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기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앎'을 상상해볼 수는 있으니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수는 없어도, 너의 경험이 얼마나 너를 아프게 할지는 상상해볼 수 있다.
글ㆍ사진 손미혜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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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지만, 35도씨를 넘는 무더위와 공중 습도 90%를 넘나드는 비가 번갈아 찾아오는 요즘 같은 날씨는 도무지 견디기가 어렵다. 언젠가 소셜 미디어에서 본 말처럼 하늘이 정말 우리를 하루는 찌고 하루는 구워서 숙성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치고 지겹고 짜증나는 나날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덜컥 겁이 나는 때가 있다.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옆 사람과의 대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세찬 폭우가 쏟아지는 순간이다. 내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상상의 기저에 무엇보다 저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오래전의 추석이었다. 여느 때의 명절과 같이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외가를 찾았던 날. 여느 때와 달랐던 건 그해가 바로 2003년이었다는 점이었고, 지금까지도 역대 최악의 태풍 중 하나로 기록된 매미가 한반도를, 우리를 강타했다는 점이었다. 그날 비가 언제부터 얼마나 내렸는지,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었는지는 이제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좀 더 구체적인 부분이다. '펑'하고 집 안의 전기가 나가던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린 언덕 흙이 집을 덮친 순간. 피신 온 이웃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차던 순간. 어둠 속에서 촛불을 찾고 라디오를 켜던 순간. 그리고 다음날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듣던 순간 같은 것들. 이제는 그날의 흔적조차 없이 마을은 정돈되었지만, 어떤 공포는 기억이 아닌 피부에 남는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얼마나 말할 수 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든 것은 장마가 기승을 부리기 전 숨 막히는 가뭄이 지속됐던 때였다. 거센 물살과 눈앞을 가리는 폭우는 내게 경험에 기반을 둔 실질적인 공포를 자아내지만, 며칠씩 단수가 지속돼, 씻고 목을 축일 물마저도 부족해 아껴 쓰는 공포는 아무래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왔던 내게는 결코 안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는 빗줄기의 무서움은 알아도, 쨍쨍한 하늘이 주는 공포와 무기력함은 모른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이 경험하는 아픔과 슬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도'란 무엇이고 애도하는 타인과 함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너의 슬픔을 나는 안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떻게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의 슬픔이 언젠가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언젠가 끝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떻게 함부로 예측할 수 있을까. 그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상하는 일이다. 타인이 겪었을 고통을 내 것인 양 상상해보며, 그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고 옆에 있어주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앎'을 상상해볼 수는 있으니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수는 없어도, 너의 경험이 얼마나 너를 아프게 할지는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나와 너의, 우리의 고통이 살아서 끝날 수 있으리라고 간절히 믿는다. 살아서, 살아서 더는 아프지 않은 세상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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