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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익이와 해준이의 사정 : 포스타입 웹툰 <가상아이돌 김준익>
현실고증 제대로 된 케이팝 웹툰을 원한다면?
케이팝을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덕질이 주는 비애와 다양한 삶에 대한 연민이 색다른 각도로 다가온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케이팝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정독해 볼 만한 진짜 '매운' 작품이다. (2023.03.15)
2021년 1월, 케이팝 좀 한다는 사람이 모인 SNS와 커뮤니티가 동시에 술렁였다. 2차 창작을 하는 케이팝 팬이라면 익숙한 플랫폼 포스타입에 게재된 웹툰 하나가 그 술렁임의 주인공이었다. 작품명은 <가상아이돌 김준익>. 작가의 첫 연재작이고 아이돌을 다루고 있지만 특정 팬덤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자칭 가상 아이돌을 중심에 둔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진짜'였다. VR 체험 기기를 착용하고 "야! 이거 진짜 같다!" 외치는 바다처럼 헉 소리가 났다. '가상아이돌 김준익'은 스스로 붙인 가상 딱지가 오히려 이율배반처럼 느껴질 만큼 케이팝 아이돌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를 고스란히 담아낸 현실고증 콘텐츠 그 자체였다.
주인공은 올해로 스물두 살이 된 7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트루퍼즈(TRUPERZ)'의 멤버 김준익이다. 그룹 내 메인 포지션은 아니지만 아이돌 팬에게 가장 중요한 무대를 잘하고 덕분에 팬들의 충성도도 무척 높은, 속칭 팬덤 내 코어팬이 많은 멤버다. 햄스터에 비유해 귀여워할 수 있는 외모도 팬심을 자극하는 주요 매력이다.
어느 팀에나 한 명쯤 있는 꽤 평범해 보이는 김준익이 다른 아이돌과 다른 점은 바로 심각한 SNS 중독이라는 사실이다. SNS로 팬들의 반응을 잘 살피는 것도 프로 정신의 일환으로 이야기되는 요즘이지만 김준익의 중독은 그런 상식을 훌쩍 넘어선다.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는 팬 페이지 홈 마스터에서 네임드라 불리는 유명 팬들의 계정을 전부 팔로우하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해 행동을 취한다. 본명은 물론 팬들이 혹시나 있을 검색을 막기 위해 교묘하게 합성한 특정 단어까지 빼놓지 않는다. 자신과 관련한 팬들의 동향은 물론 그룹 전체와 타 멤버에 관한 여론까지 두루 살피며 멤버와 팀이 구설에 오르지 않게 오매불망 밤낮으로 노력한다. 이쯤이면 비록 가상이라 해도 짠 내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김준익의 일명 '네임드 팬' 해준은 '가상아이돌 김준익'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사랑해준익아'의 가운데 글자인 해준을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20대 여성이다. 사실 평범하지는 않다. 해준은 소속사 마케팅팀 직원도, 김준익의 친인척도 아니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김준익으로 채운다. 팔로워가 많은 유명 계정은 물론 김준익의 동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준익.mp4', 김준익의 모든 순간을 나노 단위로 저장해 올리는 '준익아카이브' 같은 다수의 SNS 계정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해준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란다. '덕질'만 할 뿐인데도 그렇다. 그룹이 활동기에 들어가면 하루 반나절은 음악방송 사전 녹화로, 나머지 반나절은 방송사 직캠에서 유튜브 예능까지 김준익이 출연한 각종 영상을 체크하고 편집해 올리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팬픽이나 커플링 같은 팬들의 2차 창작물은 물론 일반적으로 특정인을 비난하기 위해 익명의 속성을 악용하는 속칭 '알계' 반응까지 전부 검색해 보는 (것으로 추측되는) SNS 중독 최애 덕분에 끙끙 속을 앓다가도 아르바이트 풀 타임을 뛰고 내 삶의 무게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날엔 '알아서 살아라 준익아' 읊조린다. 방송국 사전 녹화 대기 줄에서 하염없이 '쓰레기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까지, 실제로 체험해 본 창작자가 아니면 절대 담을 수 없는 현실의 단맛과 쓴맛이 장면마다 배어 나온다.
'가상아이돌 김준익'은 지금까지 케이팝 아이돌과 그를 사랑하며 추앙하고, 나아가 종종 증오까지 하게 되는 케이팝 팬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는다. 딱히 친절하지는 않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2023년 포스타입 오리지널 콘텐츠로 정식 연재를 시작하긴 했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수많은 각주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편 더없이 친절하다. '가상아이돌 김준익' 안에는 그동안 수없이 언급되었지만, 그만큼 한없이 타자화되던 케이팝 아이돌과 케이팝 팬덤에 대한 그 어떤 오해도 없다.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잣대로 흔히 드리우던 아이돌과 팬덤 문화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손가락질도 없다. 아직 정식 연재분으로 공개되지 않은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색채는 더욱 짙어진다. 케이팝을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덕질이 주는 비애와 다양한 삶에 대한 연민이 색다른 각도로 다가온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케이팝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정독해 볼 만한 진짜 '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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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