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화요일,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가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의학 상식을 소개합니다. |
대한민국의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다. 동시에 고령에서 호발하는 뇌졸중의 발생률은 점차 증가하는데, 반대로 뇌졸중의 사망률은 감소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는 늘어나는데 사망자가 줄어든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뇌졸중 후유 장애자의 증가를 불러오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걸린 뇌졸중, 이후 생활이라도 슬기롭게 영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즘이다.
필자는 1996년에 인턴을 시작하고, 2005년에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로 발령 받으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왔다. 외래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다가 교과서 지식과는 다른 많은 현상을 목격하곤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한 가지는 입원한 환자들의 예후가 의학적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이었다.
뇌졸중으로 처음 입원할 때는 환자의 임상 양상이 참 다채롭다. 20~30대의 젊은 환자도 있고, 너무 가벼운 증상이라 하루 만에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내원하자마자 바로 손쓸 수 없이 사망하는 환자들도 있다. 매우 심각한 수준의 뇌졸중이라고 생각했던 환자가 수개월 뒤 깜짝 놀랄 정도로 회복되기도 하지만, 그다지 심하지 않은 뇌졸중임에도 호전 없이 지속적으로 고생하는 환자들도 많다. 물론 환자에게 내재된 생물학적, 의학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그런 요인 외에도 환자의 성격이나 태도 등 정서적, 사회적 특징이 질병의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한다. 이에 필자는 이 글에서 뇌졸중 발생 후 좋은 회복을 보인 환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알려주고자 한다. 치료 효과 및 예후가 좋고, 본인의 만족감도 높았던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첫째, 평소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환자들이다.
일부 환자들은 뇌졸중 진단을 받고는 좌절감에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은 외래 클리닉에 잘 오지도 않고, 약물 복용도 게을러지며, 재활 운동에 대한 열정도 약해진다. 예후는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반대로 뇌졸중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는 표정에, 의욕이 넘치고, 질병에 굴하지 않겠다는 긍정적 열의를 가진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깍듯하고 의사의 지시와 처방에도 잘 따르며, 스스로를 위한 재활에도 열심이다. 수개월 후 외래를 방문하면 필자도 예상 밖의 호전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뇌졸중 치료 후 퇴원하면 이후 신경과 의사와 약물의 역할은 뇌졸중의 '재발'을 예방하는 것이지, 환자의 장애를 호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의 호전은 환자 뇌의 건강 수준과 재활 운동의 성과에 의해서 대부분 결정된다. 재활 운동이 중요한 만큼 환자의 긍정적 가치관은 환자의 호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잘 기억해두자.
둘째, 예민한 환자들 보다는 무던한 성격을 가진 환자들이다.
뇌졸중이 생긴 후 일상생활, 약물, 영양제 등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다 못해 극도로 예민해지는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재발에 대한 노이로제로 주변분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이다. 원래부터 예민한 성격인 분들이나 여성 분들이 많긴 하지만 남자 환자들도 드문 건 아니다. 가벼운 증상에도 놀라서 응급실을 찾아오거나 식단 및 영양제에 과민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평상시에도 긴장 상태이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 이들과 달리 복잡한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무던하게 혈압 측정, 약물 복용을 잘 해오는 환자들도 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환자들보다 음식이나 증상 등에 대해 덜 예민하고 지식도 부족하지만, 이들의 뇌졸중의 회복은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마치 뉴욕 월가의 펀드 매니저와 원숭이의 주식 수익 대결에서 원숭이가 이겼다는 전설 같은 얘기와 비슷한 맥락일까? 환자들도 안달한다고 몸이 낫는 것도 아닌데 주어진 상황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셋째, 자신을 돌봐주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깊은 환자들이다.
외래를 보면 의사를 믿지 않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과잉 진료 등 의사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진료임에도 큰 병원 이름 값에 무작정 병원을 옮기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 물론 여러 의사의 의견을 듣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가 가질 좋은 태도라고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넘어 본인의 선입견에 따라 의사를 항상 불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의사에 대한 불신으로 응급 치료의 적기를 놓친다거나 약물 복용을 잊는 등, 결국 환자 본인에게 필수적인 치료조차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은 발생 후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사를 순진하게 믿고 의지하는 환자들의 예후가, 이리저리 따지고 헤매는 환자들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넷째, 자신이 가진 위험 요인에 대해 잘 인식하고 똑똑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환자들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위험 요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혈압과 당화 혈색소 및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르는 환자들이 태반이다. 필자 외래에서는 환자들에게 오랫동안 이를 교육해서인지 그들 대부분 자신의 해당 수치를 기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물어보거나, 지난 수치도 기억하는 환자들도 많다. 뇌졸중은 상당 부분 혈관 동맥 경화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고, 동맥 경화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담배와 같은 위험 요인에 오래 노출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이들 위험 요인을 잘 조절하는 것이 뇌졸중 예방의 첩경이다. '의사가 어련히 잘 해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스스로 위험 요인을 잘 이해하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이게 지나쳐서 뭐든지 걱정하는 예민한 태도를 가지는 건 곤란하다. 위험 요인에 대한 의학적인 이해, 달성 가능한 목표 수립, 꼭 필요한 만큼의 건강 행동 등 이성적인 태도로 자신의 질병을 다루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필자는 긍정적 성격과 무던한 태도, 의사에 대한 신뢰 및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이성적 이해를 가진 환자들의 예후가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단순히 뇌졸중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고, 평생 관리가 필요한 다양한 질병에 모두 적용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다양한 질병들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여러분의 건강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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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자.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cap570420
2022.08.21
저부터가 그렇게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