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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에 음악이 돌아왔다
뉴진스, 피프티 피프티, 다시 노래에 주목하다
케이팝에 다시 음악이 돌아왔다. 이것이 일시적인 변화일지 장기전일지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확실한 건 전에 없던 혹은 잊고 있던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바람을 즐기고만 싶다. 적어도 지금은. (2023.03.02)
케이팝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 가운데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어떤 음악 좋아하냐는 질문에 케이팝 좋아한다는 대답을 해 본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한 번 이상은 들어본 반응일 것이다. 싫고 좋은 마음이야 자유지만 사실 저 말은 객관성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오로지 '내 기준'만을 내세운 말이다. 내 기준에 음악 같은 음악이나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이 존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나'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그곳엔 같든 말든 남는 건 그저 '음악'뿐이다. 반면, 비슷한 의도로 '음악이 중심이 아닌 음악'이라 말한다면 이는 꽤 일리 있는 호불호 표현이 된다. 실제로 음악은 케이팝을 이루는 주요 요소지만 이제는 그를 중심으로 한 판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최소한 2023년 지금, 음악은 '케이팝'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맞다.
시무룩하게 쳐진 음악의 어깨를 토닥대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 건 지난해 즈음부터다. 지금껏 없던 종합 엔터테인먼트적 면모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케이팝 지형도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온 탕아 같기도, 마패를 흔들며 '암행어사 출두요!'를 신명 나게 외치는 암행어사 같기도 한 이 힘의 원천은 이제 와 다시 찾은 음악이었다. 새 물결을 이끈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룹 뉴진스였다. 앨범 발매 전 뮤직비디오와 함께 완곡을 패기 넘치게 공개해버린 'Attention'과 그 노래가 담긴 첫 EP, 이어진 싱글 'Ditto'와 'OMG'까지, 음악은 두려울 정도로 가파르게 치솟은 이들의 파죽지세를 선봉에서 이끈 장본인이었다. 발매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음악의 면면도, 각종 인터뷰를 통해 몇 번이나 반복된, 모든 것의 중심엔 음악이 있었다는 민희진 레이블 대표의 말도 하나의 점으로 통했다.
뉴진스가 음악으로 판도를 뒤바꾸기 전, 전조 증상은 꾸준히 있었다. 음악 청취 방식에서 플레이리스트의 중요성은 장르를 막론하고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고, 순위로 보나 인기로 보나 케이팝의 다음 도약을 위해 사랑받는 '노래'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BTS가 편안하고 즐거운 팝 튠을 영어로 노래하거나, 싱크(SYNK)를 통해 아바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영생의 에스파도 '인생은 너무 짧다'며 'Life’s Too Short'를 부르는 게 당연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앨범 단위가 중요한 신이라는 점도 유효했다. 장르 복합적 하이브리드 팝을 부르는 그룹 엔하이픈이 뉴미디어를 통해 'Polaroid Love'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고, 르세라핌이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처럼 대중 인지도가 아쉬운 팀들의 앨범에는 '소셜 미디어 팝'이라는 다소 괴이한 명칭의 수록곡이 필수로 포함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제 타이틀 곡, 일명 활동 곡으로도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뉴진스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여성 그룹들의 작지만 큰 변화가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데뷔 EP <THE FIFTY>를 발표하고 활동 중인 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새 싱글 <Cupid>를 보자. 도자 캣(Doja Cat)이 창조한 레트로 신스팝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은은하게 춤추는 노래는 익숙한 케이팝의 자극보다는 가요의 범용에 보다 몸을 기댄다. 보통 보컬 목소리를 여러 악기 가운데 하나처럼 사용하는 대다수 케이팝 곡과 달리 보컬을 확실히 앞으로 전진시켜 '노래'에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는 것도 이채롭다. 접근 방식으로 보자면 요즘 케이팝보다는 브라운아이드걸스가 'My Style'이나 'Sign' 같은 곡을 발표하던 200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한다.
다른 예로 한국에서 데뷔한 7인조 일본 여성 그룹으로 화제인 XG의 경우도 이야기해볼 만하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앞세운 멤버 구성에서 상당한 연습량이 느껴지는 군무까지 모든 것이 케이팝 그 자체지만, 'LEFT RIGHT'나 'SHOOTING STAR' 같은 노래만 들어서는 TLC나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가 활약하던 90년대 R&B 여성 그룹과 한 바구니에 넣는 것이 맞아 보인다. 마치 돌고 돌다 360도를 돌아온 것처럼, 케이팝에 다시 음악이 돌아왔다. 이것이 일시적인 변화일지 장기전일지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확실한 건 전에 없던 혹은 잊고 있던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바람을 즐기고만 싶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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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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