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첫 산문집 『이적의 단어들』을 펴냈다. 2005년 픽션집 『지문사냥꾼』을 시작으로 그림책 『어느 날,』, 『기다릴게 기다려 줘』, 『당연한 것들』 등을 썼지만 산문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적의 단어들』에는 101편의 낱말을 인생의 넓이, 상상의 높이, 언어의 차이, 노래의 깊이, 자신의 길이 등 총 5부로 나누어 짧은 단상들이 펼쳐진다. 프롤로그, 에필로그도 없다. 전주와 후주만 있을 뿐.
지난 5월 31일 박혜진 다람출판사 대표의 사회로 『이적의 단어들』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1995년 그룹 '패닉'으로 데뷔해 '긱스', '카니발'로도 활동했던 이적은 "얼마 전 팬분들이 데뷔 1만 일 소식을 전해줬다. 가수로 산 시간이 꽤 길어서 점점 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20년 후면 완전히 노인이 된다. 인생이 정말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고 말했다.
산문집은 처음이다. 언제 책을 썼나?
3년 가까이 쓴 것 같다. 혼자서 원고를 쓰다가 동기 부여가 필요해서 SNS에 올려보면 어떨까 싶어서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어 글을 올렸다. 원래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보는 곳이니까 사진을 올리는 공간에 글을 넣었다. 되도록 한 화면에 들어가도록 압축된 글을 SNS에 올리니 다양한 반응이 올라오더라. 어떤 글은 환영 받고 또 어떤 글은 오해를 받기도 해서 재밌는 경험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SNS를 활용한 셈이다.
그렇다. 기본적으로 게으른 데다 관종기가 있어서 확실히 동기 부여가 됐다.(웃음) 책을 만들 때는 글자수의 한계가 있어서 올리지 못한 글은 좀 더 길게 쓰기도 하고, 책에 어울리는 문장을 새로 쓰기도 했다.
표지부터 담백하다. 『이적의 단어들』은 어떤 책인가?
순간순간 떠오르는 단어, 이 단어에서 파생된 생각들, 촉발된 아이디어, 피어 오른 이미지들을 담았다. 목차를 보면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를 어떻게 풀었을까? 상상해보면서 글을 읽으면 재밌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머릿속 상상에 시동을 걸어주는 책? 비타민, 자양강장제 같은 책이 돼도 좋겠다.
제목처럼 한 단어로부터 시작되는 글이다.
이건 사실 편집자분이 갖고 온 아이디어다. 그동안 다양한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써보자고 제안해주셨는데, 『이적의 단어들』 의 콘셉트가 좋아서 글을 쓰게 됐다.
101개의 단어는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
기준은 없었다. 예를 들어 동식물로 갈 수도 있고, 철학적인 개념, 음악적인 이야기로 갈 수도 있었는데 여기서 균형을 맞춰 뭘 하려는 것보다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스」라는 글의 경우 재야 언어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한글의 장점이 뭔가 생각해보면, 소리나는대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스'의 경우 모두가 '가쓰'라고 발음하지 않나? 책에 실린 글은 '가스'를 '가스나'의 앞 두 글자처럼 정직하게 발음하는 한 시골 할머니 이야기로 끝이 나는데, 이런 글을 통해 저자로서 바라는 건 '아, 한글의 표기가 꼭 소리 나는 대로 적히진 않는구나', 같은 생각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가겠지만 문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사실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웃음) 운문으로 말을 고르고 다듬었는데, 어떤 주장을 하는 것보다 그 자체로 읽히고 싶긴 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단어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오래 고민했고 단어로 응축되지 않은 이야기는 수록하지 못했다.
「리셋」이라는 글도 기억에 남는다. "이 버튼을 누르면 당신과 주변의 모든 상황이 5년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중략) 당신은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57쪽)" 이적이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누르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이 다양한 답을 주셨는데, 안 누르겠다고 말하신 댓글이 더 많았다. 안 좋은 일이 많았어도 그것조차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의미였는데, 10대 20대가 마음의 불안정도 크고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을 만든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청년 시절과 지금의 나,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청년 때는 날이 더 많이 서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회화가 되었다고 할까.
픽션과 산문 작업은 어떻게 달랐나?
산문집에 픽션 같은 글도 들어 있는데, 픽션을 쓸 때는 재밌고 픽션이 아닌 글을 다룰 때는 조금 조심스럽다. 그래서 예민한 주제를 이야기할 때는 픽션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한 발 뒤로 빠져서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에세이는 쓰다 보면 누구를 가르치는 느낌이 들어서 또 어렵기도 하다. 나는 역시 짧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압축해서 글을 썼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음. 좋아한다기보다 싫어하진 않는 것 같다. 라디오 DJ를 10년 이상 했고 가사도 쓰고, 말하는 일도 언어를 갖고 하는 일이니까 모든 게 글과 연관된 작업이지 않았나 싶다.
어떤 말들이 이적에게 힘이 되는가?
당신의 어떤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하다. 특히 젊은 예술가 후배들로부터 들으면 너무너무 고맙다. 지난 시기 내가 해온 음악들이 그렇게 헛되지는 않았구나,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수 있었구나 생각해보면 너무 행복하다.
*이적 이적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다. 한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로 100여곡이 넘는 노래들을 발표하였고 그 가사들을 통하여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절절하게 대중을 휘어잡기도 했었고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와 같은 노래로 노래 안에 스토리를 담기도 했었다. 아직 그는 자신의 작품에 '문학', '소설'이라는 평가보다는 '이야기'라는 답을 내리고 있다. 시대적인 배경이나 공간적인 제약을 벗어난 그의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문제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소통의 어려움, 힘없는 자에 대한 사회의 잔인성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의 행보는 거침없이 창작을 향해 나아갈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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