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클래식 음악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물을 때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 교향곡이라고 말합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멜로디가 숨겨놓은 사탕처럼 이곳저곳에서 툭툭 튀어나와 클래식이 어렵다는 부담감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 신세계 », 제목은 들어봤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요? 그러면 ‘고잉 홈’이라는 노래를 먼저 들어 보세요.
이 노래는 « 신세계 » 교향곡의 2악장 ‘라르고’에 윌리엄 A. 피셔가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피셔는 드보르자크의 학생이기도 했어요. 단순하고 깨끗해서 아일랜드의 민요처럼 들리는 멜로디는 교향곡에서는 우아하고 처연한 음색을 가진 잉글리쉬 호른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금관 악기가 장중한 화성으로 2악장의 문을 연 뒤 등장하는 잉글리쉬 호른은 광활한 대자연을 눈 앞에 그리듯 넓고 평온하게 노래합니다. 걱정과 고통, 갈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뒤로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의 집,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고잉 홈’의 가사는 이 멜로디와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이어 나오는 두 번째 주제 선율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인디언의 애가(哀歌)를 모방했다 할 정도로 가슴이 저립니다. 당시 미국에 머물던 드보르자크가 타향에서 느낀 외로움을 표현한 선율이라고도 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든, 2악장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멜로디지요.
드보르자크9번 교향곡 2악장 카라얀 지휘, 빈 필하모닉 연주
드보르자크는 1841년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보헤미아는 현재 체코 공화국의 한 지방인 ‘체히’를 라틴어 문화권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서슬라브 민족입니다. 드보르자크는 고향에서 본 아름다운 자연과 우수 어린 정서, 그리고 농민의 춤과 같은 소박함을 견고한 독일 음악 형식에 담았습니다. 장단조 음계를 벗어나는 이국적인 5음 음계와 선법 음계, 슬라브족의 민속춤인 폴카 리듬과 당김음으로 작품에 이국적인 색채를 넣은 것이죠. 만약 « 신세계 »를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한국 전통 음악 향기를 느꼈다면, 바로 5음 음계 (펜타토닉) 때문입니다. 아리랑 같은 우리 민요도 5음 음계를 사용하거든요. 이런 이국적 색채에도 이 교향곡은 베토벤, 브람스가 구축한 고전 형식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악장은 전형적인 고전 양식을 따라 아다지오 서주와 소나타형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비탄에 잠겨 울음을 삼키는 듯한 느린 서주가 끝나면, 세 개의 주제 선율이 나옵니다. 팡파르처럼 강하고 드라마틱한 첫 번째 선율, 두 박자로 된 폴카 리듬의 두 번째 선율, 세 번째는 흑인 영가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 Swing Low, Sweet Chariot ( https://youtu.be/VVKlw5fq83M ) 을 닮은 선율입니다.
드보르자크9번 교향곡 1악장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다른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스케르초-트리오-스케르초 다 카포’로 연주됩니다. 스케르초에서는 강하게 돌진하며 원초적 긴장감을 주는 슬라브 민족 특유의 리듬이 강조됩니다. 반면, 트리오는 붓점 리듬과 꾸밈음 덕에 시골 장터에서 연주되는 음악처럼 소박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띕니다. 마치 보헤미안의 민속 춤곡처럼요. 구조는 분명 전형적인 스케르초 악장을 따르는데, 듣는 이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서처럼 명확하게 스케르초와 트리오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로 스케르초의 내부에 목가적인 분위기의 또 다른 주제 선율이 작은 트리오처럼 들어가 있기 때문이죠. 스케르초 안에 작은 ‘스케르초-트리오’를 품은, 소설의 ‘액자 구성’ 같은 구조입니다. 각 부분을 나열해 보면 ‘스케르초 (스케르초-작은 트리오-스케르초 다 카포) → 트리오 → 스케르초 다 카포 (스케르초-작은 트리오-스케르초 다 카포) → 종결부’가 됩니다. 복잡하죠 ? 구성을 생각하면 복잡한데 작은 스케르초-트리오 구조가 들어감을 예상하고 음악을 들으면 그 어떤 악장보다도 선명하게 들립니다. 각각의 멜로디가 귀에 분명하게 꽂히고 기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드보르자크9번 교향곡 3악장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
4악장은 드보르자크가 새로운 멜로디와 함께 이전에 나왔던 주제선율을 모두 소환해 우리 뇌리에 새겨 넣는 마무리 악장입니다. 영화 ‘조스’ 주제곡 ( https://youtu.be/lV8i-pSVMaQ )과도 비슷한 도입부 이후, 이어지는 금관악기의 강력하고 풍성한 멜로디는 누구나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선율입니다.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의 팡파르처럼 우리의 기분을 고양하지요.
드보르자크9번 교향곡 4악장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
하나의 교향곡 안에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이렇게 많은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유려한 멜로디와 자연스러운 화성 진행, 독일 작곡가의 계보를 잇는 탄탄한 관현악 작법은 보헤미아 지역 작곡가였던 드보르자크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민족 정서를 보편적 음악 언어로 표현하는 세련된 유럽 작곡가에 관한 소문은 미국까지 퍼졌습니다. 결국, 그는 뉴욕 국립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3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게 됩니다.
드보르자크가 뉴욕에 도착한 1892년 무렵, 음악계에서는 무엇이 미국의 정통 음악인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미국을 상징할 색채를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맸지만 쉽지 않았지요. 때마침, 유럽에서 도착한 작곡가는 그들에게 모범을 제시해 줄 구원자처럼 보였을 겁니다. 1893년, « 신세계 »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뉴욕의 언론에는 드디어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출현했다’는 호평이 넘쳐났습니다. 젊은 미국의 진취적 기상을 드러낸 음악, 미국 음악의 출생 증명서라며 극찬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의 반응에 드보르자크는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미국의 그 어떤 선율도 교향곡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흑인 음악의 특성과 인디언의 분위기를 리듬, 화성, 대위법, 현대 관현악법에 맞추어 발전시켰을 뿐이다. 나는 미국 음악의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이죠.
당시, 음악계에서는 흑인 음악에 기반해 미국 특유의 클래식 음악을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흐름에 드보르자크가 한발을 넣은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학생과 음악가를 만났고, 그들에게서 미국을 상징할 수 있는 여러 문화를 접했기 때문이죠. 그 중에는 흑인 영가도, 인디언들의 문화, 미국의 대자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촉발된 여러 논쟁이 있었으니 ‘더러운 흑인의 문화를 미국 음악의 상징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었죠.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이 그대로 드러나던 시절, 아마도 외부인인 드보르자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민족적 색채를 띠는 음악은 무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옷을 갈아입을 뿐이다. 신화와 전설이 위대한 시인이 쓰는 불멸의 시어를 통해 빛을 보고 견고해지듯, 민중의 음악은 빠르건 늦건 작곡가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의 책장 속으로 기어들게 마련이다. 섬세하게 듣고, 기억에 남는 멜로디를 주의 깊게 살펴 이전 세대의 조각을 모아 조화롭게 결합해내는 힘이 중요하다.
드보르작, « 미국의 음악 », Harper’s 90, 1895년 2월
비평가들이 ‘미국의 음악’이라 추켜세웠던 음악은 사실 드보르자크의 고향, 보헤미안의 음악이었습니다. 그 안에 흑인 영가의 일부를, 인디언 축제의 분위기를 살짝 가미했을 뿐이었죠. 그조차도 드보르자크가 부정하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던 열쇠는 음악이 가진 힘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배경을 가졌든지 누구나 공감하는 기쁨과 슬픔의 기억 속에 고유문화를 녹여 낼 수 있는 음악의 힘은 19세기 후반 중부 강대국에 치이던 유럽의 소수민족에 목소리를 주었습니다. 그 중심에 드보르자크가 있었습니다. 보헤미안의 음악은 드보르자크에게 작곡 소재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 사랑하는 고향과 가족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색채를 고민하던 미국의 제자들에게 드보르자크가 준 조언은 너의 근원을 진심으로 살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전통이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세계, ‘신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고 말이죠. 남북 전쟁(1861-1865)이 끝나고도 여전히 지속했던 인종차별로 힘들었을 이들에게 마음속 깊이 내재해 있는 슬픔을 직면하고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해내라고 은밀히 응원한 것입니다. 발전하는 도시의 번쩍임에 눈멀지 말고, 억압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흑인의 역사와 원주민인 인디언이 경외하는 웅장한 자연을 마음 깊이 담을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음악으로 펼쳐진다고 미국 음악계에 전하고 드보르자크는 자기의 고향, 보헤미아로 홀홀히 돌아갔습니다.
드보르자크가 사랑했던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시 « 인생 찬가 »를 소개합니다.
애처로운 음률로 말하지 마라.
인생은 한낱 공허한 꿈이라고 !
자는 영혼은 죽은 영혼이요,
사물들의 겉모습이 다는 아니니.
인생은 현실 ! 인생은 진지한 것 !
무덤이 최종목적지는 아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영혼에 대한 말은 아니었다.
기쁨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우리의 예정된 최후 혹은 길은.
사람답게 살다가, 내일이 올 때마다
오늘보다 멀어지나 싶으면 그뿐.
예술은 길고 시간은 덧없이 지나가,
우리 가슴, 굳세고 용감해도,
천에 싸인 북처럼 나직이 장송곡 울리며
무덤 향해 나아가고 있나니.
세상이라는 드넓은 전쟁터에서,
인생이라는 야영지에서,
잠자코, 쫓겨 가는 소떼가 아니라 !
미래를 믿지 마라, 아무리 즐거워도 !
죽은 과거의 시체는 묻어버려라 !
행하라 – 살아있는 현재를 살아라 !
가슴은 품고, 신(神) 은 머리에 이고 !
위인들의 삶이 일깨우는 것은
우리도 숭고한 삶을 누리다가,
시간의 모래밭에 우리 발자국
남겨두고 떠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누군가, 인생이라는
장엄한 대양을 항해하다
난파되어 쓸쓸히 버려진 어떤 형제가
보고서, 다시 용기 낼 발자국들을.
자, 그러니, 벌떡 일어나서 살자,
어떤 운명도 맞설 마음으로.
끊임없이 이루고, 끊임없이 수행하면서
노력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중, 김천봉 옮김_글과 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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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