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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로 추는 춤, 카잘스의 바흐

20세기에 들어서야 조명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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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원하는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카잘스의 연주는 당시 연주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답니다. (2020.12.10)


클래식의 감동을 전하는 ‘일요일의 음악실’ 칼럼이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송은혜 작가의 가이드를 따라, 음악의 세계에 한발 다가가 보세요.
 


파블로 카잘스, Yousuf Karsh 사진 1954년 

"바흐… 그리고 그 외 모든 작곡가"-파블로 카잘스

"바흐의 음악 한 방울은 다른 작곡가의 음악 한 탱크에 맞먹는다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바흐가 없다면 신학은 목적을 상실하고, 허구의 창조물일 뿐이며 허무하게 소멸한다 " -에밀 시오랑

"바흐 앞에서 다른 작곡가는 그저 어린아이이다 " -로버트 슈만

"바흐는 가장 멋진 별을 발견해낸 천문학자 " -프레데릭 쇼팽

여러 음악인이 바흐에 대해 무한한 찬사를 쏟아 내었지만 정작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제대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 였습니다. 음악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평생을 직업 음악가로 살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바흐는 그의 음악에 걸맞은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당대에 존재했던 모든 유형의 음악 장르를 작곡했고(오페라는 제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을 독일인인 자신의 작곡 기법에 녹여 바로크 음악(16세기 말 혹은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부에 해당하는 음악 시대로 대표적인 음악가로 바흐, 헨델, 비발디가 있음)의 집대성을 이뤘음에도 동시대인들은 그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어요. 그저 어느 정도 실력은 있으나, 최상급 음악가는 아니라 생각했지요. 바흐가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일했던 라이프치히 교회에서는 "피치 못할 이유로 최고의 음악가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그런 사람 중에서 하나 선택합니다" (폴 뒤 부셰, 『마니피카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음악가 (1991)』)라고 말하며 바흐를 채용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 그렇게 그저 그런 음악으로 묻히는 듯했던 그의 음악은 가치를 알아본 일부 작곡가들에 의해서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이나 쇼팽Frédéric Chopin(1810-1849)과 같은 후대 작곡가들이 각종 형식과 기법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이 위대한 선배 작곡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공부했던 덕분이었죠. 바흐의 « 마태수난곡(BWV244) »을 발굴하고 대중 앞에서 연주한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1809-1847)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학구적인 후배들 덕에 바흐의 음악이 한세기가 흐른 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19세기에는 주로 종교음악과 같은 대작들 위주였습니다. 독일인의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역사 속 바흐를 정치적으로 소환한 사람들은 대형 음악회장에 어울리는 대규모 관현악단, 합창단이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선호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바흐의 독주 음악이나 소규모 앙상블 음악이 무대 위에 설 자리는 별로 없었습니다. 20세기 초, 재능있는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1876-1973)가 바흐의 « 무반주 첼로 모음곡(1720-1725) »을 연주장으로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요. 

«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은 바로크의 ‘무용 모음곡’에 기반한 작품입니다. 무용 모음곡은 춤을 반주하던 음악을 모아 기악곡으로 발전시킨 1700년대의 한 장르지요. 춤을 출 때 빠른 춤곡과 느린 춤곡을 번갈아 배치하는 전통을 따라 ‘프렐류드(전주곡)’, ‘알르망드(4박자의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빠르기의 춤 //youtu.be/y1VS3tiwyxk )’, ‘쿠랑트(세 박과 두 박을 교차시키는 빠른 춤)’, ‘사라방드(3박의 느리고 우아한 춤 //youtu.be/qDgnsLPNw2w)’로 연결한 후 ‘미뉴에트’, ‘가보트’, ‘부레’와 같은 가볍고 빠른 춤곡 중에서 한두 개를 골라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지그(한 박이 세 박자로 쪼개지는 리듬을 가진 빠른 춤 //youtu.be/n_iivGo83Ts )’로 마무리하는 모음곡의 틀이 확립되었습니다.

생소한 이름이 많이 보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디스코, 탱고, 차차차, 삼바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종류의 춤곡을 섞어 구성한 무용 모음곡이라 해도 다른 악기를 받쳐 주는 역할만 하던 첼로가 피아노 반주도 없이 홀로 대중을 매혹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첼리스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손가락 연습곡 정도로 생각하고 연주회 프로그램에 넣지는 않았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첫 페이지와 1번 G장조의 프렐류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부인,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수고본, 베를린 시립 도서관 소장 

하지만, 카잘스는 달랐습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가진 아름다움을 꿰뚫어 보고 무대 위로 끌어 올려 그동안 가려져 있던 바흐의 음악성과 첼로의 섬세하고, 풍성한 표현력에 날개를 달아 주었죠.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첼로 모음곡 전곡을 음반으로 남기며 음반 역사와 바로크 음악 연주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낭만 시대를 지나며 나날이 두텁고, 복잡해져만 가는 음악들 사이에 단 하나의 선율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순함의 미학’을 선보였던 것입니다. 감정에 취한 연주로 작곡자의 의도는 뿌옇게 흐려지기 일쑤였던 후기 낭만의 무대에 카잘스는 숱을 쳐낸 듯 가볍고, 활기가 넘치는 담백한 색채를 들려줬어요. 바흐가 원하는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카잘스의 연주는 당시 연주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답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해. 기교는 그 다음 문제일 뿐."

최고의 기량을 가진 카잘스의 말입니다. 수많은 첼리스트의 연습실 한 켠에, 손가락 연습곡으로 꽂혀 있었을 악보를 이리저리 쪼개고 분석하면서 바흐의 마음을 상상했을 카잘스에게도 2백년 동안 굳어진 고정관념을 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모음곡 전곡을 녹음하는데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자신의 기교를 자랑하기보다,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먼저 귀를 기울인 연주자, 첼로가 가진 물리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로부터 악기 고유의 매력을 찾아내어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어법을 개발한 연주자 덕에 바흐는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위대할 뿐이고, 골방의 서랍 속에서도 빛을 내기 마련이지만, 그 어렴풋한 빛을 알아본 카잘스의 연주 덕에 우리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지금도 심장으로 춤을 춥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했을 때, 세상에 허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일 때에도 그는 이것만큼은 고수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흐 서곡(전주곡)과 푸가를 어떤 박자, 어떤 세기로 연주하더라도 여전히 위대한 음악이었고 그것은 건반 악기에 전혀 재능이 없는 비열한 인간에게조차 맞설 수 있는 증거였다.」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179-180쪽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1720) 추천연주>

프렐류드-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  I&II, 지그


파블로 카잘스 연주Pablo Casals (1936-39년 녹음)


장-기엔 케라스Jean-Guihen Queyras 연주 Harmonia Mundi 2007 듣기


뤼시아 스바르츠 Lucia Swartz바로크 첼로 연주 Challenge Classics 2019년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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