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산정될까? 유명한 작가의 대단히 예술적인 작품이어야만 고평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작품이 완성된 순간부터 500년 넘는 세월을 겪었다고 상상해 보자. 운 좋게 명망 있는 컬렉션을 만나 고이 보존되며 각광받을 수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누군가의 다락방에서 수십 년간 잊혀진 채 먼지만 수북이 쌓일 수도 있다. 또, 위작의 억울함을 안고 살다 뒤늦게 진위 감정의 문제가 바로잡혀 비로소 세상에 등장한 작품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 ‘비하인드 스토리’와 소유 관계의 계보는 작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프로비넌스(provenance)’가 중요한 이유다.
‘프로비넌스’는 출생증명서와 같은 작품의 이력서를 뜻한다. 미술품 투자에 있어 해당 미술품이 지나온 경로는 중요하다. 어떤 기관 혹은 누가 소장 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명 컬렉터나 영향력 있는 갤러리가 소장했던 이력이 있을수록 작품 가치가 높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소장처 이력, 경매 기록, 거래 내역 등이 상세히 담긴 프로비넌스는 가치 산정 뿐 아니라 작품의 도난, 약탈, 혹은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Judith and Holofernes)> Oil/canvas, 144 x 173.5 cm.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s Images Ltd.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 카라바조의 작품인 <유디트와 홀로 페르네스>는 소장 이력에 의해 가치가 높게 산정된 대표적인 사례다. 16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2014년 어느 날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한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집주인이 지붕에 물이 새 다락방을 살펴보다 그림이 있더라는 것. 먼지 쌓인 캔버스 위에는 성서 속 인물인 유디트가 아시리아 장군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1599년에 그린 유사한 작품이 남아 있었기에, 이 그림 역시 카라바조의 진작(眞作)으로 판명됐다. 이 작품은 어떻게 평가받았을까? 경매 전부터 1억 달러 이상이 예상되었고, 결국 2019년 비공개 거래에서 약 1억 7천만 달러(한화 약 1,900억 원)에 낙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술적 완성도는 물론,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됐다’라는 극적인 서사가 작품의 가치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청동 조각 <성숙의 시대(The Mature Age)> 역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초, 파리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서 15년 간 쌓인 먼지와 잡동사니들을 치우던 청소부에게 발견되었다. 덮개를 들춘 순간 뜻밖의 조각상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심지어 클로델이 로댕과 이별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한 중요 작품이었으니 미술계가 발칵 뒤집히기 충분했다. 결국 조각된 지 백 년 만에 310만 유로(한화 약 47억 원)에 낙찰되며 클로델 경매가의 신기록을 세웠다. 6명이 치열하게 입찰 경쟁을 벌인 끝에 산정된 경매가. 작품의 희소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다. 프로비넌스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고 오랜 세월 끝에 발견되기까지의 드라마는 경매 시장의 열기를 달구기도 한다.
명망 있는 소장가의 컬렉션을 통해 장기간 보존된 작품이 시장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경우도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Paul Allen)은 실리콘 밸리 창업자로는 보기 드문 미술 애호가다. 그가 소장했던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Victorie)>(1888-1890)은 2001년 3,85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가 2022년 경매에서 1억 3,779만 달러로 낙찰되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20년 만에 1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 상승이 일어난 것. “폴 앨런이 선택한 세잔”이라는 한 줄이 작품의 가격을 끌어올린 이유가 되기도 한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생트 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Victorie)> (c.1888-1890). Oil/canvas, 65.2 x 81.2 cm. CHRISTIE'S IMAGES LTD. 2022.
결국 시장은 프로비넌스라는 역사적 기록, 그 뒤의 ‘스토리’에 열광한다. 국내는 어떠한가? 방탄소년단의 RM이 세계적인 뮤지션이 동시에 현대미술 애호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업계에서 “RM이 관심을 보였다”는 말 한마디가 작품의 부가가치로 작용할 정도다. 윤형근(1928~2007) 화백의 작품 역시 RM이 솔로 앨범 <Indigo>(2022) 재킷에 넣고 ‘윤(Yun)’이라는 노래까지 발표하면서 대중적 인지도와 시장 가치가 급등세를 탄 사례 중 하나다. 윤 작가의 대작 <Umber-Blue>(1978)는 2024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6억 3,000만 원에 낙찰되었는데, 2019년 당시 작품이 4억 7,064만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약 5년 새 1억5천만 원 넘게 올랐다. RM이라는 아이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작품의 가격 상승에 힘을 보탠 셈이다. 단색화의 예술적 깊이에 세계적 아티스트의 선택이라는 서사가 더해진 결과다.
방탄소년단 RM 솔로앨범 이미지에 등장한 윤형근 화백의 ‘청색’. 사진 : 빅히트 뮤직
이처럼 프로비넌스는 미술품의 가치 형성에서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카라바조나 클로델 작품의 경우처럼 극적인 발견의 서사가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윤형근 작가의 작품처럼 RM이라는 동시대 아이콘을 만나 그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한다. 작품이 겪어온 세월과 사연, 그 작품을 향유해온 컬렉터의 시간과 애정, 그 총합이 작품의 가치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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