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사는 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중에도 모두 사실은 부지런히 무언가를 사고 있다. 하고 있다. 얼마의 힘을 들여 무엇을 살 지는 각자의 여건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테고, 그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겠다.
글ㆍ사진 박형욱(도서 PD)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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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고 여행을 사고 시간을 사고

신발을 샀다. 물건은 아직 못 받았는데 신이 난다. 받기 전까지의 기대와 흥분을 받은 후의 그것이 이기지 못하는 것도 같다. 물건을 손에 넣고 확인하고 사용할 때도 당연히 좋지만, 그동안 부풀었던 꿈이나 환상이 그 순간에 현실이 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소비의 기쁨은 대개 소유욕을 채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일 그 자체에서 오는 지도 모르겠다. 상품을 받아드는 순간보다 그것을 찾고 고르고 결제하는 과정이 더 즐겁다. 그럼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마음도 비슷한 맥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는 맛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다른 건 기꺼이 내어 드리리.

사는 일은 사는 일. 생각해보면 늘 우리는 무언가를 사고 있다. 돈을 써서 물건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을 소진하며 잠을 사고 쉼을 사고, 다시 그 휴식을 소모해서 체력을 사고, 체력을 들여 흥겨움을 사고 행복한 마음을 사고 마음을 들여 관계를 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중에도 모두 사실은 부지런히 무언가를 사고 있다. 하고 있다. 얼마의 힘을 들여 무엇을 살 지는 각자의 여건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테고, 그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겠다.



고통만이 성장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잠이 효과가 있었다. 부드럽고 차분한 기분이 들었고 감정도 살아났다. 좋은 일이다. 이제 이건 내 삶이다.

_오테사 모시페그, 『내 휴식과 이완의 해』 350쪽

내가 평생에 걸쳐 산 그것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월급은 통장을 스쳐 떠나갔지만 그 밖의 것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남아있다. 냉장고나 옷장, 책장에도 남았고 근육으로 체지방으로 상처로도 남았다. 여행이며 음악, 분위기와 맛 같은 것들은 대부분 기억에 남았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너무 불안정한 저장장치이기는 하다. 그래, 그래서 뭘 잘 버리지 못하나 보다. 지난 시간 사온, 살아온 것들의 증명이라서(라고 해도 역시 정리하지 못하는 인간의 변명이겠지).

그렇게 남은 것들을 꼽아보면 회의와 걱정이 밀려들기도 한다. 이대로 괜찮은가. 세상 쓸모 없는 일에 그나마 내가 가진 것을 다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 고민 없이 돈을 막 쓰고 있나. 이렇게 매일 시간을 죽이고 있어도 되는 걸까. 또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돈이 있으면 돈으로 시간과 힘을 사고, 돈이 없으면 시간과 힘으로 돈을 사는가 싶어서.

그래도 그 와중에도 괜찮네 싶은 날들이 있고, 돈을 쓰든 시간과 힘을 쓰든 아마 그 둘 사이에서 적당한 위치를 잡아가는 것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는 방법일 거다. 그러니까 사는 일은 생각만큼 엉망은 아닐지도, 어떤 틀에 맞추려 끙끙 애쓰지 않아도 될지도. 그러니까 사는 건 이유를 댈 필요 없는 우리의 일. 인생 동료 여러분 소비 동료 여러분 마음껏 삽시다.

개인적으로는 쓸 체력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일단 열심히 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다. 역시 답을 정해둔 문제다). 그리고 쉼의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의 시간을 먼저 한참 거쳐야 하겠지. 자 이제, 버는 일과 쓰는 일의 끊임없는 연쇄, 그 삶의 궤도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기 위해 일꾼은 다시 시간과 힘을 들여 돈을 사러 간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저 | 민은영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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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