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4일 발매를 예고한 세븐틴의 열 번째 미니 앨범 제목은
케이팝에서 F*ck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 꽤 최근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을 탐구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욕의 품격'을 보면, F*ck은 영어권에서 가장 다양하게 쓰이는 비속어다. 고통, 경이로움, 부적절한 육체관계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며,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기보다는 일종의 감탄사나 강조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F*ck은 누군가를 정말 화나게 할 때도, 엄청나게 대단한 걸 봤을 때도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짜증을 덜어주고, 솔직한 감정을 전달한다. 기가 막힌 인공 감미료처럼 어디든 넣기만 하면 해당 문장을 맛깔나게 헤주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이 F*ck이 영어에서 가장 수위 높은 비속어이자 그만큼 자주 사용되는 비속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이 단어가 영화에 2번 이상 나오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R등급을 받는다. 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인지 부조화가 올만 하다. 그동안 내가 노래 제목과 가사로 접한 그 수많은 F*ck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심지어 이제는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게 너무 새삼스러울 지경이라 'abcdefu'라는 참신한 표현까지 등장해 유행할 지경이건만. 그렇게 어리둥절한 사이, F*ck은 이미 머나먼 여행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도달했다. 그리고 도착한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의 꽃을 피웠다. 정치, 사회, 종교, 문화, 사생활의 모든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표현이나 언급해서는 안 되는 표백된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돌에게 주어진 뜻밖의 자유로서 말이다.
사실 세븐틴이 앨범 제목에 F*ck을 표기하기 이전, 여성 아이돌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전까지 힙합을 간판으로 내건 남성 아이돌을 중심으로 자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쓰였던 F*ck은 2020년대 들어서며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의 해방감을 북돋기 위한 적극적 보조 장치로 탈바꿈했다. 한껏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양팔을 들어 올리고 거칠게 내뱉는 (여자)아이들의 'I’m a f**king tomboy(Tomboy)'나 '나는 빌어먹을 천사도 여신도 아니라(I’m no f***in’ angel / I'm no f***in’ goddess)'는 외침 속 녹아드는 거침 없는 F*ck의 향연이 인상적인 르세라핌의 'No Celestial'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한국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블랙핑크 앨범에 붙은 19금 딱지에 놀람을 표하는 건 부끄러울 정도로 촌스러운 일이라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케이팝은 어느새 F*ck을 깊이 품게 되었다. 가끔은 이역만리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돌아온 이들에게 주어진 외교용 면죄부처럼 느껴져 슬쩍 웃기도 하지만, 사실 뭐 그렇게까지 꼬아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다. 늘 팬에게 모범이 되는 성실하고 올바른 자세가 기본인 아이돌 전반에는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숨구멍으로, 여성 아이돌에게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양한 잣대로 자신들을 옭아매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발길질이자 가운뎃손가락을 대신하는 속 시원한 존재, 그게 바로 현재 케이팝 신에서의 F*ck의 위치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다큐에서 언급한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이자, 저항의 한 형태이며, 정신 건강에 좋다는 비속어의 좋은 활용의 예와 정확히 일치한다. 어쩌면 수년 뒤 옥스퍼드 대사전의 F*ck 항목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케이팝'이라는 각주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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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