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뮤즈 ‘봉(鳳)’ - 김진경의 신화로 읽는 세상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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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신화

흥이 나서 활력이 저절로 넘칠 때 우리는 “신난다” “신명 난다” “신바람 난다”라고 한다. ‘신난다’는 ‘신명 난다’ ‘신바람 난다’의 줄임말이다. ‘신명 난다’든 ‘신바람 난다’든 샤먼에게 신이 내린 상태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점은 같다. 샤먼들은 신이 내리면 평소와는 다른 활력과 능력을 보여준다. 흥이 나서 활력이 저절로 넘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 난다’와 ‘신바람 난다’는 그 유래에서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신명(神明) 난다’는 신의 밝음이 난다는 뜻이니 신이 내려 신의 밝은 눈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말은 태양신 숭배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신화에는 거인이 죽어 몸은 땅이 되고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해는 하늘의 눈이다. 하늘의 눈인 해가 만물에 밝고 따뜻한 빛을 보내야 목숨 있는 것들이 자라고 풍요가 찾아온다. 신명은 그 태양의 밝은 빛을 뜻한다.

유교(儒敎)의 유(儒)는 태양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사장의 직책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고, 공자의 집안은 대대로 태양신을 모시는 제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유교는 태양신 숭배에서 유래한 종교이다.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덕(德)은 고대에는 신명(神明)과 같은 뜻의 말이었다. 덕(德)은 옛날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눈 위에 뭔가를 붙인 모양이다. 눈 위에 장식을 붙인 샤먼이 신이 내려 신의 밝은 눈으로 본다는 뜻이다. 샤먼에게 내린 신은 ‘조상신=태양신’이다. ‘조상신=태양신’이 밝은 눈으로 보면 풍요가 찾아오고 종족이 번성한다. 태양신 숭배는 농경민의 종교이다. 태양의 빛이 농작물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니까.

‘신바람 난다.’ 샤먼에게 신이 내려 흥이 나고 저절로 활력이 넘치는데, 그 샤먼에게 내린 신은 ‘조상신=태양신’이 아니라 ‘조상신=새(바람)의 신’이다. 새의 신은 유목민의 신화에 많이 나온다. 북방 초원의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유목 종족들은 바람에서 먼 앞쪽의 기후와 다른 동물이나 종족의 이동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목 종족들의 신 중에는 새의 신이 많다. 새의 신은 곧 바람의 신이다. 고대에는 바람 풍(風)과 봉새 봉(鳳)자가 같은 글자였던 사실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꼬리가 화려한 새의 모양으로 바람을 나타내기도 하고 바람의 신인 봉새를 나타내기도 했다. 봉새는 후대로 오면서 공작새 모양으로 굳어졌지만 고대에는 여러 종류였다. 북방의 유목 종족들은 백조, 오리, 매 등을 바람의 신 봉(鳳)으로 여겼고, 실크로드를 가로질러 티베트를 거쳐 중국의 남부로 들어간 유목 종족들은 공작새를 바람의 신 봉(鳳)으로 여겼다. 또 농경을 시작하면서는 닭을 봉(鳳)으로 여기기도 했다.

중국은 농경이 일찍 시작되었기 때문에 태양신 숭배에서 유래한 유교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도교는 그 경직되어가는 주류 사상 유교에 대한 거부의 성격을 갖는다. 도교는 주류인 유교사상이 오랑캐로 배척한 유목 종족들의 신화를 받아들여 사상적으로 체계화하였다. 그래서 태양신 숭배에서 유래한 유교가 유일신교 성격이 강하다면 도교는 다신교이고 새의 신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세계에서 바람을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글을 하나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편을 들겠다.

북해에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그 등이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곤이 파도를 일으키며 놀다가 한번 몸을 뒤집으면 거대한 새가 되어 구만 리(약 35,370㎞) 하늘 높이로 날아오르는데 그 날개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곧 붕(鵬)이다. 붕(鵬)은 육 개월을 날아간 뒤에야 남쪽 바다에서 쉰다.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


위에서 곤이라는 물고기는 북쪽 바다에 머물러 있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모양이 꼭 거대한 물고기가 노는 것 같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이 바람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남쪽 바다를 향해 불어가는데 이 북풍이 바로 날개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새 붕(鵬)이다. 붕(鵬)은 남쪽 바다에 머물며 놀다가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라 북쪽을 향해 불어가는데 이 남풍이 바로 봉(鳳)인 것이다. 그러니까 붕(鵬)은 봉(鳳)의 일종이다.

봉(鳳)은 바람의 신이자 음악의 신이며 춤의 신이다. 신화에서 동양의 음계는 봉이 우는 소리에 맞추어 만들었다고 되어 있고, 『시경(詩經)』에서 풍(風)은 노래란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봉(鳳)은 곧 동양의 뮤즈이다. 또 음악에는 춤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봉(鳳)은 신화 속에서 늘 여러 마리가 춤을 추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래로 우리 민족을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바로 봉(鳳)의 족속, 즉 바람의 족속이라는 걸 뜻하는 것이다. ‘신바람 난다’란 말은 바로 이 바람의 신, 봉이 내려 흥이 나고 저절로 활력이 넘치는 상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지훈의 시 중 「봉황음(鳳凰吟)」이란 게 있다. 경복궁에 있는 왕의 의자를 보고 중국은 황제의 상징으로 용을 새겨놓는데 우리는 스스로 낮추어 왕의 상징으로 봉황을 새겨놓았다고 한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탄하는 것 자체가 중화주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치가 아닐까? 그 유래를 살펴보면 구름의 형상을 품은 용은 농경이 일찍 시작된 중국문화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고, 바람의 형상인 봉은 심층에 유목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우리 문화의 특징을 나타낸 것일 뿐이다. 문화의 차이이지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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