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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연재종료 > 이영희의 도쿄를 읽다
아침에는 진한 커피향, 밤이면 예술의 향기가 피어나는 거리
『안녕 시모키타자와』
나이는 자꾸 늘어가는데 관절염보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방황은 끝이 나질 않는다. 거기에 세월이 갈수록 더해지는 항목까지 있으니, 바로 방황하는 내 자신에 대한 방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청춘도 아니면서 아프니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민망하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는 서른도 훌쩍 지났건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당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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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시모키타자와(下北?) 방황을 시작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새 소설 『안녕 시모키타자와』(일본어 제목은 ‘もしもし下北?’)’를 읽은 후다. 사실 앞선 칼럼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다. 말랑말랑, 간질간질해서 싫다면서.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 『안녕 시모키타자와』는 느낌이 제법 좋았다. 소설에 묘사된 그 거리 구석구석을 걸어보고 싶어, 읽는 내내 마음이 들썩였다.
『안녕 시모키타자와』는 두 여자 어른의 성장담이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상처에 약을 바르며 흉터 없이 아물기를 기도해야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요시에의 아빠, 제법 유명한 밴드의 키보디스트였던 그는 비밀스런 어떤 여인과 이바라키현의 숲에서 동반자살을 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편을, 아빠를 잃은 후, 엄마와 요시에는 각자의 상처 안에서 허우적대며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일상을 보내던 두 사람에게 ‘생명의 샐러드’를 선사한 곳이 시모키타자와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 ‘레 리앙’. 그 맛을 기억하며 요시에와 엄마는 시모키타자와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아침이면 각 볶은 커피향이 골목을 채우고, 밤이면 음악과 연극을 사랑하는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이 거리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시간표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점심때쯤 되면 지갑이랑 열쇠랑 휴대전화만 들고 밖으로 나가. 우선은 퓨어 로드에 있는 ‘원 러브’에 가서 파는 책인지 아니면 핫짱의 개인 소장품인지 모를 헌책을 좀 보다가 핫짱이랑 잠시 얘기를 나눠. 대충 앞으로 월 하고 싶은지, 우리는 한 물 갔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뭐 그런 얘기지만. (중략) 엄마는 낮 시간을 대충 이렇게 보내. ‘로쿠산’에서 피자 런치를 먹는 것도 아주 좋아해. 피자는 ‘라 베르데’도 맛있어. 혼자서도 한판을 날름 먹을 수 있어. 가끔은 돈 쓸 각오를 하고 ‘아스카’에 가서 일본식 런치를 먹는 일도 있어. 그리고 틈틈이 오래도록 읽지 못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조금씩 읽고 있어. (중략) 그렇게 여행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오가다 보면 하루 일과가 다 끝났다는 기분이 들어. 아무튼 언제나 일부러 천천히 천천히 걸어. 학생 때처럼 아주 천천히. 지금 엄마에게 있는 건 시간뿐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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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의 삶이 이 거리를 숨쉬듯 들고 나는 것을 나는 느꼈다.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들고 나면서 거리는 만들어진다. 후지코 씨의 말대로다. 언뜻 보면 뒤죽박죽 혼란스럽고 추하지만, 어느 틈엔가 멋진 무늬를 그리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것은 사람들의 욕망과 추악함과 비참함과 사랑과 훌륭함과 웃는 얼굴과 풍요로움, 그런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엉킨 무의식의 넝쿨 같은 것, 설사 도끼로 싹둑 잘라 낸다 해도, 불태워 버린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 속 경치까지는, 그 안에 살아있는 시간까지는 빼앗을 수 없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그 안에 지금과 나를 통해 우리 아빠도 분명하게 속해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걸 가르쳐 준, 포근히 감싸 안아 쉬게 해 준 시모키타자와여, 고맙습니다. 모양이 어떻게 바뀌든 끈질기게 단단하게 뿌리내려, 영원히 여기에 있기를……. |
<요시모토 바나나> 저/<김난주> 역10,8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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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거리’ 시모키타자와를 배경으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풍경을 그린 요시모토 바나나의 사랑스럽고 독특한 신작이다. 아빠가 죽었다. 엄마와 요시에만 남기고, 엄마와 요시에는 알지 못하는 어떤 여자와 함께 깊은 밤, 이바라키 현의 인적 드문 숲 속에서 차에 탄 채 가스로 동반 자살 해 버리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