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부조리를 미담으로 덮으려는 사회가 문제적이란 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해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해서다. 설령 이를 통해 부당하게 가진 자들이 회개하거나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호주머니를 열거나 서울역 노숙인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닐지라도 찰나의 선의는 그 자체로 귀하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제주대 이소영 교수님의 첫 산문집 『별것 아닌 선의』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냉소보다는 차라리 위선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이소영 교수님은 책 『별것 아닌 선의』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찰나의 선의들을 빼곡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섬세한 시선이 우리 삶의 어떤 가능성들을 열어주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이소영 교수님을 모시고 이 작지만 커다란,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세상의 선의들을 발견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이소영 편>
오은: 책 출간 이후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기셨어요. ‘한편으로 죄송했다. 그러다 엉뚱하고 사소한 사안에 대해선 또 황소고집 피우고 그랬으니.’라고요. 황소 고집을 피울 것 같지 않은 분이 어떤 모습을 피웠을까 궁금했습니다.
이소영: 일화가 딱 떠오르는 건 아닌데요. 정말 사소한 부분이었어요. 저는 처음 해보지만 원고 작업을 하면 보통 저자와 편집자 선생님이 탁구공 주고 받듯 서로 원고를 주고 받으면서 코멘트 나누잖아요. 그런데 저는 편집자 선생님의 코멘트를 보면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너무 좋다”라고만 했는데요. 그러니까 공이 튕겨가지 않잖아요. 혼자만 다 받고요. 그러다가도 아주 사소한, 어떤 특정한 글자 하나 특정한 뉘앙스 하나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너무 강조하기도 했어요. 생각해보니 편집자 선생님이 힘드셨겠다,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쓴 글이었어요.
오은: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 나누기에 앞서 먼저 이소영 교수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어릴 때부터, 위인전기나 역사동화에서 ‘창을 스치면 단숨에 모두 쓰러졌다’, ‘한 획에 열 명의 목이 날아갔다’ 같은 문장을 읽으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고,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으면서도 과연 목덜미가 하얀 서울 소녀가 아니었어도 소년은 소녀를 업어서 갔을까 의문스러워하던 남다른 내면의 소유자였다. "넌 좀 사람을 질리게 하는 데가 있어"라는 친구의 말에 가시처럼 가슴이 찔리며, 관계에 무척 예민한 10대를 보냈고, 대학 시절에는 내내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형도의 시를 비롯한 문학을 사랑한, 고시공부는 엄두도 안 냈던 법학도였다.
석사 학위 주제는 법문학, 박사 학위 주제는 포스트모던 법 이론이었다. 주된 연구관심은 법의 사회사. 특히 기억의 규제가 금지와 억압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기억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규제를 통한 기억하기’ 차원에 관심이 많다. 논쟁보다는 혼자 읽고 쓰는 것을, 노래방보다는 성당 가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단체모임보다 한두 사람과 함께일 때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 이소영. 로맨스물은 좀처럼 즐기지 못한다. 속상한 날은 어김없이 체한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 넘어지는 스타일. 세상 어디보다 설레는 공간은 우체국이다. 매해 기도하는 이소영의 소망은 언제나 두 가지. 첫째는 '세상 안에서 좋은 쓸모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역사 동화에서 위인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 그를 영웅화시키는 구절들에 반감을 느끼셨던 모양이에요.
이소영: 특히 『삼국지』를 보면서 그랬어요. 사실 저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삼국지』만은 읽히질 않았어요. 조자룡, 장비 이런 사람들이 칼을 휘두르면 백 명의 목이 싹 날아가고, 칼이 번쩍 하면 모두 다 죽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목이 날아간 100명도 집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싶었어요. 장비 같은 사람이 죽을 때는 별이 떨어지고 막 그러잖아요. 그런데 왜 백 명 중 한 명은 그냥 백 명 중 한 명으로 죽어야 하는가가 의문이었죠. 그게 마음에 걸려서 선생님한테 얘기를 했더니 “네가 속이 좁아서 그렇다.” 하더라고요.
오은: 규제를 통한 기억하기 차원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히 들려주세요.
이소영: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법을 통한 과거 청산이에요. 가해자 처벌, 피해자 배상, 그리고 후속 세대의 기념하기죠.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역사 부정을 규제하는 법제인데요. 사실 저는 역사 부정 규제 법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홀로코스트 부정자들, 한국의 4.3이나 5.18 부정자들이 있죠. 역사 왜곡도 그렇고요. 그들의 악의가 너무 큰 건 맞는데요. 그 악의를 법으로 규제하면 이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피해자라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가 있어요. 그 밖에도 여러 법을 통해 규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가지고 최근 몇 년간은 연구를 해왔어요.
오은: 첫 단독 저서예요. 먼저 어떤 책인지, 이 책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별것 아닌 선의』에 대해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이소영: 사실 저는 한 번도 이런 글쓰기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17년 가을에 <경향신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요. 당시 ‘금지를 금지하라’라는 학술 연재를 몇몇 선생님들과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거기 실린 제 글을 보고 칼럼을 제안하셨던 거예요. 처음에는 “저는 숲이 아니라 나무에만 시선이 가 있어서 시사적인 글쓰기가 어렵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냥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라는 거예요. 제가 쓰고 싶은 얘기가 뭘까 하고 일주일 동안 고민했어요. 그러다 결국 작은 이야기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순간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생각으로 쓴 글들이 모여 나온 책이 『별것 아닌 선의』입니다.
오은: 책을 보면서 이소영 교수님은 쓸 수 있는 만큼만 쓰기,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기의 태도가 몸에 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때는 좀 잘난 체를 하고 싶기도 하고, 어디서 들은 것이나 공부한 게 있으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데요. 교수님은 딱 그만큼만, 마치 유리잔에 물이 3분의 2만 딱 차는 안정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게 어쩌면 이소영 교수님이 글을 쓸 때 갖고 있던 원칙이기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소영: 글을 쓰다 보면 “이래야 한다”고 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저는 독자들에게 이러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제 전공 영역에 대해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경험을 했고, 어떤 영화를 보고 이걸 느꼈다는 정도의 얘기를 하면 독자가 자신의 비슷한 경험들을 내면에서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거기까지 했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닌가 싶어서요. 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나올 것 같으면 잠깐 멈춰서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쓰려고 했어요.
오은: 제목이 『별것 아닌 선의』잖아요. ‘별것 아닌 선의’의 정의를 직접 내려보신다면 어떤 뜻으로 내릴 수 있을까요?
이소영: 책을 내면서 분명히 이 질문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의를 못 내리겠더라고요. 이게 선의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런 책도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이 책에서 다루려고 했던 것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제가 발견한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보고 독자들이 각자 정의하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오은: 법학 전공을 하시면서도 문학 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셨다고 했잖아요. 그게 자신도 모르게 이런 글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이소영: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쓰는 에피소드가 정말 사소한 것들이잖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느냐고 하는데요. 사실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마 그렇게 기억을 하는 것은 대부분 그 일을 경험한 이후에 본 어떤 영화나 소설 속의 무엇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오은: 책을 내면서 ‘독자들이 이렇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도 같거든요.
이소영: 내가 왜 쓰는가, 내 얘기가 누구를 수신자로 하는가를 생각하고 쓰게 되죠. 그런데 저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지향만 있었고 누구를 수신자로, 어떤 얘기를 할지는 명확하게 그리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생각이 뚜렷해진 게 책 표지 그림을 선정하면서였는데요. 보면 한 사람이 깜깜한 저편에서 걸어올 누군가를 위해 등불을 켜고 들고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을 이 작품의 작가는 액자 안에다가 넣어두고요. 액자 바깥에는 그야말로 무용한, 그러니까 별것 아닌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놓아두었어요. 마찬가지로 이 책이 어떤 생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 누군가를 수신자로 하겠지만 그에게 직접 등불을 건네주는 책은 아닌 것 같았고요. 제가 사는 일상이나 하는 일들, 제가 좋아하는 어떤 작품 속에 나오는 장면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독자의 기억 안에서 어떤 순간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은: 최근에 경험한 별것 아닌 선의의 순간이 있을까요?
이소영: 지난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폭설이 내릴 때였는데요. 저희 학교가 중산간 지대에 있어서 눈이 많이 내리면 체인을 감지 않은 일반 차량은 학교로 못 올라가요. 그래서 이른 시간에 교내 도로 상태를 알리는 문자가 오거든요. 아마 총무과 같은 데서 보내시겠죠. 그런 공지 문자 같은 경우 보통 기본 문구를 복사해서 붙이는 방식으로 발송될 텐데요. 보니까 문자 내용이 매번 조금씩 다른 거예요. ‘폭설이 내려’, ‘많은 눈이 내려, ‘계속 눈이 내려’, ‘엄청 눈이 내려’ 이런 식으로요.(웃음)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의 「뉴욕제과점」이라는 소설에서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는데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겠냐”라고 쓰고는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브이자를 넣고 ‘느’를 넣어서 화자가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아니겠냐고 쓴 뒤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중간에 ‘느’를 삽입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한다고 말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저도 작은 문자 하나에도 그런 변주를 주는 것을 보면서 설레기도 했고요. 어쩌면 그러한 세심한 마음 같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기도 하는구나 느끼기도 했어요.
오은: 에필로그를 봤더니 고 이환희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가 되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쓰신 건가요.
이소영: 이환희 편집자님이 처음 메일을 보내셨던 게 저의 첫 연재가 올라갔을 때였어요. 첨예한 사회적인 현안이 날카롭게 전시되는 글이 가득 찬 신문에서 제 글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지 궁금했다면서 같이 책 작업을 해보자고 말씀하셨죠. 그게 3년 반 전이에요. 아무래도 학술서가 아닌 책을 낸다는 게 겁이 나기도 하고, 중간에 집필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또 닥치는 일이 있으면 먼저 하면서 책이 계속 미뤄졌고요. 그러다 처음으로 지금의 집필 방향이 확정되고 제 원고 꾸러미를 보내 드렸을 무렵에 이환희 선생님이 뇌종양으로 입원을 하시게 되었던 거예요. 저에게 글쓰기가 허락되는 시간 동안은 저의 첫 글 하나를 보고 의미를 발견해 주신 이환희 선생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항상 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에필로그를 썼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영: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라는 책인데요. 영업할 책으로는 부족할 것 같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라 가지고 와봤습니다. 보면 말 그대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예요. 그런데 읽다 보면 책 텍스트를 문처럼 열고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주인공, 그 젊은 사제의 영혼을 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에요.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