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마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아직도 고민’ 상담 칼럼을 연재합니다. 독자 분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고민에 따뜻한 처방을 드립니다. 익명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간단한 소개(연령 등)와 함께 고민을 보내 주세요. eumji01@yes24.com |
독자에게 온 사연
서른을 앞두고 있는 여자입니다. 몇 달 전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어요. 이별의 이유가 단순 성격 차이 때문이라 말하고 싶지만 남자친구는 문제가 저에게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의존적이라 남자친구를 원하는건지 아님 아빠같은 보호자를 원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서로 사랑을 주는 게 아닌 나 혼자만 받는 사랑을 원할 것 같다고요. 전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아팠어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가장 친한 친구도 가장 아끼던 대학시절 동생도 그리고 이전 남자친구와의 이별 이유도 제가 너무 의존해서 힘들다고 했거든요. 전 너무 좋아서 더 관심 받고 싶고 저만 봐주고 저만 생각해줬으면 해서 그러는 건데요.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도 저를 더 많이 사랑해줬음 하는 건데요.. 자꾸 제주변인들은 떠나가는 거 같아요. 사실 제 문제라는 건 아는데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의존적인 사람이 된 건지, 어디까지가 적당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전
지금은 이별의 상처에서 회복되셨을까요? 힘든 기간이었겠죠. 끝난 연애를 돌아볼 때 아쉬운 부분이 있겠지만, 분명 얻어낸 것이 있습니다. 매우 큰 걸 얻으셨죠. 진정한 변화는 스스로 알아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인데, 주신 글을 보면 독자님 자신의 대인관계 패턴에 대해 확실한 깨달음을 얻으셨거든요. 연인과의 이별 순간에 내 문제점을 지적 받는 상황은 여간한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텐데, 그 속에서 자아성찰을 할 수 있었던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저 상대방을 탓하며 지나가거든요.
대인관계에는 ‘패턴’이란 것이 숨어있습니다. 얼마나 알아채고 있는가의 차이일 뿐, 모두에게 이 패턴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니죠. 알아채고 더 들여다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게 됩니다. 저의 과거 연애들, 지금과 과거 초등학생 때의 기억까지 거슬러올라가며 떠오르는 친구 관계들. 그 속에는 분명 반복되는 몇 가지의 패턴이 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되어 내 마음을 더 들여다본 지금엔 알지만, 그땐 몰랐죠. 가끔 어렴풋이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했을 뿐. 그래서 같은 실수와 같은 상처가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누구나 그래요.
독자님에게 의존적 대인관계 패턴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단순히 이번 연애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반복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독자님에게 의존성 인격 성향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어디까지가 적당한 의존일지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지금의 의존성은 지나친 게 확실합니다. 자꾸만 사람들을 떠나가게 만드니까요.
나에 비해 상대방의 사랑이 부족해서 떠나는 것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만 봐주고 나만 생각해 주기를 바라며 의존하는 마음. 그건 분명 연인보다는 보호자에게 느낄 마음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가지는 마음이죠.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라고 해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한 법인데, 자신만 바라보며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상대방들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독자님에게 애정과 매력을 느낀다고 해도 계속해서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부모가 아이만을 바라보며 온전한 보살핌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죠. 그게 아이니까요. 능력이 있는 성인이 보살피는 역할을 담당해야죠. 그리고 보살핌 속에 성장한 아이가 결국에는 점차 독립해 나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기약이 없다면 어떤 누구도 보호자의 역할을 선뜻 맡지 않을 겁니다. 이 특수한 조건들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보호자와 의존자의 대인관계가 성인 간에 형성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간혹 존재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관계입니다.
이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의존성 성격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적으로는 아주 어린 생애 초기에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그 답을 찾기도 합니다. 먹여주고 안아 주길 바라는 아이의 기본적 욕구 충족이 지연되었거나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생겨난 결핍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의존 대상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와 반대로 지나치게 욕구 충족을 받아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계속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해 성장과정에서 독립성을 획득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의존성 성격으로 굳어지는 경우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그 외에 소아기에 만성적 신체장애를 겪어 타인들에게 의존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후일 의존성 인격을 띄게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의존성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혼자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고 타인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다고 느끼기에 삶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타인이 내리게끔 수동적으로 행동합니다. 연애에서도 시작과 끝의 순간을 나보다 타인이 결정하게 합니다. 돌봄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별을 두려워하고, 나보다는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며 매달리고 복종하는 형태의 대인관계가 연애와 친구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또한 헤어지고 난 후엔 혼자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해 금세 또 다른 의존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되기도 하죠.
이러한 성격, 성격으로부터 비롯되는 대인관계 패턴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아닌 한 성인으로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내 삶을 살 수가 있죠. 글의 서두에 알아차림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료실에서 동일한 말씀을 하세요. 알아차렸는데 변화가 없다고, 어찌해야 하냐고 말이죠. 신의 한 수가 있기를 바라시지만, 답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합니다. 내 패턴을 알아차렸다면, 이젠 의도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경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더라도 우직하게 반복해서 말이죠. 독자님의 경우엔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도 만나지 말고 완전히 혼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에요. 내가 매번 기대해왔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 한 사람’이 없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일부러, 의도적으로요. 물론 잘 안될 겁니다. 뭔가 불안하고, 누군가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래서 결국엔 이전의 패턴이 반복되도록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거예요. 그게 무의식의 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날 과거 패턴으로 끌고 가려는 힘에 견디며 저항하실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이젠 아이가 아니라 서른을 바라보는 어른이니까요. 어린 시절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내가 알아채고 영향 미칠 수 있는 부분들은 거의 없었지만, 이젠 내가 정하고 변할 수 있어요. 일단 의존하는 대상이 없는 환경을 만들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나를 보게 될 수 있어요. 매우 자연스러운 변화가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성장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의지, 살아낼 힘은 독자님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동안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죠. 나 자신을 더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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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책 <어쩌다 정신과의사>를 썼고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