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기독교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종교 자체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글은 예사였다. “내가 노아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물속에 빠져 죽는데 혼자 살겠다고 방주를 만들지는 않겠다. 결국엔 노아도 망령들어 죽지 않았나”(그는 나중에 이를 ‘호기를 부렸다’고 표현했다). “구약에는 하느님이 앞장서서 한 종족 편을 들어 상대편을 치는데 이게 어떻게 공의의 종교냐”(역시 나중에 ‘시비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니체나 카뮈에 매료된 까닭에 허무주의, 실존주의,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성서를 비판했다고 전했다.
종교에 회의적이던 그의 젊은 날을 묘사한 대목은 이렇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30대에 쓴 글들인데 나는 그 책 제목 그대로 신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기성의 모든 권위에 대해 거부하는 몸짓으로 살아온 무신론자였지요.”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여겨져 온 이어령. 문학박사, 교수, 장관 등 다채로운 이력과 타이틀을 지닌 그는 과거 무신론자였다. 2007년 7월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긴, 자신도 생이 그렇게 흘러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칠십을 훌쩍 넘어선 나이였다. 과장해서, 코끼리 다리가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나이. 그는 종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넘었다. 딸의 인도가 있었고, 하나님의 부름이 있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이어령 지음 | 열림원 펴냄)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말하자면, ‘(무신론자의) 신앙 입문기’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나’라고 부제를 붙여도 될 만한 책이다. 대비된다.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의 저자이자, 책 출간 당시 수많은 기독교인의 공격(혹은 협박)과 소송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존을 세우며 싸웠던 지적 투쟁가. 회의적 무신론자, 무정부주의자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던.
러셀은 어쩌면, 반대의 길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던 러셀은 청년기까지 이른바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그는 달라졌다.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는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큰 적이 된다며, 무신론자가 됐다.
이어령은 반대다. 지성과 이성의 힘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그는 무신론자였다. 교회로 대변되는 기독교, 하나님은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계기는 역시나 우연이다. 딸이 암에 걸렸다. 그것도 세 차례나. 딸이 아플 때 그는 (혈육의)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못 했다. 딸은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통해 위로받고 암이 나았다. 머릿속 지식 혹은 지성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고 느꼈다. 신을 찾는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더불어,
“이 세상의 진짜 기적은 단 하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다. 계절적 혼란이 계속되다가 모처럼 봄 햇살이 좋은 날, 기독교 신자로, 영성의 길을 찾고 있는 그를 서울 정동 부근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5월 2일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주례에 관련한 일 등으로 인터뷰 중간에도 전화가 오는 등 그는 여전히 바빴지만, 영성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영성은 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막 문지방을 넘던 시기, 이어령은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다. 일할 수 있을 때 은퇴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은퇴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는 변을 남겼다. 하지만 그것은 노장의 물러섬을 세상은 바라지 않았고, 무엇보다 종교가, 혹은 신이 그를 찾았다. 무신론자의 전향(?)을 놓고 이래저래 말이 많았단다. 이 책은 그래서 사람들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하나님을 향한 연서다.
“영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영성이라고 하면 기독교를 생각하지만 누구나 지성에서 영성의 단계를 간다. 보통 영감이 떠오른다고 하잖나. 그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영감은 영성에 연결될 수 있다.” 영성은, 없던 것이 새로 생긴 게 아니다. 내재돼 있던 것을 끄집어냈다는 말이다. 지성, 이성, 영성 등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내장된 것들이다. 어떤 자극이나 계기가 이를 끌어낸다.
그는 신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 교토에서 하나님을 떠올렸다. 연구를 명분으로 홀로 뚝 떨어져 로빈슨 크루소처럼 지냈던 시절이었다. 절대 고독 때문이었을까.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도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했던 일과 똑같습니다.”(p.49)
물론 결정적 장면은 그의 딸 민아 씨로부터 비롯된다.
“기독교적인 영향을 준 것은 딸이었다. 그런데 그 딸도 무신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법조인을 했으니 지적이고 젊은 세대였는데, 처음 기독교를 믿는다고 했을 때 충격을 받고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영향이 내게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속적 삶과 영적인 삶의 문지방에 선 그다. 책은 때론 그런 그를 보여 준다.
“작두에 올라탄 무당처럼 고민이 있어서 이 책을 썼다. 완전한 영성의 세계로 들어서고 신앙심이 두터웠다면 이런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글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추구하는 것, 몰랐던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쓰고 싶어지는 거잖아. 50년 이상 글을 써왔는데, 아직 새로움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겠나. 망각하기 바쁜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거다. 지금까지 무신론자로서 살던 사람이 종교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안 해봤으니 가보자는 관광객으로서 찾아가는 마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전 인생을 걸고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왜 하필 기독교냐고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우연과 운명의 결합에 의해 그리됐을 뿐, 그는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절대자를 만났다는 것이 그에겐 더 반갑다.
“아버지상이 그렇다. 권력자가 아니고 아버지상. 자유보다는 큰 존재만 있다면 복종하고 싶은 게 우리들이다. 안길 만한 사람이 없으면 자수성가해야 하는데, 옆에서 보면 얼마나 측은한가.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힘들다. 쉽사리 우리가 자유, 독립성, 개성 등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얘기하라면 자유, 개성, 독립이 아니고 정말 큰 사람, 어떤 영원한 존재가 있다면 무릎 꿇고 모든 걸 맡길 거다. 자유와 독립도 귀중하지만, 정말 존경하고 초월할 대상을 찾는 것이야말로 더 중요하다. 사실 ‘온리 원’이 아니라 더 큰 것 속에 작은 하나의 부속으로 존재하더라도, 영원히 빛나는 기계라면 구성품인들 어떻겠나. 하필 그것이 기독교냐 하는데, 불교면 어떻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누군가와 결혼했는데, 하필 그 여자와 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거다. 남의 종교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아니다. 남의 부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듯. 운명처럼 한 거지.”
영적 세계를 향한 발걸음
‘인생을 걸고 해야 할 때’. 사뭇 비장하다. 아마도 그의 생은, 세례 전과 후로 나뉘지 않았을까. 질문을 던졌다. 세례 후의 일상은?
“사람이 변하는 것 같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안 변한다.(웃음) 24시간 (신앙만) 생각하며 살면서 변하는 것은 아니거든. 세례 이후 많이 바뀌었겠지만 지금까지 밀려온 타성을 하루아침에 끊을 수는 없다. 밥 먹기 전에 기도를 드리라고 하잖나. 칠십 평생을 (기도 없이) 그냥 밥 먹었는데, 그날로 식사 때마다 할 수 있겠나. 무의식적으로 까먹는다. 먹고 나서 하는 게 진짜지, 하면서 변명도 하는데, 잊어버린 거지.(웃음)”
말하자면, 세례 이전의 어떤 모습과는 안녕을 고하고 있는 단계다. 전에는 ‘아멘’ 소리가 나와도 거부 반응이 있었는데, 이젠 자신의 입에서 아멘이 나와도 남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하긴 사람이 어찌 연속체로만 살겠는가. 때론 단절을 겪는다. 길게 보면 연속되기도 하겠지만.
“나는 복수다. 예수님을 믿고 주를 영접했다지만 가끔 내 몸속에는 옛날의 내가 튀어나온다.”
돌아보라. 내 속엔 내가 많기도 많다. 그렇다고 한번 든 관성이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어느 하나 쉽게 단정하고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지성과 영성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도 나눠진다고, 이어령은 설명한다.
“헷갈림이 지성의 세계이고, 살아가는 세계라면, 영적 세계는 일관된 자기, 조각을 만드는 것이다. 종교 세계로 간다고 하면, 슬프지만 자신의 삶의 태도가 굳어지는 거다. 과거에는 자유인으로 남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길 거부했지만,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사람의 방향이 생기는 거다. 조각처럼 자기 모양이 굳어지는 거다. 여간해서 굳어지지 않지만 자기 조형이 생겨나는 거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방황하지만 믿는 사람은 자신의 주소를 닮은 거다. 범죄자를 봐라. 삶의 거처가 없지 않나. 그 자체가 범죄인 거고.”
이 책은 선교를 목적으로 한 책이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방황하거나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사람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부딪힌 그런 사람을 위해 썼다고 했다.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또 다른 아버지를 모실 것을 권하는 이어령의 손 내밀기.
“종교의 세계는 가족의 울타리 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서 또 다른 아버지가 생기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어머니를 보고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안 믿다가 믿게 되는 것이 참 어렵고, 이건 모든 걸 던지는 일이라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하루하루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쳇바퀴 굴리는 삶’이라지만, 단 1초만 놓고 봐도 나는 이전과 다른 존재다. 신진대사와 세포의 들고남이 있다. 머리에서도 끊임없이 변신과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그런 것에서 초월자의 힘을 느낀다고 했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마라, 연애편지는 연필로 쓰라고 하는데, 그렇게 사람이라는 건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그게 영원한 것이 아니라 들락날락해서 신비 체험을 할 때도 있고, 그게 우스울 때도 있지만.(웃음) 우리 능력으로는 느끼거나 생각할 수 없는 세계의 유무를 물으면 과학자는 없다는데,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게 뭔가 물어봐라. 아인슈타인에게 죽음이 뭔가를 물어보니,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못 듣는 거’라고 했다는데, 그 유명한 사람도 죽음, 사랑, 우정 등에 대해 입을 닫는 거다.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가 있고 물어봐야 대답 못 하는 게 죽음의 세계거든. 살아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종교밖에 없다. 죽음에 대해서는 과학자도 시인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모든 것은 삶의 문제지만,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종교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통합된 시점이다. 삶과 죽음을 통합할 수 있는. 그에게 그것은 종교요, 성경이다.
“삶이란 여러 개의 재료가 혼합된 만두 같은 것이어서 통째로 씹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세례를 받을 생각을 하고나서야 성경을 통째로 씹어 먹는 독해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p.142) 그는 강조했다.
“자신의 삶에 손님이 돼선 안 된다. 자신의 삶에 운전자가 되면 좌우 모두를 볼 수 있는데, 남이 운전하는 데 타면 한 곳밖에 못 본다. 총체적인 삶을 내려다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늘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것 아닌가.”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서, 그는 지성을 넘어선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평소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 줬으면 한다는 바람. 물론 완벽한 영성의 세계로, 하늘로 간다면, 굳이 사진을 찍을 일도, 책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아직ㅡ그의 표현을 빌리자면ㅡ100% 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100% 신자가 지상에 있지도 않다.
“100% 신자로서 허물이 없다고 하면 예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웃음) 성경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성경에는 실패한 얘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다른 데 같으면 창피하다며, 사람들이 안 믿을지 모른다며 빼고 이럴 것을 전부 다 넣었다. 아주 오래전엔 예수님이 십자가가 못 박히는 것도 안 보여 줬는데, 요즘은 보여 줘야 한다. 고통받는 인간 모습을 보여 줘야, 그 사랑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천이라 해도 사실상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도 있고,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크리스천인 사람이 있다.”
딸이 이끈 신도의 길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딸 민아 씨와 함께 쓴 책이다. 지성인으로 알려진 그가 신자가 되고 세례를 받은 것, 모두 민아 씨와 관련이 돼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민아 씨는 피붙이 딸을 넘어선 존재처럼 보인다. 뭣보다 그는 민아 씨에게 미안한 감정이 크다.
“글 쓰고 강의 나가고 신문사 주필 하고 바쁘니까 놀아 줄 시간이 없잖나. ‘아빠~’ 하고 문을 열면 글을 쓰고 있고, 엄마는 아빠가 바쁘다며 자라고 하고. 내 얼굴은 못 보고 등만 보는 거지. 충분히 아버지 사랑을 못 받았다.”
그런 민아 씨였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공부를 잘했고, 미국 변호사 시험을 2년 만에 패스하고 로펌을 다녔고, 검사까지 하는 등 뛰어난 재원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은 아버지에게 토로를 했다. 사실 공부하기 싫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한 것은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에겐 충격이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니. 암에 걸렸을 때도 아버지가 속상해 할까봐 말을 하지 않았던 딸이었다.
“암에 걸렸을 때도 얘 옆에는 내가 없었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있었다. 땅 위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고통의 현장에 항상 같이 있었다. 친아버지도, 친구도 아니었고,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정말 한때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LA에서 성공한 한인으로 알려졌고, 자가용 요트를 집에 놓고 그걸 타고 놀러 다니고. 딸이 그렇게 행복한 줄로만 알았다.”
딸에게 닥친 불행과 치유가 그러했듯, 종교도 이치를 따져서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세례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란다. 초능력 혹은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 의한 것. 그것이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그는 그것을 ‘썸싱 그레이트’(Something Great)라고 했다.
썸싱 그레이트의 힘이었을까. 딸을 통해 모든 게 달라졌다. 그는 이렇게도 전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 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딸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이 그를 영성으로 이끈 것은 아녔을까. 그렇기에, 그는 세례를 받을 당시에도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민아 씨는 지난해 4월 목사 안수와 함께 청소년 치유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오는 6월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자신의 신앙 체험을 담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기도 하다.
생명을 향한 글쓰기
그의 글쓰기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우리는 어떻게 달라진 그의 글을 만나게 될까.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쓰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글도 바뀌고 글이 바뀌면 내 생각의 세계도 업그레이드됩니다.”(p.136) 약간 과장하자면, 글쓰기는 그를 규정하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글은 지성이 압도하고 있을 때의 것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아마도 종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그의 글과 앞으로 그의 글은 다를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어머니가 오래 사시고 아버지가 안아 주는 아버지였더라면, 내 글쓰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성이라는 것이 참 하찮다. 길러 주신 부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가페는 그러나 다르다. 초월적 존재가 존재한다면 죽음인들 두렵겠나.”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존재론적 외로움 때문이었다.
“나는 20대부터 돈이나 가난, 또는 권력, 전쟁에서 비롯된 소유의 결핍보다도 생명의 결핍, 존재의 결여에 대한 그 틈을 메우기 위해서 글을 썼던 것이지요.”(p.159)
근래 몇 년, 칠십 평생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거듭하는 그다. 세례를 받았고,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이제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엄청난 큰 생명의 질서에 주목하고 있다.
“순환 관계가 없었으면 인간은 죽었을 것이다. 끝없이 부조리하지만 생명 그 자체로 얼마나 축복받았나. 아무리 불행해도 행복 아니겠나. 숨 쉬는 것 하나만 봐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생명은 아름답고 징하고 사랑할만하다. ‘생명 자본주의’라는 말을 하는데, 산업 자본주의, 금전 자본주의가 앞으로 사라지고 생명 자본주의가 온다는 것을 내 글 속의 화두로 삼을 거다. 생물학 책을 많이 읽고 그런 책을 통해 생명의 심대함을 깨닫고 있다. 이것이 나의 변화고, 글쓰기나 독자와의 만남도 달라질 거다.”
“나는 죽는 날까지,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글을 쓸 것입니다. 다 쓴 치약 튜브를 짜내고 또 짜내듯 가슴의 주름이나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 느낌과 생각들을 짜내 글을 쓸 것입니다. 아직 내 열정과 사랑과 증오가 식어 버리기 전에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고개 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pp.63~64)
영성이 필요한 시대인가보다. 생명을 요구하는 시대인가보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은퇴를 선언했던 한 지성도 영성과 생명을 언급하며 새로운 글쓰기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자본이 추동한 산업화와 금융화가 전 지구적으로 폐해를 부르며 사람들을 지치게 한 까닭일까. 영성이 유행처럼 회자되는 시대이다.
그렇다고 영성이 꼭 종교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20세기 버트런드 러셀에 이어, 21세기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종교적 폐해를 꼬집고 있다. 본디 예수가 전파한 실천과 정신에서 벗어나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라고 자유롭지 않다. 그들만의 예수도, 어쩌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너무 크고 강하고 많이 가진 한국 기독교의 예수는 진짜 예수의 길과 다르니까. 진짜 예수의 영성은 저잣거리의 인민들과 부대끼면서 발휘됐으니까.
이어령은 어느 종교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영성은 특정 종교에 의한 것도 아니요, 삶의 한 형식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내놓고 “철학은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산골에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산골에서 이룬 영성은 이런 것이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에 무게를 둔 그는 말년에 아일랜드의 한 해변 오두막집에서 살다가 이런 말을 남기며 작별을 고했다. “멋진 삶을 살았노라.” 비트겐슈타인이 바꾼 변혁과 영향을 생각해 보라. 그는 침묵 속에 있었지만, 세상이라는 유기체를 움직였다.
김규항은 영성의 본령은 변혁이라고 했다. “세상이 변혁되려면 사회구조도 변혁되어야 하고 나도 변혁되어야 한다. 즉 내 밖의 적과도 싸워야 하고 내 안의 적과도 싸워야 한다.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이 혁명이라면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이 바로 영성이다.” 이어령은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을 말하면서 변화를 언급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는 이것을, ‘변혁에 대한 용기’라고 말했다. 용기, 지혜, 겸허. 이 세 가지, 이어령은 독자에게 건네고픈 핵심이라고 했다. 진짜 영성은 세계의 변혁을 위한 가장 큰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나의 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