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젓가락질에 얽힌 저주와 괴담
한국과 함께 젓가락 문화권에 해당하는 일본과 중국에도 흡사한 금기가 존재합니다. 의미는 셋 다 비슷해요. 죽음, 시체, 귀신.
글ㆍ사진 심완선(SF 평론가)
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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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쉐시쓰, 예터우쯔, 샤오샹선, 찬호께이 저 외 2명 | 비채 


보이지 않는 어르신이 잔소리를 하고 있다. 젓가락질 똑바로 해라. 왼손으로 젓가락 쓰지 마라. 젓가락으로 삿대질하지 마라. 음식을 헤집지 마라. 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지 마라. 밥은 조용히 먹고 젓가락은 가지런히 놓아라. 전부 식사 예절에 해당하는 소리다. 나도 다 알긴 하지만, 점잖게 식사해야 하는 자리만 아니라면 적당히 어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왼손잡이든, 젓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쥐든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꼭 지켜야 하는 규칙도 있다. 밥에다 젓가락 꽂지 마라. 그러면 큰일 난다.


어떤 큰일이 날지는 모른다. 아무튼 수저를 밥에 푹 꽂는 짓은 불길하다. 젓가락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기피하는 행동이다. 이건 확실히 잘못됐다는 느낌 때문에 반사적으로 움찔하게 된다.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젓가락 사용법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 한국과 함께 젓가락 문화권에 해당하는 일본과 중국에도 흡사한 금기가 존재한다. 의미는 셋 다 비슷하다. 죽음, 시체, 귀신.


한국은 제사상에 올리는 밥에 숟가락을 꽂는다. 절차로 따지면 음식을 권한다는 뜻의 유식(侑食)이다. 제주(祭主)는 술을 부은 뒤에 숟가락을 제삿밥 중앙에 꽂는다. 그다음 재차 절을 한다. 수직으로 꽂힌 숟가락은 귀신이 내려앉는 길이다. 이와 비슷하게 죽은 사람에게 바치는 밥으로 중국은 각미반을 만들고, 일본은 이치젠메시를 만든다. 그리고 젓가락을 밥에 수직으로 꽂는다. 죽은 사람의 밥이라는 표시다. 산 사람에게 쓰면 죽으라는 저주가 된다.


『쾌: 젓가락 괴담 경연』은 젓가락에 얽힌 저주와 괴담을 파고든다. 인물들은 괴담을 더듬으며 끝내 저주의 실체를 밝힌다. 귀신이 언급되긴 하지만 장르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는 미쓰다 신조부터 찬호께이까지 5명. 각각 일본, 타이완, 홍콩에서 자라며 젓가락 사용법을 익힌 사람들이다. 덕분에 젓가락을 둘러싼 이야깃거리가 쏟아진다. 더욱이 『쾌』는 릴레이 소설로, 앞사람이 작품을 넘기면 뒷사람이 그걸 읽고 다음 작품을 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젓가락 괴담은 “결국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괴물이” 되듯, 뒤로 갈수록 강력하고 단단한 이야기로 자라난다. 감히 말하건대, 젓가락 문화권에서 자라나 좋은 점은 『쾌』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4번째 수록작인 「악어 꿈」은 앞서 나온 3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잔뜩 풀무질하는 소설이다. 차곡차곡 쌓은 장작더미에 불이 화르륵 붙어서 모든 요소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여기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젓가락은 아주 훌륭한 주구(呪具)다. 문화적 색깔이 뚜렷하고, 매일같이 사용하는 도구인 만큼 관련 규칙도 많아서 주술에 사용하기에 딱 좋다. 저주는 규칙을 어기는 자에게 달라붙는다. 주술의 힘은 규칙에 기반한다.


“규칙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특히 권력관계를 반영합니다. (…) 젓가락은 일종의 은유입니다. 규칙으로 가득한 삶이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젓가락에 반영되어 있지요.


“규칙 없이 제사상에 산 사람의 식탁과 똑같이 밥그릇과 젓가락을 놓으면 각미반이나 이치젠메시를 구별할 수가 없어집니다. 젓가락을 단순히 식기로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된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거나, 금기를 의식하게 될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규칙이 없으면 금기도 없으니까요.


“규칙, 금기, 저주 같은 것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효력이 있어요. 젓가락은 바로 이 문화가 만든 저주의 도구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젓가락은 당연히 주술과 관련이 있지요.


중국에서는 젓가락을 놓을 때 길이를 맞춰 가지런히 두어야 한다. 길고 짧은 모양으로 불균형하게 놓인 젓가락은 죽음을 상기시킨다. 시체를 넣는 관이 바로 길고 짧은 나무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무엇을 건네는 행동이 금지된다. 시체를 화장한 후 유골을 옮길 때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넘기기 때문이다. 이런 젓가락질은 음식이 아니라 시체를 옮기는 방법이다.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젓가락은 살아있는 사람을 죽음 앞까지 데려간다. 구별을 잘못해 금기를 어기면 죽음이 삶을 침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서 살폈던, 제사상에 수저를 차리는 절차인 유식(侑食)은 본래 임금에게 음식을 권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임금님에게 쓰이던 말이 어쩌다 조상신이나 귀신에게 쓰는 말로 바뀌었을까. 임금님이나 귀신이나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상대이긴 하다. 이들을 화나게 하면 불이익이 닥친다. 반대로 만족스러운 대우를 제공하면 이들이 지닌 힘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증오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사무치게 바라던 만남을 이룰 수도 있다. 간절하게 염원하다 보면, 어쩌면.


이토록 깊은 원(怨)을 품는, 혹은 원(願)을 비는 이유는 뭘까. 귀신은 없다고 배우는 현대의 인물들이 그토록 온몸으로 저주와 괴담에 매달리는 사정이 무엇일까. 작중 젓가락 저주를 사용했던 한 소녀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자신이 저주를 걸었기 때문에 친구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친구가 깨어날 거라고 여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친구의 상태와 그녀의 목숨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그녀가 저주를 건 뒤에 친구가 다쳤더라도 그건 우연일 뿐, 두 사건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소녀는 저주가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 소녀의 친구는 저주를 믿지 않지만, 젓가락 저주를 만든 사람들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저주를 이용한다.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어서 저주를 통해서라도 소원을 이루고자 한다. 간절하지만 무력한 사람일수록, 불길함을 기꺼이 무릅쓰고 금기를 어긴다.


그렇다면…… 규칙이 잘못되었다면? 금기를 어겨서라도 길을 찾고 싶어질 정도로 사람을 짓누르는, 불합리하고 무리한 규칙이라면? 비록 저주를 시도하는 것은 개개인일지라도, 저주를 양성하는 원천은 규칙이다. 잘못된 금기를 설정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도대체 저주가 뭘까요? 사람의 사람에 대한 원한일까요, 아니면 초자연적인 신령이 금기에 접촉한 자에게 내리는 처벌일까요?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주의 본질에는 가닿지 못해요……. 저주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 시스템적인 것입니다.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저주에 걸리지 않아요. 우리 아시아인은 젓가락을 밥에 꽂으면 재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서양 사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이 사회 자체가 거대한 저주의 장치인 겁니다.


책을 읽으며 문득 ‘민며느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해 노동력으로 부린 뒤 성인이 되면 자식과 결혼시키는 풍습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시골 마을의 관습은 한국의 민며느리와 똑같다. 딸을 보내는 집에서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려고 민며느리 제안을 받아들인다. 게다가 딸을 시집 보내기 위한 지참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도 사라진다. 입양하는 쪽에서는 일손을 하나 확보할 수 있다. 나중에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고생할 우려도 사라진다. 결혼에 필요한 여러 절차를 생략하여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당사자인 딸의 의사는 전혀 중요치 않다. 영유아가 결혼의 의미를 제대로 알 리도 만무하다. 여자애는 그저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입양과 결혼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가 이런 규칙으로 움직이는 한 여자애의 자기결정권은 금기로 치부된다. 중국에서는 이를 ‘통양시’라고 한다. 정말로, 우리는 같은 문화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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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