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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내가 마늘을 안 먹은 진짜 이유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박찬호 저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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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첫 번째 메이저리거 박찬호. 지난해 11월 은퇴 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로 돌아왔다. 예스24, 웅진지식하우스, 숭실대학교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그를 만났다. 7월 18일, 숭실대 한경직 기념관에서 천여 명의 팬과 독자들이 박찬호와의 시간을 가졌다. 객석에서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탄성도 여러 번 들렸다.

“나는 야구 선수 출신이다. 공은 잘 던졌다. 지금도 시키면 잘할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하라고 하면 부끄럽고 힘들다. 여러분의 박수에 힘을 얻어 깊고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야구만큼 책 내는 것도 힘들었다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겪었던 도전과 실패, 그리고 노력이 담겨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1997년 IMF 시절에는 박세리와 함께 ‘국민 영웅’으로 불리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도 세웠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메이저리그 17년 기반이 됐다

박찬호가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동호인 야구부에서 설득하여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한양대 2학년 재학 중에 메이저리그로 스카우트됐다.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간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와 2년을 보냈다.

“높은 벽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음을 몰랐다. 언어 문제나 문화적 장애도 컸다. 피부색도, 말도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항상 걱정하는 부모님 때문에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렇게 2년만에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메이저리그 17년을 버틸 수 있었다.”


기록하는 습관은 나의 보물이다

박찬호는 경험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뒤돌아보는 습관을 자신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힘겨웠던 마이너리그 시절에도 경험과 느낀 것을 적었다. 그는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며 ‘강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젊은 시절엔 빠른 공을 강하게 던지고, 싸워서 이기는 게 강한 것이라 믿었다. 육체적인 힘을 써서라도 상대를 어렵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면적으로 지혜로운 게 진짜 강한 것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도 필요하다. 나는 도전과 시련을 대하는 방법을 안다. 참고 견디면 된다. 두려움이 있었다면 일본이나 한국에서 야구도 못했을 거다. 누가 뭐라 해도 나만 떳떳하면 된다는 걸 터득했다.”




스스로 변할 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 시절에 햄버거와 치즈만 먹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늘 냄새에 불평하던 다른 선수들 때문에 택한 방법이었다. 그는 괴로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괴로움을 택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몸에서 나던 마늘 냄새가 사라졌다. 이후 그는 야구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박찬호를 변하게 했던 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려심’이 박찬호를 변하게 했다.

“내 앞에서 킁킁대며 피하던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한국 음식을 아예 끊고 살았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들은 싫은 걸 표현한 것뿐이었다. 나만의 집착임을 깨닫고 일단 영어부터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사라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대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순 없다. 그런데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도 자연적으로 변한다. 그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박찬호는 어린 시절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담력을 길러야 투수를 잘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밤에 혼자 공동묘지에 가기도 했다. 성공하기 위해 ‘술, 담배, 여자’는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부모님은 항상 걱정이 컸다. 목표가 뚜렷했기에 신념과 의지도 강했다. 친구들이 봤을 땐 짜증 날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 집에 갈 땐 걷는 시간이 아까워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계단을 뛰어다녔다. 한 마디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건 창의력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했다. 강한 자는 스스로를 바꾸면서 상대도 바꾼다. 그렇게 주위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메이저리그 역시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힘들었던 텍사스 시절이 큰 밑거름이 됐다

박찬호는 텍사스 시절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특히 한국 사람들과 기자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의 슬럼프 시기는 배신감과 죄책감,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진통제와 불면증 약을 달고 살던 때였다.

“야구장에 가기 싫었다. 나는 스타였고 높은 산에 올라가 있었다. 내려가는 게 너무 두려웠다. 이겨도 집에 가면 다시 불안했다.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거지였다. 패배나 실수에 대한 생각이 너무 컸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터졌다. 심리학 박사를 초대해서 치료를 받았다. 명상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가 울고 있더라. 처음 본 모습이었다. 저놈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착각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응원하던 사람들은 그때 묵묵히 나를 기다려줬다.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다. 큰일 날 뻔했다.”

그는 한때 감독을 피해 다녔던 경험도 고백했다. 마이너리그로 보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치료와 명상을 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부턴 매일 감독 방에 먼저 찾아갔다. 눈도 안 마주치던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도 건넸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자 통증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때가 2005년이다. 성적이 좋아져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고 12승을 달성했던 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수치심을 느낀다면 착각이다. 상대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배려해 보자.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상대는 더 나쁜 사람이 된다. 웃고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면 상대는 변한다. 개는 작을수록 더 크게 짖는다. 반면 큰 개는 잘 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용한 사람이 떠드는 사람보다 강하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고 더 낮추는 사람이어야 한다. 강한 자는 그렇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박찬호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지만 질문지를 고르는 그의 손길이 신중했다. 어린이 한 명 한 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계획에 없던 사인회도 흔쾌히 응했다. 다음은 그가 고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20대로 돌아간다면 다시 야구를 하고 싶은가?

20대 때는 운동만 했다. 성공하려고 술, 담배, 여자도 멀리했다. 하지만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한다고 성공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는 의지력이 성공의 비결이다.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격은?

참을 줄 아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참으면 자신도, 주변도, 가족도 편해진다. 한 발 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화를 보면 어떤 심정인가?

안타깝다. 일 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후배들과 많이 정들었다. 한국 야구 선수의 어려움도 많이 경험했다. 후배들에게 연락이 오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너나 잘해.’ 네 안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지고 이기는 건 모두 외적이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외적인 것에 집중하면 더 힘들다. 투수의 목표는 타자를 잡는 게 아니다. 투수는 정확하게 던지는 게 목표다. 타자가 어떻게 반응한 것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투수의 행위는 여러 가지 공을 던지는 예술이다. 한화는 너무 많이 졌으니, 이기려 하지 말고 지려 하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내가 이루어낸 승리의 3할은 그랬다. 던지는 것에만 집중했더니 이기더라. 한화는 지금이 기회다. 최악의 순간을 경험할 때 반전할 수 있으니까. 그게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찬호 선수에게 사랑이란?

힘겨웠던 텍사스 시절,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느낀 것 같다.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 훌륭한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더라. 자신의 것만 정진하고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다. 사랑이란 내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이기도 하다.

수염을 기르는 이유?

사실 깎기 귀찮아서 기르기 시작했다. 근데 꽤 괜찮게 자라더라. 수염에 관한 징크스도 생겼다. 깎고서 이기면 계속 깎다가, 기르고 이기면 한동안 또 계속 기른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선 124승째 경기를 꼽겠다. 그 승리는 동료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꼴찌였던 피츠버그에서 젊은 선수들의 멘토 격으로 나를 데려갔다. 선수들은 늘 나에게 질문을 했다. 팀의 1승이 절실했다. 마지막 124승은 선발 투수가 아니라 구원투수로 달성했다. 선발이 4이닝까지 잘 던졌다. 1이닝만 던지면 승리투수인데 그걸 나에게 넘겼다. 당시에 팔이 너무 아팠는데 그 해의 어느 공보다 잘 나갔다. 간절했다. 간절하면 자신을 백 퍼센트 믿게 된다. 야구 경력 전체에선 한화 소속으로 뛰었던 마지막 경기가 그렇다. 은퇴 경기라는 걸 나만 알고 아무도 몰랐다. 잘하고 싶었고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늘 아쉽다.

30여 년간 한길을 걸어온 박찬호. 그가 걸어온 길엔 신념과 꿈이 있었다. 그는 하나를 할 수 있는 용기와 다짐이 있으면 두 개, 세 개는 문제 없다고 말한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창의성과 집념으로 오늘날의 그가 되었다. 박찬호는 앞으로 사회를 위해 살고 싶다고 한다.

“책 출간과 더불어 미술 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야구 클리닉, 어린이 수술 프로그램도 함께하고 있다. 현장에서 야구만 했던 때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 가능한 건 도전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또 할 거다.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확인하고 싶다.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면 성숙하고 강해진다. 더불어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에게 먼저 집중해야 한다.”




화려한 은퇴식은 없었지만, 마운드엔 61번이 깊이 새겨졌다. 야구 선수가 아닌 불혹을 맞은 한 남자로 돌아온 박찬호. 그는 ‘인생’이라는 마운드 위에서도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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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박찬호 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박찬호가 중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일기장과 스마트폰에 남겨온 생각, 신념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끝은 무엇이고 시작이란 무엇인지……. 야구선수 전에 한 인간으로,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경험한 첫 번째 메이저리거는 지난 시절의 눈물, 인내, 내려놓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떠나야 할 때가 온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나가 끝나야,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도 당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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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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