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를 꿈꾸신다고요? 얼른 다른 꿈을 찾으세요 - 차우진
글 쓰는 남자 인터뷰 시리즈② 음악평론가 차우진 좋아하는 평론가는 정성일, 허문영, 신형철, 김현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라는 이름을 가진 독특한 블로그의 주인공 차우진을 만났다. 시베리아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이름이 왜 ‘시베리아 횡단열차’냐고 캐묻자 “오래 전에 썼던 단편소설의 제목”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평론가가 되었으리라 짐작했는데 “음악보다는 글이 더 좋다”고 단 1초의 고민 없이 말했다.
글이 그 사람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아니, 글이 그 사람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글은, 어떤 사람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단, 단서가 붙습니다. 글쓴이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을, 문장 안에 굴절 없이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문장 안에는 글쓴이의 어린 시절, 글쓴이의 성격, 글쓴이의 성격적 취약점 등까지 미묘하게 배어있어 독자들은 어느덧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채널예스>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고, 또는 쓰게 되리라고 여겨지는 남자 몇 명을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오직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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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2001년부터 비영리 음악웹진 <weiv>
차우진의 블로그(//blog.naver.com/nar75)를 보고 있자면 그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평론가라는 사람이(?) 은어를 매우 자주 사용하고 맞춤법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오죽하면 ‘ㅆ’받침이 제대로 쓰여진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단순한 오타로 여겨지지는 않는데, 그렇다면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는 걸까? ‘거참, 알 수 없는 캐릭터’라는 생각을 하고 차우진을 홍대 카페에서 만났다. 푸근한 인상에 도무지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투가 ‘진짜 평론가 맞아?’라는 의심을 갖게 했다. 다짜고짜 왜 맞춤법을 제대로 쓰지 않냐고 물었다. 대답은 “Shift 키를 누르는 게 귀찮아서요. 제가 독수리 타자거든요(웃음).” 보태는 말은 ‘철자법에 강박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변이다. 간혹 ‘글 쓰는 사람인 것 같은데 맞춤법 좀 제대로 쓰라’는 면박성 댓글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괘념치 않는다고 한다. 점점 궁금해지는 캐릭터, 글 쓰는 남자 차우진과 초면이 아닌 마냥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20대에 등단하겠다는 목표 있었어요
지극히 평범했던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취미는 밴드 활동이었다. 본 조비, 윤상, 김현철, 넥스트 음악을 들으며 가끔 강수지의 노래도 몰래(?) 귀 기울였다.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했던 차우진의 플레이 리스트는 언제나 ‘중구난방,. 록, 발라드 등 장르의 구분 없이 플레이를 눌렀다. 그렇다고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영화 글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작가의 꿈을 갖게 됐고 “무조건 20대에 등단하자”라는 필사적인 목표를 가졌다.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 시를 썼어요. 투고도 많이 했죠. 대학 때는 계간지나 문예지에 응모를 했는데 최종심까지는 올라가는데 막판에서 떨어지더라고요. 그 땐 우울한 분위기의 SF 소설을 썼어요. 평가는 초현실주의다, 냉소주의가 어쩌고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쓰긴 했어요. 길 가다가 아무데나 앉아서 쓰기도 했고 버스 뒷좌석에서 이어폰을 꼽고 끄적거리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군대를 갔다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세상이 변해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갑자기 토익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거예요. 저는 4학년 때까지도 취업을 할까, 증단 준비를 할까, 대학원에 갈까 그런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먼저 졸업한 선배들에게 상담을 요청하자, “공부를 더 하는 건 위험하다”라는 공통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취업. 차우진은 졸업 후, 모바일로 책을 구입하는 나름의 혁신적인 사업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에 들어갔다. 벤처기업의 붐이 일었던 때였는데, 어느 날 사장은 먹튀를 하고 날랐다. 덕분에 몇 개월 치의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 후에 차우진이 자리를 잡은 곳은 네이버 (뉴스/책) 서비스팀. 2년간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하는 일을 했고 다시 소설을 쓰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지금의 네이버가 가진 영향력을 느낄 때면 간혹 후회가 되지만, 어느새 차우진은 틀에 박힌 조직생활이 어려운 체질이 되어 버렸다.
“네이버에서 나온 후에는 몇 개월 동안 쉬면서 위성DMB 작가도 했고 NGO 일도 잠깐 했어요. 경력이 애매하니까 어디에 취업하기도 어려워서 고민이 많았죠. 틈틈이 청탁이 오는 원고를 썼지만, ‘이걸 전업으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의 <10아시아> 전신인 <매거진T>에서 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냈는데 덜컥 붙더라고요. 창간 웹진이라서 초기 작업을 같이 했어요. 딱 2년 동안 일했는데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매체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었죠. 자기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배우가 됐든 제작자가 됐든 인터뷰 대상자의 말을 옮겨주는 사람일 뿐이고, 분석을 하더라도 깊게 들어가지 못한다는 데에서 한계를 느꼈죠. ‘차우진’이라는 이름을 쓸 때, ‘매거진T 차우진 기자’가 아니라, 내 이름이 앞으로 나오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매거진T>를 나오고 음악웹진 <weiv>
잘 쓰는 평론가들을 모범으로 삼는다
“일이 떨어지면 ‘취업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해요. 친구들이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면, ‘어디라도 불러준다면 당장이라고 들어가겠어’라고 자책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이 잘 나갈 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때도 있는 거잖아요. 초밥이 먹고 싶어서 초밥집에 갔는데, 그릇 수를 일일이 세보지 않아도 될 만큼만 벌자라고 결심했죠.”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차우진은 필자 이외의 활동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2009년에는 KT뮤직 도시락(현 올레 뮤직) 뮤직브런치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는 일을 맡았고, 아이패드용 음악앱 ‘비트윈’ 사이트도 설계했다. 네이버 미투데이 ‘요즘 뭐 들어’, 현대카드 뮤직 서비스 컨설팅은 차우진의 주요한 경력이다.
“기자 생활을 하고 나니, 그래도 어느 정도의 대중문화 전반적인 지식을 쌓았고 또 포털에서 경험도 있으니까 음악서비스 기획과 관련된 프로젝트에서 제안이 오더라고요. 평소 음악 콘텐츠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흔쾌히 합류하게 됐죠. 사실 저는 학창시절부터 느린 인간이었거든요. PC통신이 한창 떴을 때도 관심이 없었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야 메일을 사용했어요. 리포트를 쓸 때도 손으로 썼으니까 내 인생에 컴퓨터를 쓸 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웹진에 글을 쓰고 음악 서비스를 컨설팅하고 있으니, 가끔은 새삼스럽기도 해요.”
요즘, 차우진의 관심사는 ‘싸이의 인기를 K팝의 성과로 볼 수 있나,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등의 이슈다. 유튜브가 바꿔놓은 미국 팝 시장, 그리고 K팝의 한류 열풍에도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음악,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원하는데 음악비평만 봐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있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창작하는 사람들, 기획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전통적인 느낌의 비평이 아니라면 ‘새로운 걸 찾아야 하나’, ‘모범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닥치는 대로 읽고 있어요. 비평집뿐만 아니라 창작 에세이, 자기계발서도 읽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문학비평 글들도 다시 찾아 읽고 있어요.”
차우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 쓰는 평론가’들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요즘, 정성일, 허문영, 신형철과 김현의 책을 거듭 읽는 중인데, 문장도 문장이지만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모범적인 비평집으로 조영일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김영민의 『영화 인문학』, 손민정의 『트로트의 정치학』, 최유준의 『음악 문화와 감성 정치』를 꼽았다.
“평소에 책을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편인데, 요즘에는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와 『일본의 검은 안개』,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을 보고 있어요.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유신시절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들이 대거 등장하는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인데, 개인적으로 최근에 1960-70년대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서 재밌어 하면서 보고 있어요. 또 만화도 좋아해요. 닐 게이먼의 『샌드맨』 시리즈와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인 아라카와 히로무의 『은수저』를 추천해요. 『샌드맨』은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고 『은수저』는 농업고교를 배경으로 기른다는 것과 먹는다는 것, 총체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심지어 웃겨요(웃음).”
글의 존재가 내게 더 본질적이다
음악비평집을 내고 싶었던 차우진은 2011년 산문집 『청춘의 사운드』를 펴냈다. 원래 제목은 ‘너와 나의 21세기’라는 다소 로맨틱한(?) 이름이었다. 책 서문에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대중음악이 청춘으로만 소화되진 않는다. 다만 동시대의 음악이 이들을 겨냥하는 건 사실이다. 대중음악이 청춘으로 수렴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힘껏 겨누는 곳이 바로 청춘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한다.” 음악, 청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차우진은 이 시대 청춘들이 ‘어른’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자문해보았다. 대답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에게 20대는 너무 가난했고 복잡했고 무엇보다 어중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참 애매한 20대였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정작 손에 쥔 건 거의 없었죠. 대부분의 20대는 ‘어른이 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내 멋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경험과 지혜를 찾아요. 자기 계발하는 주체와 잉여로서의 주체가 대립하게 되는데, 이런 강박과 분열이 대중음악에서도 드러나죠. 『청춘의 사운드』에서 담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고요. 쓸 때는 몰랐는데 다시 쓰라고 하면 못 쓸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만약 자전적인 에세이를 다시 쓰게 된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흐른 뒤가 되지 않을까요.”
등단의 꿈을 가졌던 청춘을 보낸 차우진. 그는 아직 같은 꿈은 꾸고 있을까? “한 달에 한 번씩 소설 쓰는 모임에 나가요. 4,5년 정도 된 거 같아요. 하지만 등단이 목표는 아니에요. 쓰고 싶어서 그냥 쓰는 거죠.”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 보내지만, 차우진은 ‘음악보다 글’을 좋아한다는 걸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면 음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글은 어릴 적부터 언제나 곁에 있었고 동경했고 훈련했다. 차우진은 “글의 존재가 내게 더 본질적”이라고 표현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제게 좋은 글이란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글이에요. 그건 평론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해요. 질문을 던질 것. 다시 말해 내 고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것. 세상의, 혹은 음악의 비밀 따위, 제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어요. 단지 저는 계속해서 뭔가를 궁금해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죠. 그런 과정이 잘 드러나는, 잘 전달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글을 쓸 때 솔직하게 쓰려고 해요. 저한테 집중해서 쓰되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산만하거나 오만한 글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죠. 글은 객관적인 과정에서 나오고 공적인 공간에서 쓰일 때 더 의미가 생기는 거잖아요. 비평이라는 것이 창작 에세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창작자 즉 아티스트들의 시간과 노력을 폄하하지 않으면서 작품과 사람을 분리해서 쓰려고 노력해요. 때때로 음악인들과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게 되고 친해질 수도 있는데 친분이 쌓이면 부담스러워지니까 되도록 가깝게 지내지는 않아요.”
독자는 가장 어렵고도 복잡한 구애의 대상
차우진은 현재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차우진의 음악이 숨긴 이야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음악 콘텐츠로 시작하는 취향의 재발견’이라는 부제 하에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방법, 음악 주변부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때때로 음악평론가를 꿈꾸는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는 선배 차우진의 대답은? 다소 학생들을 헷갈리게 한다.
“음악평론가를 꿈꾼다고요? 다른 꿈을 꾸세요(웃음). 음악 평론이라는 건 이제 막 체계화되는 분야라고 봅니다. 언젠가 오랫동안 평론가로 알려진(누구나 알만한) 분과 사담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분께서 ‘한국에선 평론가를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란 얘길 하셨어요. 그때 수긍이 되면서도 ‘아 망했다’ 뭐 이런 기분이었는데, 해외 저널 같은 데 달리는 댓글을 봐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웃기죠? 평론가는 무언가의 부업 같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개인적인 책임이죠. 저는 고료가 적어도, 지면이 적어도, 제대로 '비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평론가 말고 다른 걸 목표로 하세요.”
차우진에게 독자는 ‘가장 어렵고도 복잡한 구애의 대상’이다. 또 무서운 존재이며 실망스럽기도 하고 언제나 놀라운 대상이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으로 제 글을 읽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쓰는 글들이 어떤 질문이 되면 좋겠어요.” 차우진은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그만의 노동요(샤크라, 오렌지카라멜 앨범)를 들으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독자들에게 부탁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영화를 보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기를.” 그 와중에 당신의 그래프와 차우진의 포물선이 교차되는 일이 있으면 다행일 것이고, 삶의 여러 지표들 가운데 윤리적이면서 문화적인 요컨대 성찰적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차우진은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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