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어떻게 만나는데?"
"그건 잘 모르는데.''
"아빠가 엄마한테 고추를 넣는 거야"
처음 섹스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미술 학원에서 친구가 알려주었다. 뭐, 뭐를 넣어? 말도 안 된다고 소리쳤지만 동시에 '말이 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성교육 책을 통해 정자와 난자가 만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만나는지'가 비어있었다. 그냥 어떻게 만나겠지 하고 넘겼었는데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당장 미술학원 선생님에게 아빠가 엄마 몸에 고추를 넣느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사색이 되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그 반응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넣는구나. 성교육 책에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던 음각과 양각을 표현한 그림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몇 달 전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 때문에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이 책은 '나다움 어린이 책'으로 선정되어 몇몇 초등학교에 보급되었다가 선정성 등을 이유로 회수되었다. 그 사건 덕분에 나도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해 보았다. 솔직히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충격적인 책이었다. 아빠가 엄마 질에 고추를 넣고 흔든다는 표현이나 질에서 아기가 영차영차 나오는 그림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충격이라기보다는 마흔이 넘은 나이라서 충격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는 이런 책이 없었으니까. 내가 읽은 성교육 책에서는 성교 장면에서 폭죽이 팡팡 터졌다. 그런 은유를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면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 책을 일찍 만났더라면 적어도 미술학원 선생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엄마와 복숭아』는 여행 중 들른 동네 책방에서 만난 책이다. 평소 예쁜 책을 많이 만드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내용도 모른 채 구입해 보았다. 옛이야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가 모티브가 된 이야기로 주인공 여자가 길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잡아먹힐 뻔한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가는 내용이다. 원래 이야기와 다른 점은 사람도 동물도 모두 임신한 암컷이라는 점이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 만큼 배가 고프고 임신을 했기 때문에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어 상황을 모면한다. 결국 그들은 몹시 배가 고프고 예민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아 함께 걷는다. 그리고 마침내 푸른 나무가 가득한 오래된 숲에 도착해 같이 아이를 낳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아름다운 그림이 어우러져 더 돋보이는 따듯한 이야기이다.
내가 아이라면 엄마가 읽어주는 『엄마와 복숭아』를 여러 번 듣고 싶을 것 같다. "엄마는 너를 지키기 위해 큰 힘을 내야 했어. 두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너를 본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고 결국 우리는 만나게 되었단다."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나를 만나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고 그럼에도 나를 만나 행복했다는 엄마의 고백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런데 생물학적으로는 정확히 어떻게 태어난 거야?"라고 물었을 때는 (혹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즈음에는) 두루뭉술하게 아름다운 대답이 아닌 질문에 걸맞은 정확한 대답을 듣고 싶을 것 같다. 나중에 크면 알게 된다는 대답이나 폭죽이 터지는 책을 선물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럴 때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해질 것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읽어줄 자신이 없다면 책만 건네 주어도 어물쩍 넘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아무 말 없이 책만 건네면 이 주제로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간단하게라도 설명을 해주면 더 좋겠다.
"아빠가 엄마의 질에 고추를 넣고 흔들었거든. 그때 아빠의 정자가 엄마 자궁으로 들어가서 엄마의 난자를 만났단다. 그렇게 임신이 되었고 엄마는 열 달 동안 너를 뱃속에 품고 소중하게 지켰어. 힘들기도 했지만 너를 만난다는 기대가 더 컸어. 그렇게 우리는 만났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 보렴. 사랑해."
고추를 넣고 흔든다는 말은 빼는 게 좋을까? 역시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래도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를 질문에 대비해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면 그 순간이 왔을 때 한결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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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