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의 여왕』으로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커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 이유의 신작 장편 소설 『당신들의 나라』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당신들의 나라』는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이 송환될 때까지 머무르는 '외국인 보호소'라는 공간, 그곳을 방문하는 화자 '나'의 이야기이다. 이방인들의 아픔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타자와 소통한다는 일의 가능성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작품이다.
『당신들의 나라』 출간 소회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실 독자분들께 인사를 건네주셔도 좋아요.
정말 오랜만에 책을 내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데요. 실은 매일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던 새벽도 무수히 많았지만요. 저의 목소리가 가닿는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실제 작가님이 외국인 보호소에 방문해 온 경험이 녹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방문하게 된 계기, 남아 있는 인상 등이 있을까요?
방문하게 된 계기는 소설 속 '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일산에 살 때 지인의 권유로 '아시아의 친구들'이라는 지역 인권 단체에 기부를 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사업 보고회를 하는데 그중 '마중' 사업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 몰두해있던 게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보호소가 있다는 걸 알고 그렇게 멀지는 않겠지, 한번 가 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방문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메일을 아시아의 친구들에 보냈고, 시간이 조금 걸려서 다음 방문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은 제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보호소'라는 단어의 어감에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상상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이 있구나, 하고 돌아설 수가 없었고 다음 방문은 너무 당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생각의 여지가 없었달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다였지만 그것만이라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 왜 나는 여기엘 올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무력감이 들기도 했고요. 누가 억지로 참여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가지 않아야할 다급한 일이 생기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일 년 가까이 가게 됐고, 대체 왜 나는 그곳엘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소설로 옮겨지게 됐습니다.
『당신들의 나라』에는 아홉 명의 주요 인물 이름을 딴 차례로 구성된 옴니버스 소설이에요. 장기 수용자인 '파란', 나이지리아에서 온 '아나스', 신과 운명을 믿는 '이쌈' 목사, 가족과 생이별을 앞두고 있는 '야신' 등등 여러 인물의 사연이 곡진하게 펼쳐집니다. 작가님에게 특히 마음에 남아 있는 인물이 있을까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느 인물 하나 특히 더 마음에 남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 모두의 얼굴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외국인 보호소에서 만났던 분들을 소설화했기 때문이기도 해서겠죠. 언젠가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었는데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차들의 흐름을 보면서 갑자기 이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난민 신청을 하고 그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에게 보호소의 시간은 세상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는 좁은 방안에서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기도 덕분에 이 도시는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조해진 작가님은 『당신들의 나라』의 추천의 말에서 "결코 인간적이지 않은 그 (외국인 보호소의―질문자)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그곳에 갇힌 외국인들을 단순한 수감자가 아니라 고통과 수치, 그리움과 사랑을 감각하는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인간으로 입체화"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소설을 쓰시면서 중점에 둔 것이 있을까요?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데, 이 소설 안에서는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문제거나 내 이웃의 상황이라면 용납되지 않는 이야기가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붙어버리면 바로 수긍이 되잖아요. 소설 속 인물들을 누구나 쉽게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외국인'이라는 편견에 갇히지 않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존재로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다보면 한 명 한 명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있는 인간을 보여줄 수 있는 옴니버스의 형식이 이 소설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에 데뷔하셨으니, 어느덧 작가 생활 8년 차이십니다. 기존에 펴내온 장편 소설 『소각의 여왕』, 소설집 『커트』, 그리고 이번 『당신들의 나라』를 생각해보시면, 그간의 소설 쓰기에서 변화해온 지점이 있으실까요? 혹은 여전히 같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한이 지나버린 숙제를 해치우듯 첫 장편과 단편집을 냈습니다. 첫 장편인 『소각의 여왕』은 유품 정리사인 여자 이야기인데, 이때 소설을 완성한 다음 실제 유품 정리사를 만났습니다.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이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가능하고 타당한가 확인을 부탁드렸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인물도 현실에 발을 디디지 못한다면 그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저의 목적과는 별개로 그분에게 듣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경험의 주체가 내는 목소리의 힘을 정통으로 맞은 거죠. 그때 직접 부딪혀보고 경험한 생생한 느낌을 글로 담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습니다. 진실한 목소리의 힘을 소설에 실어보고 싶었고, 그 열망이 이번 소설로도 이어지게 됐고요.
『당신들의 나라』에는 꽃말이 '승승장구'인 식물 '만세 선인장'이 인상적으로 등장해요. 왠지 작가님이 식물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했는데요. '소설 쓰기' 외에 평소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저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집안에 풀 한 포기 둔 적이 없습니다. 늘 "나는 식물을 키우는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오기도 했고요. 그러다 근처에 재래 시장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한 거예요. 5일장이 서면 시장 입구에서 화분들을 팔았는데, 그때 처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화분 하나를 사들고 왔습니다. 애먼 생명 하나를 죽이게 되겠구나, 절망하면서요. 해가 나는 쪽에 두기만 했는데, 이 작은 식물이 알아서 잎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하는 겁니다. 그때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살고 있었고, 삶의 의미도 모르겠다 싶을 때였는데, 알아서 성장하는 식물의 모습을 보면서 눈이 확 떠지더라고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식물을 거두는 게 아니고 식물이 나를 거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게 성장 욕구라고 주장한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인간은 성장을 원하고, 자신이 성장하고 나면 다른 무언가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요. 아이를 키울 환경이 안 되면 다른 생명체라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식물을 키우면서 그 말에 수긍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명체를 성장시키는 것 역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실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도 말이 되는 게 '키우다'라는 동사잖아요. 홀로 성장하는 생명체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 됐달까요.
『당신들의 나라』를 읽고 나니, 앞으로도 사람과 사회에 대해 작가님이 할말이 많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시다면 살짝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소설은 제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뚜렷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방식으로 또 한번 작업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나나' 장에서 화해하지 못한 엄마와 나나의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제 삶에서 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주제기도 하고요. 그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때가 온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소각의 여왕』으로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커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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