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인구 절벽 문제에 부딪힌 대한민국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은 영웅이 아닌 ‘약자’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와중에도 엄마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약자인 사회에 미래는 없다.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 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했던 임신, 출산, 육아의 불편한 진실을 엄마의 입장에서 고발하는 폭탄 같은 책이다.
전작 『예쁘게 울긴 글렀다』 이후 2년 만에 ‘매운맛’ 작품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와 출간 후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2년 전, 첫 책의 추천사를 써 준 이숙명 선배와 만났을 때였어요. 그날 제가 방언이라도 터진 것처럼 출산 후 느낀 부당함, 불편함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거든요. 선배가 다 듣더니 툭 던지듯 말하더라고요. “그걸 글로 쓰지 그러니?” 아마 선배는 사석에서 그렇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자칫 투덜거림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 생각한 것 같아요.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를 직접 겪으면서 알게 된 불편한 현실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쓰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줬어요. 예시로 들어준 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이었고요. 사실 선배와 이야기 나눈 후 1년 정도는 망설였어요.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아이를 원해서 난임 시술로 임신했으면서, 내게 과연 고발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했죠. 그런데 작년 여름, 도저히 쓰지 않고는 못 버티겠더라고요. 남편과 날 서게 다툰 어느 밤, 분노 가득한 상태로 키보드를 두들겨 A4 4장짜리 기획안을 썼고, 다음날 와이즈맵 출판사 대표님께 보여드렸어요. 『예쁘게 울긴 글렀다』 이후 두 번째 책이지만, 첫 책을 내는 기분이에요.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기분이 마치, 제왕절개 수술을 기다리는 심경과 비슷합니다.
본격 ‘쌍둥이 임신, 출산, 육아 블랙코미디’라는 타이틀답게 작가님의 눈부신 개그력과 시니컬한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덕분에 울고 웃고 분노하며 읽었습니다. 그런 센스는 타고나신 건가요?
솔직히 유머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친구들에게 “애이불비 하자!”란 말을 자주 해요. 슬프지만 지나치게 비통에 빠지지 말자. 가능하다면 눈 감는 순간까지 웃기고 싶어요. 저를 보러 온 오랜 친구에게 “그나저나 너 오늘 머리 스타일이 그게 뭐니, 나 본다고 대충 하고 온 거야? 네 옷 때문에 웃겨서 죽겠다!” 하는 식으로요. 전 제 글을 읽는 사람이 같이 화내고 울다가도 결국엔 웃었으면 좋겠어요. 부당함에 어퍼컷을 날릴 수 있는 힘을, 웃음으로 주고 싶어요.
브런치에서 연재를 하실 당시 ‘상위 20% 남편과 사는 것’에 대한 글을 써 장안의 화제가 되셨었지요. 글에 공감하는 사람과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이 나뉘어 한바탕 ‘소요’가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은데요.
조회수가 40만에 가까우니(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39만8892네요!) 장안의 화제라면 화제였던 거겠죠? 사실 당시엔 많이 놀랐어요. 쓰기 전부터 누군가 불편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글을 올린 뒤에도 반응을 살핀 에피소드도 있지만, ‘상위 20% 남편과 산다는 것’은 그런 글이 아니었거든요. SNS에 공유가 여러 차례 되면서 유입자가 무섭게 늘어나더니 제 글을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반응들이 나타났죠. 남편 분이 억울하겠다, 정도의 반응도 있었지만, 여자들이 모여서 남편 욕하는 거 추하다, 남녀평등 말하고 싶으면 군대나 가란 반응도 있었죠. 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글은 ‘자칭 상위 20%’ 남편에 대한 험담이 아니라 제 남편을 치켜세우는 가까운 사람들(오래된 친구들과 본가 가족 등)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담은 것이었으니까요. 전엔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너무 안(못) 듣는다 생각했는데, 이 일을 겪고 여성의 목소리를 너무 낯설어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은 대부분 사회의 주류가 아니니까, 여성의 목소리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닐까 하고요.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그 며칠 심란해하다가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위로 받고 다시 힘을 냈어요. 남편, 친정 오빠, 그리고 친구 J 덕분이죠.
책에는 작가님이 임신, 출산, 육아를 겪으며 느낀 차별과 부당함이 아주 리얼하게 쓰여 있습니다. 남편분과 시댁에 대한 유감도 가감 없이 드러내주셨지요.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출간 후 남편 분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도 궁금합니다.
다행히 남편은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저를 응원해주고 있어요. 오늘 아침엔 친한 고향 친구(이자 기혼 유자녀 남성) 세 명의 집으로 제 책을 보냈고요. 남편은 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한국 남편들은 불편할 얘기가 많으니 넌 읽지 말고 아내에게 선물해”라고 하더군요. 조금 못마땅하게 듣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나 기저귀도 가는 남편이야!”
작가님은 82년생, 게다가 김씨이시죠. 책에서 『82년생 김지영』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하셨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본 김지영은 조금 특별한 캐릭터일 것 같은데요.
출산 전에는 책을 몇 장 읽다 덮어버렸어요. 무서웠죠. ‘왜 이래, 나 지금 결혼해서 행복한데? 시댁도 얼마나 좋다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난 후 용기를 내 읽은 책 안에는 제가 마주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할 진짜 현실들이 있었어요. X세대의 꼬리로 성장해 ‘난 달라, 다르게 살면 되는 거 아냐?’라고 해봐도 82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김씨 여성에겐 한계가 많았죠. 아이 키우는 게 힘들 거란 생각은 다들 하지만, 제가 얼마나 일을 다시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어릴 때 김영란 전 대법관 같은 사람이 되라며 “공부!” 또 “공부!” 하던 저의 친정 고모는 이제 저한테 셋째를 낳으라고 합니다. “애가 둘이나 셋이나”라고 하면서요. 여성 대법관은 물건너갔으니 후세들이 지폐를 볼 때마다 떠올릴 현모양처의 아이콘이 되길 바라시는 걸까요? 어쨌거나 친정조차 저의 경력단절 같은 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82년생 김지영으로서 다른 김지영들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공감하고 연대하는 거니까요.
『페미니즘의 도전』을 쓰신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엄마의 시민권은 박탈하면서 저출생만 고민하는 이상한 나라다”라고 써주셨지요. 작가님께서 이 책의 제목을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지으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합니다. 제목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브런치에 연재한 제목은 ‘마더 퍼커: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였습니다. 엄마의 노동력은 후려치고 희생은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직접 겪으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여성 혐오적인 욕이라고 불편해하실 수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을 수면 위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신이 모든 곳에 갈 수 없어서 만든 게 엄마라면서, 왜 신의 대리인 생활은 이렇게나 척박한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마더 퍼커’는 해외 축구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도발할 때나 사용하는 패륜적인 욕이 아닙니다. 해외에선 감탄사에 가까운 욕이죠. 우리에게도 비슷한 욕이 있고요. 엄마의 당연한 의무에 앞서, 엄마의 당연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전하는 응원과 위로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자고요. 단언컨대, 세상에 울고 욕하는 엄마가 당신 하나는 아닙니다.
*김가혜 1982년생. 상수동 주민. <나일론>, <보그 걸>, <코스모폴리탄>에서 피처 에디터로 10년간 일했고, 퇴사 후엔 팟캐스트와 라디오에서 연애 상담을 했다. 10년간 연애한 남자와 결혼해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산부인과학회가 노산으로 규정한 만 35세에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엄마가 된 후 나 자신의 한계와 사회 전반의 모순에 나자빠지는 날이 많지만,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순간은 여자들의 우정을 확인할 때.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힘을 보태는 주변의 자매, 형제들을 보며 많이 배운다. 눈물을 주제로 한 에세이 《예쁘게 울긴 글렀다》를 쓰며 산후 우울증을 극복한 바 있다. 태명이 ‘희희’, ‘낙낙’인 두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한 가지. 공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성과 엄마 앞에 놓인 문턱에 지지 않으려고 계속 쓴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steal0321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