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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랑하는 사이는 아픈 거예요 - 신달자 『엄마와 딸』

네 속에는 날개가 있다. 그래, 그렇게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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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달자에게 『엄마와 딸』은 ‘언젠가 한 번은 말해야 할’ 이야기였을 것이다. 『물 위를 걷는 여자』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등을 통해 우리 사회 여성들의 삶을 관찰해 온 작가로서도, 딸이자 엄마로 살아온 한 개인으로서도 그러하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우리들 삶의 모습이자 여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라는 존재를 빼놓고 여자의 삶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엄마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삶은 대부분 엄마라는 이름으로 끝이 난다. 그리하여 ‘엄마’ 와 ‘딸’은 한 여자가 갖는 두 개의 이름이다. 작가 신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딸이라는 이름으로 70년, 엄마라는 이름으로 45년을 살아 왔다. 그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썼다. 후회의 눈물로 번지고 원망으로 얼룩진 기억들을 가감 없이 들려주며 딸과 엄마, 그 어렵고 아픈 관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예스24의 ‘책 읽는 풍경’을 통해 독자들과 만난 작가는 자신과 어머니, 자신과 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엄마와 딸의 관계란 어떤 모습인가’ 질문을 던졌다.




엄마와 딸,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사이

엄마와 딸 사이는 간단한 관계가 아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다시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빌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눈물이야말로 엄마와 딸 사이에 핏빛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격렬하게 분노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p.14~15)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애증의 관계에 있는 이 두 여자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서로가 있어서 산다고 말했다가도 얼마 안 가 상대방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야단이다. 반목과 화해를 반복하는 이 관계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신달자 작가는 말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사랑이란 원래 아픈 것이라고.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제일 서운해 하고 상처를 주죠. 엄마와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딸과 무지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이죠. 원래 사랑하는 사이는 아픈 거예요. 『엄마와 딸』이라는 책에 쓴 요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면 아픈 거예요.”

엄마에 대한 딸의 불만은 큰 기대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이상일 뿐인 ‘이상적인 상’에 비추어 서로를 재고 판단한다. 그러니 상대가 눈에 찰 리가 없다. 그 괴리에서 원망과 비난이 싹튼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 같지 않을까, 왜 우리 딸은 다른 애들처럼 하지 못할까,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신달자 작가와 어머니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이 살지 못했던 삶을 딸을 통해 살리라 꿈꾸셨고, 작가는 그렇게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열다섯의 나이에 종갓집 며느리로 시집와 ‘아들 셋을 낳아야 한다’는 특명을 받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번째 아이인 작가를 낳기까지 아들 소식은 요원했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며느리로 매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 뛰어난 학벌에 아들까지 잘 낳는 동서 사이에서 어머니는 외로움 속에 갇혀갔다. 딸들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어머니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이자 희망이었다. 주위의 우려와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딸들을 대도시의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는 결단을 내린 것은 그래서였다. ‘너는 성악가가 되어야 한다, 끝까지 공부해야 한다’ 말한 것은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의 다른 표현이었다. 딸들의 삶은 이미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딸을 자기 자신으로 보는 겁니다. 조금 빗나가면 막 야단치고 꼬치꼬치 간섭하는 건, 자신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자존심을 있는 그대로 건드리고 모진 소리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거의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하듯, 신달자 작가 역시 많은 시간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바라보지 못한 채 딸로서 살아왔다. 어머니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었던 아버지보다, 악다구니를 쓰며 아버지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어머니가 더 싫었다. 세련된 외모와 말투로 치장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늘 불만이었다. 작가 자신이 엄마가 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엄마도 여자였다는 걸.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에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다정하게 말한 적이 없어요. 엄마가 외로움을 탄다는 걸 상상도 안 했어요. 우리 엄마는 욕이나 하고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하고, 그런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여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딸도 엄마를 알아주지 못했어요. 바보들이었어요. 그런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까 우리는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구한테라도 마음에 있을 때 말해야 돼요. 말의 빚은 지지 말아요. 언제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날지 몰라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해요. 그 말은 우리 마음의 본성을 깨우는 가장 큰 치유의 한 목소리에요.”

엄마 앞에 모든 딸들이 죄인인 이유는 끝끝내 갚지 못할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받았던 희생과 사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결코 똑같이 되돌려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평가나 가능성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건 생각할 줄도 몰라서, 언제나 자신의 딸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이 말은 우리 엄마가 밥 먹듯 한 말이다. 내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세상이라는 절벽에서 미끄러져 아슬아슬할 때, 엄마는 꼭 이 말을 내게 했다. (중략) 엄마는 철저하게 나를 믿었다. 된다고 말해 주었던 것은 머리가 아니다. 가슴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이란 현실의 계산을 뛰어넘는 것이다. (p. 72~73)
엄마란 셈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말하는 단 한 사람이다. 돌이켜 보건대 어머니의 그 사랑이 자신을 만들었노라고, 작가는 말했다.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와는 달리 학업에 소홀할 때도, 엄마를 거역하고 반대하는 결혼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도 마, 니는 될 끼다.” 만약 누구도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멸망하고 모든 것에서 패배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딸들의 몸에 저장되기 때문이란다.




그래, 그렇게 날아라

모든 걸 내주고도 더 나은 것을 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작가는 세 딸의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헌신적으로 잘해준 상대는 딸들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씻을 수 없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슴속에 박혀 있었다. 그녀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뭐든 잘하고 싶고 멋있고 영리하고 너그럽고 딸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척척 해결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 미치지 못하므로 모자라는 감정 내지는 죄의식으로 발전하는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딸이 우울하거나 말이 없을 때, 아니면 약간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엄마!” 하고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린다. 왜 엄마에게는 이렇게 죄인의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일까. (p. 26)
엄마가 되어갈수록 나의 어머니가 새삼 대단하게 생각되는 것이 여자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 모든 걸 해냈을까 싶어 놀랍고 ‘나는 그걸 다 받고 있었는데 알지 못했구나’ 깨닫고 후회하면서,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간다. 신달자 작가는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시는 순간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죽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나에게 일방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이것 좀 먹어라, 이거 먹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었어요. 부부도 자식도, 다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내가 잘해줘야 남편도 잘하고, 자식도 그렇죠. 늘 변함없이 좋아해주는 건 엄마 밖에 없어요. 우리 엄마가 죽었을 때 그걸 알았어요. ‘일방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이제 어디에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그것으로써 기쁜 거지, 자식이 나한테 뭐 해주나 안 해주나 그걸 따진 것 같지는 않아요.”

엄마와 딸에 대해 말하면서 신달자 작가는 루이스 세뿔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속의 주인공 소르바스는 고양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죽어가는 갈매기의 마지막을 함께하게 되고, 유언에 따라 새끼 갈매기를 대신 돌보게 된다. 새끼를 부탁하며 갈매기는 말했다.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줘.’ 하지만 고양이들 사이에서 자라난 갈매기가 저절로 나는 법을 터득할리 없었다. 소르바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저 아이를 정말 구한 것일까. 나는 본성을 잘라버린 내가 과연 아이를 구한 것일까. 그는 어미 갈매기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하는 권력자도, 거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도 만나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새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데 성공한 사람, 그는 시인이었다.


“권력자도 부자도 날게 할 수 없었던 갈매기의 본성을 시인인 찾아 준 거죠. 그러면 시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진심입니다. 갈매기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권력자나 부자는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힘으로 작용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시인은 아무 도구 없이 진심으로써 그 갈매기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바다로 데리고 나가서 ‘너는 갈매기다. 저기 날고 있는 갈매기를 봐라. 너는 네 안에 날개가 있다. 날개를 들어 봐라. 그래, 그렇게.’ 이야기해준 거죠. 갈매기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날개가 되어준 거예요.”

신달자 작가에게 어머니는 새끼 갈매기를 날게 한 시인이었다. 자신 안에 있는 열망과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운 사람이었다. ‘너는 원래 날았던 사람이야. 네 속에는 날개가 있다. 그래, 그렇게 날아라.’ 시인이 갈매기에게 말해 주었듯이 작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시인이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시인처럼 엄마는 딸들에게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그 날개가 엄마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비행은 딸이 날아오름으로써 시작된다. 그러므로 『엄마와 딸』은 엄마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딸들의 이야기다. 둥지를 떠나는 딸의 첫 비행을 슬퍼하지 않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작가와 어머니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나와 내 어머니, 내 딸들의 삶이 비춰 보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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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신달자 저 | 민음사
신달자 시인은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희망인 엄마와 딸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유쾌하고 진솔하게 그려 낸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해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맺음을 한다.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살아온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한 여자가 딸에서 엄마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 주며, 이 세상 모든 엄마와 딸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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