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예기치 못한 숨구멍, F워드
누군가를 정말 화나게 할 때도, 엄청나게 대단한 걸 봤을 때도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짜증을 덜어주고, 솔직한 감정을 전달한다. 기가 막힌 인공 감미료처럼 어디든 넣기만 하면 해당 문장을 맛깔나게 헤주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글ㆍ사진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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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프로모션 스케줄러 | 플레디스 제공

오는 4월 24일 발매를 예고한 세븐틴의 열 번째 미니 앨범 제목은 이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쓰이는 약어로 술렁술렁하던 분위기는 앨범 프로모션 스케줄 공개와 함께 단번에 정리되었다. F*cking My Life. '빌어먹을 내 인생'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관용어구는 앨범 제목이자 데뷔 이래 세븐틴이 발표하는 첫 더블 타이틀 곡의 제목이었다. 앨범 발매 전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MFL은 이외에도 'Fallen', 'Misfit', 'Lost'로 넘어지고(Fallen), 길을 잃고(Lost),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운(Misfit) 인생으로 풀이할 수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우리만큼은 무조건 여러분 편'이라는 한 멤버의 말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하나같이 그럴싸한 뜻풀이 속에서 하나의 단어만이 빛났다. 'F*ck'.

케이팝에서 F*ck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 꽤 최근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욕을 탐구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욕의 품격'을 보면, F*ck은 영어권에서 가장 다양하게 쓰이는 비속어다. 고통, 경이로움, 부적절한 육체관계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며,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기보다는 일종의 감탄사나 강조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F*ck은 누군가를 정말 화나게 할 때도, 엄청나게 대단한 걸 봤을 때도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짜증을 덜어주고, 솔직한 감정을 전달한다. 기가 막힌 인공 감미료처럼 어디든 넣기만 하면 해당 문장을 맛깔나게 헤주는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이 F*ck이 영어에서 가장 수위 높은 비속어이자 그만큼 자주 사용되는 비속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이 단어가 영화에 2번 이상 나오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R등급을 받는다. 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인지 부조화가 올만 하다. 그동안 내가 노래 제목과 가사로 접한 그 수많은 F*ck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심지어 이제는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게 너무 새삼스러울 지경이라 'abcdefu'라는 참신한 표현까지 등장해 유행할 지경이건만. 그렇게 어리둥절한 사이, F*ck은 이미 머나먼 여행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도달했다. 그리고 도착한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의 꽃을 피웠다. 정치, 사회, 종교, 문화, 사생활의 모든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표현이나 언급해서는 안 되는 표백된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돌에게 주어진 뜻밖의 자유로서 말이다.


(여자)아이들 앨범 티저 |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실 세븐틴이 앨범 제목에 F*ck을 표기하기 이전, 여성 아이돌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전까지 힙합을 간판으로 내건 남성 아이돌을 중심으로 자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쓰였던 F*ck은 2020년대 들어서며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의 해방감을 북돋기 위한 적극적 보조 장치로 탈바꿈했다. 한껏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양팔을 들어 올리고 거칠게 내뱉는 (여자)아이들의 'I’m a f**king tomboy(Tomboy)'나 '나는 빌어먹을 천사도 여신도 아니라(I’m no f***in’ angel / I'm no f***in’ goddess)'는 외침 속 녹아드는 거침 없는 F*ck의 향연이 인상적인 르세라핌의 'No Celestial'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한국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블랙핑크 앨범에 붙은 19금 딱지에 놀람을 표하는 건 부끄러울 정도로 촌스러운 일이라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케이팝은 어느새 F*ck을 깊이 품게 되었다. 가끔은 이역만리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돌아온 이들에게 주어진 외교용 면죄부처럼 느껴져 슬쩍 웃기도 하지만, 사실 뭐 그렇게까지 꼬아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다. 늘 팬에게 모범이 되는 성실하고 올바른 자세가 기본인 아이돌 전반에는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숨구멍으로, 여성 아이돌에게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양한 잣대로 자신들을 옭아매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세상에 대한 발길질이자 가운뎃손가락을 대신하는 속 시원한 존재, 그게 바로 현재 케이팝 신에서의 F*ck의 위치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다큐에서 언급한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이자, 저항의 한 형태이며, 정신 건강에 좋다는 비속어의 좋은 활용의 예와 정확히 일치한다. 어쩌면 수년 뒤 옥스퍼드 대사전의 F*ck 항목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케이팝'이라는 각주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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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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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멤버 : 에스쿱스(리더), 정한, 조슈아, 준, 호시, 원우, 도겸, 민규, 디에잇, 승관, 버논, 디노, 우지 13명의 멤버와 3개의 유닛, 한 개의 캐럿이 이루어져 하나로 빛난다는 의미의 세븐틴은 힙합팀, 보컬팀, 퍼포먼스팀 이상 세 팀이 구성되어 완전체, 혹은 유닛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보이 그룹이다. 데뷔 전 선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혹 백댄서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고, "세븐틴 TV"라는 인터넷 방송으로 팬들과 활발한 소통을 시작했다. 2015년 5월, [17 CARAT]의 '아낀다'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첫 앨범부터 프로듀싱과 작사, 작곡, 안무 창작 등에 참여하며 자체 제작 실력을 뽐냈다. 이어 [BOYS BE]의 수록곡 '만세'가 음악 프로그램 2위를 차지했고, 11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대세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보다 높이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는 2016년 4월 발매한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 '예쁘다'였다. 곡이 음악 프로그램 "쇼 챔피언"에서 2주 연속 1위를 거머쥔 것이다. 이에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발매한 리패키지 앨범의 '아주 NICE'는 격한 칼군무와 뛰어난 퍼포먼스로 연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세븐틴의 모습을 담은 세 번째 미니앨범 [Going Seventeen]는 초동 13만 장을 판매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붐붐'으로 첫 지상파 1위를 달성해 명실공히 대세 아이돌로 인정 받았으며, 이어 발매된 [Al1]에서는 아이돌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년 11월 발매한 '박수'는 가온차트 주간 앨범 순위 정상에 등극했고, 각종 음원 차트 1위, 빌보드 월드 차트 1위를 휩쓸며 글로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히 이 앨범에서는 데뷔 초 청량한 소년에서 시작해 파워풀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 에너지와 함께, 세븐틴이 만들어 갈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포부도 담았다. 2018년 5월 미니앨범 [We Make You]를 발매, 독보적인 퍼포먼스와 밝은 에너지를 선사하며 청량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7월에는 다섯 번째 미니앨범 [YOU MAKE MY DAY]을 발표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또 하나의 월드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2019년 1월에 공개된 새 EP [YOU MADE MY DAWN]에서는 멤버들이 전반적인 작사, 작곡에 참여해 한층 더 성숙해진 음악적 역량을 담았다. 탄탄하고 깊이감 있는 곡들로 완성도를 높였으며, "2018 MAMA" 홍콩 무대에서 선공개 한 '숨이 차'가 수록되어 있어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