 그림책을 읽어보는 것이 노년의 무기력한 마음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흔히 ‘그림책은 아이들의 책’이라고 여겨 어르신에게 그림책을 선물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더불어 어른은 그림책을 읽기에 가장 최적화된 독자다. 그림책의 간결한 문장 뒤에 숨은 의미의 여백은 삶의 여백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 어린이가 그림책을 읽을 때 책 안의 역동성에 집중한다면 어르신들은 그림책에 스며들어 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읽어낸다. 그림책의 큼직한 활자는 눈이 흐려지기 시작한 노년의 독자에게 돋보기의 힘을 빌지 않고도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글과 그림의 따뜻한 분위기는 외로움을 달래주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위해 만든 것’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생기가 노년의 활력이 되어준다. 황혼기를 맞이한 어른에게 발랄한 그림책 선물은 예상치 못한 즐거운 회항의 경험을 안겨준다.

그 중에서도 『소피의 달빛 담요』는 늦었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는 노년의 어르신께 잔잔한 응원이 되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피는 예술가 거미다. 그가 만든 거미줄은 세상 어느 거미줄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예술가 거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람들은 소피가 밤새 공들여 짜놓은 거미줄을 보자마자 질색을 하며 없애기 바빴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소피는 그저 “흉측하고 밥맛 떨어지게 생긴” 거미 한 마리일 뿐이었다.

우리 어르신들의 삶도 그랬을 것이다. 거친 세상의 모진 박대 속에서도 가족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힘겹게 그날의 거미줄을 짜야 했을 것이다. 소피처럼 날마다 고함으로부터 도망치고 걸레를 피하며 더 이상 어디로 떠날 힘이 없을 때까지 바득바득 기어올라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어느 고요한 지점까지 왔다.

소피는 마지막으로 찾아간 집에서 한 젊은 여인을 만난다. 이 여인은 소피를 보고도 내치지 않았다. 잔뜩 지친 소피는 그 여인의 뜨개질 바구니 안에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다. 나이 든 소피는 이제 자신이 쓸 것 몇 가지를 짜는 일도 힘에 부칠 정도다. 그러나 그 젊은 여인이 곧 아기를 낳게 된다는 것을 안 소피는 그의 아기를 위해서 달빛을 엮어 담요를 짠다.

 

'이제 여인에게는 더 이상 털실이 없었어요. 게다가 여인에게는 담요를 뜨는데 필요한 실을 살 돈도 없었어요. “걱정 말아요. 다락에 오래된 밤색 담요가 있으니까 아기에게 그걸 덮어주면 돼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그 담요라면 소피도 본 적이 있어요. 여러 군데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한 데다 우중충한 것이 갓 태어난 아기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소피는 자신이 담요를 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았어!’ 소피는 생각했어요. 저 달빛으로 아기 담요를 짜야겠군. 물론 별빛도 조금 섞어서 말이야. 담요를 짜기 시작하자 자꾸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소피는 그 모든 것을 넣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어요. 향기로운 솔잎 이슬 조각, 밤의 도깨비 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러운 눈송이...’


이 아기 담요는 소피의 유작이 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가슴을 넣어서 달빛 담요를 짠다. 아기에게는 최고의 선물, 소피에게는 인생 최고의 작품이 탄생한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 한 편의 예술이며 걸작이 탄생하는 순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명예롭게 보낸 시절이 길면 길수록 결실의 밀도는 더 높을 것이다. 노년은 예술가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황금의 시간이다. 소피의 달빛담요가 금빛으로 빛났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남은 삶을 촉박하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는 어르신이 많았다. 탄생만큼이나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소피의 모습에서 뜻하지 않게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이 책은 그 조심스러운 시작을 돕는 부드러운 응원의 말이 될 것이다.



※함께 선물하면 좋은 책


할아버지의 천사

 



유타 바우어 글,그림/유혜자 역 | 비룡소

어린 시절, 할아버지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보이지 않는 천사 덕분에 무서운 개와 구덩이와 버스를 안전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노년기가 되면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절박한 고독에 시달리기 쉽다. 그들에게는 늘 천사가 있었다는 것을, 변함없이 당신 곁에는 천사가 있으며, 그것은 당신 덕분에 자라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을 때 전해드리면 좋을 그림책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레인 스미스 글,그림/김경연 역 | 문학동네어린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비밀의 화원은 있다. 어떤 어르신은 ‘왕년의 무용담’을 지겨울 만큼 되풀이 하시지만 어떤 어르신은 소심한 침묵 속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노인의 우울은 말이 줄어들면서 빠르게 깊어진다. 만약 집안의 어르신께서 지난날을 회고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린 세대와 말을 섞는 일이 쑥스럽다고 한다면 이 할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수다를 귀담아 들어보시라고 권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 책은 해묵은 마음의 봉인을 풀어주고 가족들과 더 잘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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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은 (동화작가)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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