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 새로운 시대의 기록으로 새겨지다
외로운 서울의 사람들에게 정밀아는 '오늘의 나'를 살아갈 것을 따스히 촉구한다.
글ㆍ사진 이즘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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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 봇짐 메고 한양 가듯이'('서울역에서 출발') 상경한 정밀아의 삶은 청파동의 골목골목을 타고 노래가 되어 흐른다. 서울역이 가로지르며 도심으로부터 분리된 청파동엔 일제 강점기 부호들이 쌓아 올린 적산가옥, 해방정국 시기의 한옥,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도시로 상경한 서민들의 양옥과 주택이 고고한 시간과 그 속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품고 서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서시')라 노래하지만, 정밀아가 딛고 서 있는 공간과 풀어내는 이야기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시대의 흐름까지 관통하고 끝내 모두를 끌어안을 운명을 지니게 된다.

청파동은 '오래된 동네'이자 '광장'과도 맞닿아있고 '춥지 않은 겨울밤'에 거닐며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서울의 중심이다. 화려한 조명과 빌딩, 분주한 기차 소리 뒤편엔 '지금도 미싱 소리가 뛰고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낮은 집들은 차곡차곡'('오래된 동네') 쌓여있는 수많은 삶이 있다. 정밀아는 쓸쓸한 도시 뒤편의 골목이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묵묵히 살아나가는 이들과 고독에 침잠한 이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음성을 대신 부른다. '오래된 동네'가 이제는 잊힌 민중가요의 합창을 과감히 끌어오고, '광장'이 광화문의 외로운 확성기 소리를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앨범의 시대성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포용하기에 더욱 완전하고 지금 이 순간 대중의 호흡과 함께 박동한다. '역병도 시작됐어요 / … / 모든 것이 멈추었어요'라 숨 막힌 2020년을 돌아보는 우화 '환란일기'의 멜로디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잊힌 존재가 아닌 '정성껏 살아갑니다.'라 노래하는 이웃 동네의 뮤지션을 목격한다. 정밀아는 주저앉을 것 같은 자매에게 위로의 전화를 건네며 '넌 참말 괜찮은 사람'이라 잔잔히 손을 맞잡는 '언니'이며,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사랑이 피어나는 침묵의 새벽 바다를 바라보다 '초여름' 긴 낮을 걸어 방 안에 몸을 누이고 홀로 막걸리를 마시는 '어른'이다. 차분히, 그러나 근면히 내면과 사회 속 자아를 오간다.

보편의 단편선을 전달하는 그의 언어는 흐려지지도, 주저하지도 않는다. '서울역에서 출발'에서 막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비며 이른 아침을 맞은 정밀아는 천천히 두근대는 발걸음과 함께 으레 일상에서 품을 법한 상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이는 혼란한 세상을 노래하는 '환란일기'에서도 천진한 목소리로 비극의 테마를 완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반면 턱, 하고 숨이 막히는 순간의 '어른'과 '언니'에서 그의 음성은 먹먹하다. 영화 <벌새> 속 영지 선생님이 고요히 열네 살 은희의 마음을 읽듯, 외로운 서울의 사람들에게 정밀아는 '오늘의 나'를 살아갈 것을 따스히 촉구한다.

<청파소나타>의 울림은 너무도 강렬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연과 궤적이 보존된 청파동에서의 관찰로부터 출발한 이 작품은 서울역을 지나 시청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서울로로부터 이태원까지, 만리재와 아현동을 통해 홍대까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사회를 온전히 끌어안는다. 그 가장 깊은 곳에는 사람과 사회,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바라보는 정밀아의 휴머니즘 시선과 목소리가 있다.

들뜨고 뜨거웠던 지난날을 가라앉히되 결코 잊지 않으며, 혼탁하더라도 주어진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담히 살아간다. 그렇게 정성스레 눌러 쓴 일상은 청파동 곳곳의 흔적처럼, 새로운 시대의 기록으로 새겨질 준비를 마친다.



정밀아 3집 - 청파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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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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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