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집은 젓가락에서 글자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진다. 소면으로 담아낸 국수, 중면으로 담아낸 국수.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를 하다가도, 뜨문뜨문 문장을 훅 내리치기도 한다. 소설가 김숨이 3년 만에 펴낸
『국수』 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 을 비롯해 두 자매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옥천 가는 날」, 며느리와 시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를 그린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표제작 「국수」 등 9편의 작품이 실렸다.
『국수』 는 1997년에 등단한 김숨의 열 번째 작품집. 그간 작가는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등을 펴냈다.
『국수』 의 작품 해설을 쓴 철학자 이병창은 “김숨 소설의 인물들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압박 받으면서 심각한 내면적 혼란을 겪는다. 그 결과 김숨의 소설은 한편으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적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띠게 한다. 이런 두 차원의 중첩이야말로 김숨의 소설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숨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인에게 닿아 있다. 아는 체를 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주변인들.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좀체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현실의 작가 김숨은 햇빛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짙은 안개가 보인다. 선명하지 않아서 때론 답답하지만, 단호하지 않은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느낌표를 안겨준다.
조용한 카페에서 김숨 작가를 만났더라면 조금 편했을지 모른다. 시끄러운 카페의 공기 속에서 작가의 조용한 목소리에 집중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작은 목소리가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김숨 작가는 대답을 할 때마다 ‘아!’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호들갑스러운 표정이나 어조는 아니었다. 3초 동안 질문을 곱씹은 뒤, 머뭇거리다가 이내 신중하게 말을 보탰다. 중간중간 “이렇게 말하면 되나?”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김숨은 요즘, 틈틈이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다음 장편이 ‘얼굴’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김숨의 얼굴을 2시간 남짓 탐색했다. 여간해서는 쉽게 늙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작품 또한 언제나 젊은 기운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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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도도 있지만, 제 의도를 넘어서는 그 어떤…… 흐름이라도 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가 저를,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이 의자 위에 데려다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새벽이 간직한 신비를 깨달은 것은 마흔이 되어서입니다. 자명하지만, 그 신비를 제대로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그 흐름이라고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제 의지대로 소설이 쓰이고 제 인생이 전개되었다면, 기쁨과 감사를 몰랐을 것입니다. - 『국수』 작가의 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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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쓴다친근했어요. 소설집 제목 『국수』 가. 표지도 인상적이었고요. 젓가락에서 떨어지는 문장들. 마치 낚시를 해서 글을 잡아 올린 듯한 느낌이랄 까요. 동그라미 세 개는 무언가 했는데, 한 묶음의 국수의 잘린 면이더라고요.잘린 면이었구나(웃음). 동그라미의 의미는 몰랐어요. 4,5년 전부터 ‘국수’를 가지고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국수라는 음식이 만드는 과정이 재밌잖아요. 흥미롭잖아요.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어릴 때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수제비와 국수를 두고 고민을 했어요. 밀가루 음식을 원래 좋아해요. 수제비는 종종 만들어먹어요. 반죽이 쉬우니까. 그런데 국수는 난이도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반죽을 해서 해먹곤 하는데, 엄마가 해주는 거에는 훨씬 못 미쳐요. 반죽도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국수가 작가님의 힐링 푸드인가요?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몸살이 난다던가 그럴 때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맞는 것 같아요. 몇 가지가 있어요. 흰 죽, 계란찜, 국수 같은 음식.이번 소설집에는 유독 가족, 관계 이야기가 많아요. 「옥천 가는 길」 은 장례가 치러질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는 두 자매의 이야기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은 서로를 불편해하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일상, 부부의 갈등을 보여주는 「그 밤의 경숙」 과 「명당을 찾아서」 등.글을 쓴다는 게, 소설을 쓸 당시에 저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이야기를 쓰는 거잖아요.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삶에 대해서 쓰게 되는 거라,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해체된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문제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 눈에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해체된 가족과 사회의 불화, 현대인에 대한 관심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나요?이어지긴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국수』 를 쓸 때보다 지금은 나이를 먹었고, 조금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읽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는 게 소설가에게는 좋은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무래도 깊어져요. 또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어쨌든 제가 쓴 글이기 때문에 제 소설이고, 제가 썼던 작품들과 닿아있지만 변화는 있어요. 변화 또한 있어야 하고요.이번 소설집에서 장면을 묘사할 때 유독 ‘혀’가 많이 등장해요. 「국수」 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계모는 설암이 걸리죠. 혀를 잘라내야 하는 고통을 갖고 있고, 맛을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씹지 못해요. 혀라는 신체기관에 어떠한 상징성을 담은 건가요?음… 아무래도 그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제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담배 농사를 지었는데 암이 걸려서 돌아가셨대요. 돌아가실 때 음식을 못 드셨다고 했는데, 혀에 암이 걸려서 혀를 절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과거에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10년, 20년 지나서 작품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영향 아닐까요?철학자 이병창에 의하면 “김숨의 소설들이 주는 느낌은 카프카의 『변신』 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시킨다”고 했어요. 저 역시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 박물관을 간 적이 있는데,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다소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국수』 속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불안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요.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 시키는데, 그런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런데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저하고 너무나 먼,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작가라서, 저와는 다른 차원의 어딘가에 있는 작가인데다가 작품이라서요. 그냥 감사해요. 발문을 써주신 이병창 선생님이 예전에 제 소설에 대한 글을 쓰신 적이 있었는데, 글이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좋았던 느낌이 있어서, 선생님의 글에 예의를 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부탁 드렸어요. 작품 해설은 제 글을 가지고 쓰신 것이긴 하지만, 그건 그 분의 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읽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나, ‘내가 몰랐던 걸 알게 해줬다’는 그런 감상은 경계하려고 해요. 이번 발문은 뭐라고 해야 하나… 제 글을 귀하게 대접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그동안 잔혹하고 어려운 소설을 쓴다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요. 작가와 문체가 반드시 동일하지만은 않지만, 작가와 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저는 일상에서 공포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이 저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분노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저의 취약한 모습이 작품 속 인물과 많이 닿아 있어요.
작품은 작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9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이 있나요?힘들게 썼다기 보다는 퇴고를 할 수 있다면, 아직 책으로 묶어내지 않고 퇴고할 시간을 2,3일이라도 준다면 「대기자들」 을 퇴고할 것 같아요. 문장과 문장 사이가 좀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좀 덜 때운 느낌이 들어요.「대기자들」 이라는 제목을 먼저 읽고는 뭔가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상상했어요.제목을 먼저 정하고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기자들」 을 쓸 때 차례, 순서에 대한 생각을 했었어요. 다음 차례는 나, 다음 차례는 너. 이런 순서가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어떤 차례냐에 따라, 왜 이 사람이 내 앞에 있지? 내 뒤에 있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쓴 소설이에요. 진찰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있는 병원, 그 공간이 맞물린 것 같아요.주인공은 치과에서 자신의 진료 차례를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순서에 대한 강박증적인 불안 증세를 보여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죠. 내 차례에 대해 부당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고.그것이 강박관념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아요? 다음 차례는 네 차례, 그 다음은 나. ‘차례’라는 단어 속에 강박이라는 심리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흥미로운 단어였어요. 어쨌든 차례가 정해져 있고, 그 차례대로 이뤄질 때. 왠지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뭔가 묘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나요? 약간의 적개심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차례가 지켜져야 한다는 강박,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어떤 기대나 바람?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의 주인공인 며느리는 시아버지, 남편, 시아버지에게 돈을 꾼 202호 여자를 기다려요. 기다리지 않는 것 같지만 기다리는 것 같고, 또 기다리는 것 같지만 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비쳐져요. 며느리의 시점으로 읽는 시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에요. 언젠가 남편이 날려버린 재산을 돌려달라고 할지 모르니.가족이라는 관계가 언제나 사랑일 수도 증오일 수도 없으니까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은 시간이 가장 적게 든 작품이에요.누군가를 기다리는 행위를 어떻게 느끼세요? 힘들어 하나요?잘 기다리는 편이에요. 싫어하지 않아요.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신뢰하는 사람이면,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요. 늦었다고 짜증을 내거나 왜 늦었는지 뭐라고 따지는 경우가 잘 없어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기다리는 게 훨씬 나아요. 초조해지기는 하지만, 신뢰가 있는 관계라면 기다리는 쪽이 더 편해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버스가 그렇게 많지 않을 때였어요. 버스가 올 시간이 언제 오는지도 기다려야 했고, 버스도 기다려야 했죠. 사람이든 사물이든 기다리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소설가 김숨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가끔은 의식이 되나요?제가 인기 작가가 아니니까, 그런 의식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런 건 있어요. 작품은 작가에게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 독자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작가에서 출발해서 어떤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만약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책이 잘 팔리고 인기를 얻는 작가라면, 독자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런 거로부터 자유로워요. 물론 독자들이 좋아하면 더없이 좋겠죠.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작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셨어요.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 등 다른 길도 있었을 텐데요.
문예창작학과에 가서 글을 배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못했어요. 사회복지학과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갔어요. 적성에 안 맞지는 않았어요. 사회복지사로 활동도 했었고요. 대학 때는 공부도 잘 안 했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등수나 이런 거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학창시절에는 반 대항으로 무슨 경기를 하면 아이들이 막 승부욕이 생기잖아요. 전 그런 게 없었어요. 피구대회를 져서 속상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왜 속상해 할까? 이기면 이기고, 지면 지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는 문단에 들어왔을 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게 오히려 훨씬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보여요. 화도 잘 안 낼 것 같고, 흥분하는 경우가 없을 것 같아요.
말수도 적고, 화도 잘 안 내고 그래요. 뭐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갈수록 더 그런 거 같아요. 분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짜증도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 민감하고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아요.
분노가 왜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관대해진 걸까요?
기질인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이야기해준 건데, 어릴 때 남동생이 까불면 혼내줘야 하는데, 때리지도 못하고 “왜 그래, 하지마”라고 말하는 게 끝이었대요. 친척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맨날 어디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였다고(웃음). 20, 30대가 되면 힘든 일이 많잖아요. 여러 관계들이나 사회 속에서. 그 때는 제가 제 기질을 거슬러서 오히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회가 다른 성격을 요구하고, 다른 기질과 섞이면서 혼돈스러웠어요. 지금은 그냥 기질을 찾은 게 아닌가 싶고요.
「국수」 의 주인공은 어릴 적에 온종일 친어머니를 기다렸어요. 기다리다 보면 어머니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아서, 간절히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대개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들 해요. 또 반대로 ‘간절히’ 바란다고 모든 게 이뤄지진 않는다고 말하고요. 살아오는 동안, 무언가 간절히 바라거나 기다린 기억이 있나요?
등단은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것 같고,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고요. 사적인 거는 순간순간 있을 거에요. 다만 저는 사람에 대한 집착은 없는 것 같아요. 친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자주 문자를 주고 받잖아요. 지금 내가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신이 3,4일이 지나서야 와도 저는 상관이 없어요. 전화가 왔을 때, 못 받았다고 다시 거는 경우도 많지 않아요. 일주일 지나서 전화하는 적도 많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계에 집착이 별로 없어요.
김수진이라는 이름으로 등단을 했고, ‘김숨’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얼결에 등단을 했는데, 한동안 청탁도 없었고 소설가라는 자의식도 없었어요. 어떻게 운 좋게 등단을 했지만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본명을 좋아하진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범해서라기보다는 막연한 어떤 느낌인데, 저하고 겉도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필명을 써볼까? 하는 참에 갖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김수진’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이름이에요. 벗어나 있는 이름은 아닌 것 같아요.
이름을 바꾸고,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이름이 좋았고 마음에 들었지만요. 작가들이 필명을 많이 갖는데, 저도 여러 필명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김숨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저라는 사람과 잘 맞는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김숨이라는 이름이 마니아적인 느낌을 줘서, 오히려 작아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어요. 다른 이름으로 짓지 그랬냐는 분들도 있었어요.
만약 지금까지 등단을 하지 못했더라면, 글을 계속해서 썼을까요?
음… 썼을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테니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도 있어서요. 저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요. 일기를 쓴다는 건, 기도하는 행위와 닿아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상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요. 또한 매일매일 쓴다는 건 성실, 한결 같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서요. 저는 막연히 글을 쓰고 싶어 했고, 노력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썼고,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했고, 흘러가는 대로 산 것 같아요.
소설가, 작가 외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다른 직업을 갖고 싶나요?
음, 재능도 주어진다면 음악을 하고 싶어요. 타고난 목소리가 있다면 노래하는 사람도 좋을 것 같고. 인간이 하는 예술 중에 음악이 가장 사람에게 직접적인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치유의 힘도 가장 큰 것 같고요.
작가로서는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나요.
삶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진단하는 역량은 제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역할, 이야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글로 받는 스트레스를 글로 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작가들은 작품을 쓰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마찬가지신가요?
그럴 것 같은 데요? 공감이 가요. 뭔가 쓰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니까.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글이 안 써질 때는 책상에 억지로 앉아있진 않아요. 음악도 듣고, 걷기도 하고, 뭘 먹기도 하고요.
일상에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햇빛을 좋아해서, 햇볕이 좋은 날 걷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오리를 볼 때 좋아요. 그냥 좋더라고요. 최근에 내가 오리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또 깨끗하게 탈수된 빨래를 널고 있을 때 기분이 좋고, 맛있는 빵을 먹을 때도 좋고요(웃음).
『국수』 로 소설가 김숨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면 좋을까요.
무수한 책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 제 책에 눈길을 준거잖아요. 이 책을 끝까지 읽든 읽지 않든, 펼쳐봤다는 것, 눈길을 주고 만져봤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자체만으로도요.
요즘 서울과 경주를 오간다고 들었어요. 다음 작품과 관계가 있나요?
네, 작품 배경이 경주라서 자료를 찾으려고요, 초고를 쓰고 있는 중인데, 다음 작품은 발품을 팔아야 해요. 얼굴에 대한 소설이에요. 사람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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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 김숨 소설집 김숨 저 | 창비
대산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거머쥐며 뛰어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김숨의 네번째 소설집 『국수』 가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을 비롯 김숨의 탁월한 소설세계를 보여주는 9편의 작품을 실었다. 김숨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관계의 심연까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과 마주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그가 구사하는 단단한 문장과 독자들의 눈을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탄탄한 구성과 만나 진정성의 파장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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