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팩트체크 주간 공동기획] 다시 신문과 방송이 디지털 플랫폼에 사회적 책임을 물을 때
이 책의 장점은 최근까지 나온 가짜뉴스 관련 책 중에서 일반 독자가 읽기 쉽게 쓰였으면서도 다루는 범위가 넓고 입체적이라는 사실이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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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는 ‘제 1회 팩트체크 주간’(http://www.factcheckweek.com )과 공동기획으로 우리에게 건강한 미디어 사용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5권의 책을 선정하여 작가 인터뷰 및 추천 도서에 대한 리뷰를 진행합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진행하는 ‘제 1회 팩트체크 주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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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MD로서 지켜본 바로, 최근 2~3년간 주목할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가짜뉴스’를 다룬 책이 여럿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뉴스’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책 대부분이 2019~2021년에 발간되었다. 이는 최근 가짜뉴스가 우리 사회에 큰 골칫덩이로 부상했다는 증거이자, 가짜뉴스를 향한 경각심이 늘었다는 방증일 테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는 최근에 생겨난 특수한 현상일까? 검증되지 않은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 매체에서 생산해낸 뉴스가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유튜브 등 익명성에 기대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는 현재 매체 상황이 낳은 괴물일까? 

필자가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이 있었다. 자기 전에 꼭 선풍기를 꺼야 한다고 말이다. 선풍기 바람을 오래 쐬면 죽을 수 있다는, 이른바 선풍기 괴담이다. 선풍기 괴담의 기원은 일제시대로까지 올라가는데, 그만큼 선풍기 괴담의 생명력은 질겼다. 선풍기 사망설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영락없이 가짜뉴스였다. 

선풍기 괴담이야 사람들이 여름을 나는 데 불편하게 만들고, 전기 사용량을 줄였다는 결과로 끝났지만 과거를 보면 가짜뉴스로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중세 마녀사냥이라든지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대표적인 예다. 이밖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층 사이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때 유언비어가 흘러넘쳤다. 

가짜뉴스의 유구한 역사는 현재에도 이어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철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가짜뉴스가 이용된다. 최근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가짜뉴스만 해도 백신 무용론, 원전, 세월호와 5.18 등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가짜뉴스의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져서 보도 내용에 일부는 사실을 슬쩍 끼워 넣는 식이라 문해력이 낮은 독자는 속을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의 고고학』은 이러한 동서고금의 가짜뉴스를 다뤘다. 부제가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이다. 부제가 암시하듯, 가짜뉴스는 로마 제국 시절에도 존재했다. 부제만 보면 이 책이 수천 년에 걸친 인류사에서 유명했던 가짜뉴스를 추린 것처럼 읽힌다. 그런데 이 책은 전근대사에 유행한 가짜뉴스도 다루지만 주로 근현대 미디어 생태계에 집중한다. 조직적 프로파간다, 정파적 보도, 트래픽 높이기 위한 클릭 미끼, 마이크로 타겟팅 정치광고, 딥 페이크 등 가짜뉴스의 범위를 넓게 잡고 다양한 나라에서 벌어진 사례를 분석했다. 이 책의 장점은 최근까지 나온 가짜뉴스 관련 책 중에서 일반 독자가 읽기 쉽게 쓰였으면서도 다루는 범위가 넓고 입체적이라는 사실이다. 

제목에 적힌 ‘고고학’이라는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고고학에서 연상되는 선사 시대의 유물과 고대 문자를 연상시켜서는 안 된다. 최은창 저자가 의도한 ‘고고학’이라는 표현은 푸코적 용법으로, 이 책에 따르면 “가짜뉴스의 일반적 역사를 간추려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사건들이 일어나던 시기와 맥락 속으로 들어가서 허위정보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조건과 메커니즘을 재구성하는 서술”(19~20쪽)이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시대는 근대이다. 출판인쇄 기술의 발달로 신문사가 우후죽순 생기던 시절이다.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는 종이 신문이 영세한 인터넷 언론사보다 조금 더 게이트키핑 능력에서나 취재력에서 믿을 만한 매체이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지만, 1890년대 근대 신문업계는 그렇지 않았다. 종이 신문을 향한 전반적인 불신이 높았다. 영세한 신문사들은 신문 판매에 의존했고 이들 신문사는 대중들에게 팔릴 만한 신문을 만들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신문이 보도하는 뉴스는 질이 낮았다.


진실이 별다른 재미를 주지 못한다는 점은 그떄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센트짜리 신문을 읽던 독자들은 엄밀한 수학 공식이나 건조한 논문 같은 글을 원하지는 않았다. 괴담이나 날조된 이야기는 미디어가 유지해야 하는 신뢰와 충돌하지만, 페이페이퍼는 저널리즘의 사명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재미없는 진실만으로 신문 지면을 채우다가 도산을 택하려는 편집자는 찾기 어려웠다. (83쪽)


19세기와 21세기의 언론 생태계는 닮았다. 다만 19세기에 행인들에게 동전을 받고 신문을 팔던 뉴스보이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21세기 언론사의 수익은 클릭에서 발생하고, 클릭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와 사진을 송출한다. 스포츠와 연예란에 올라오는 수많은 가십성 기사는 저널리즘의 사명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보다 선정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클릭을 위해서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성 기사도 서슴지 않고 내보낸다. 수없이 많은 매체가 생겼고, 이들 매체가 쏟아내는 기사 수가 엄청나다. 이를 모두 걸러낼 만한 비용도, 인력도 없는 현실이다. 

『가짜뉴스의 고고학』 저자 최은창은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는 저널리즘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탈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실제로는 언론사 역시 가짜뉴스 현상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본다.


많은 언론사는 가짜뉴스를 미디어 생태계의 잡음을 일으키고 저널리즘의 위기를 가져오는 불청객으로 여기고 있다. 마치 평온하고 질서 잡힌 저널리즘의 세계에 비공식적으로 생산되는 가짜뉴스가 들어와 혼란이 초래되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가짜뉴스 현상을 초래한 것은 언론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허위정보와 가짜뉴스의 범람은 미디어 생태계의 오염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수많은 행위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정보 생태계 현상으로 보는 접근이 적절하다. (158쪽)


언론사와 함께 포털 사이트 등의 플랫폼은 가짜뉴스를 차단하는 데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특히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포털에서 이뤄지는 한국적 상황에서 포털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가짜뉴스가 주로 포털 댓글창을 통해 유포되는 상황에서 포털의 댓글 정책은 가짜뉴스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혐오와 불안을 부추기는 유언비어와 특정 정파를 공격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여전히 포털 뉴스 댓글을 도배하고 있는 현실을 보건대, 현재의 포털 댓글 정책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듯하다. 외국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의 미온적인 게시물 관리 정책으로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 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밖에 『가짜뉴스의 고고학』에서는 전쟁과 안보와 관련된 뉴스, 과학 뉴스 등 특정 분야에서 문제가 됐던 다양한 가짜뉴스의 사례를 살핀다. 가짜뉴스의 규제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사회의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기에 법적인 규제가 쉽지 않다는 점도 짚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며 저자는 가짜뉴스가 발흥하는 조건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을 꼽는다. 가짜뉴스로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 한 가짜뉴스의 근절은 쉽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가짜뉴스를 동원한 정보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오늘날 정치 분야 허위정보전의 특징은 대중을 설득해 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반대 진영을 불신하게 만들고 그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고 파악했다.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에 여러 가짜뉴스가 난무할 텐데, 우리 사회는 이를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최은창 저자는 “거짓말로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고, 적과 아군을 구분 짓고, 분노를 조장하는 선동가가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일은 사상의 자유시장의 실패와 민주주의 실패를 막기 위한 일”이며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사람들을 토끼굴로 몰고 가는 힘을 누가 가졌는가, 누가 거짓을 증폭할 수 있는가를 주목”(463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힘은 전통적 플랫폼인 신문 방송과 새로운 플랫폼인 디지털 플랫폼에 있다. 이들 스스로 저널리즘적 사명감을 늘 염두에 둬야 하고, 시민들은 이들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뉴스에 관한 팩트체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테다. 



가짜뉴스의 고고학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저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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